‘골고다 언덕’을 오르다
‘골고다 언덕’을 오르다
  • 주상호 기자
  • 승인 2011.05.28
  • 호수 13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종이책의 짐을 짊어지고 세상 속으로

골고다 언덕은 모든 사람의 죄를 짊어지고 돌아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언덕이다. 전자책도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모든 종이책들의 무거운 죄(무게, 가격 등)를 짊어져 앞으로 책들이 죄를 씻고 가볍고 저렴한 가격으로 배포될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시대의 흐름, 전자책
전자책(e-book)의 시대가 오고 있다. 2004년 국내 전자책 시장규모는 약 2백억 원으로 2조 3천억 원 정도의 단행본 시장에 견줘 1/100이었지만 매년 2배 이상의 규모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현재 국내 전자책 시장은 한국전자출판협회에 따르면 사상 최초로 2천억 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전자책 시장이 가장 활발한 미국에서는 이미 전자책 시장이 종이책 시장을 앞질렀다. 또 대학종합평가에도 전자책을 종이책과 동일하게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만큼 전자책은 우리 가까이에 와있는 것이다.

전자책이 뜬 배경은 무엇이 있을까. 1년 새 전자책 시장이 급성장한 이유에 지난해 4월 출시된 아이패드, 갤럭시탭 등 태블릿PC의 보급 확대를 빼놓을 수 없다. 전자책을 볼 수 있는 단말기가 대중에 보급되면서 전자책 시장이 급격히 커진 것이다.

전자책이 보급되면서 사용자들의 환경도 변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눈에 보이는 책 무게의 감소다. 전자책은 골고다 언덕을 올라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처럼 종이책들의 무게의 죄(?)를 짊어지고 재탄생했다. 이로써 학생들의 어깨는 가벼워졌고 직장인들의 출근길에는 종이책 대신 전자책이 들려지고 있다.

가격 부분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전자책은 기존의 종이출판물에 비해 활판비용ㆍ종이 값ㆍ인쇄비ㆍ제본비ㆍ발송비 등에서 비용을 절감할 수 있기 때문에 전자책은 종이책의 40%-60% 선에서 책정되고 있다. 그러나 전자책의 값은 내려간 대신 단말기 구입비용이 생겼다. 현재 전자책을 볼 수 있는 단말기는 인터파크의 비스킷, 아이리버의 커버스토리 등의 전용 단말기와 아이패드, 갤럭시탭 등이 있다.

단말기 가격까지 고려했을 때 전자책을 읽을 때 들어가는 비용이 결코 저렴한 편이 아니다. 단말기 가격을 30만원으로 보고 종이책 평균 정가를 8천원으로 봤을 때 단말기 한 개 값이면 37권의 종이책을 살 수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발표한 성인의 1년 평균 독서량이 16권임을 감안할 때 2년치 책값을 단말기를 구입하는데 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종이책을 구입할 때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거나 직접 서점에서 책을 구입한다. 보통 책을 구입해서 보는 데까지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이 걸린다. 그러나 전자책에서는 1분이면 원하는 책을 바로 볼 수 있다. 해외 서적은 물론이다.

전자책이 보급되면서 이점만 있는게 아니다. 가장 큰 단점은 보안의 문제다. 보안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온라인에 올라와 있는 전자책은 무료로 보급될 수 있어 콘텐츠 생산에 문제가 생긴다. 현재 아이튠즈로 MP3시장이 되살아나고 있지만 이전까지 무료로 보급되던 MP3로 인한 문제를 생각하면 문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가독성 또한 전자책이 보급되면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문제다. 전자책은 기존의 종이책과 비교해 볼 때 가독성이 떨어진다. 빛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종이책보다 눈이 쉽게 피로해지므로 단말기의 해상도나 전용 폰트 개발이 중요한 선결과제다.

시대의 흐름을 비껴가지 않는 법
2000년 초 벤처 붐과 함께 여러 전자책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지만 대부분 큰 폭의 적자를 면치 못하고 문을 닫아야 했다. 전자책 업계에서 ‘전자책은 없다’는 식의 섣부른 비관론이 대두됐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자책 산업의 핵심요소 가운데 하나인 전자책을 볼 수 있는 솔루션 개발이 마무리되고 출판및인쇄진흥법이 개정돼 전자책의 부가가치세를 면제받을 수 있게 되면서 다시금 전자책이 화두가 되고 있다. 문화관광부에서도 전자책 지원을 위해 △멀티미디어 전자책 제작지원 사업 △우수 저작물 전자책 제작지원 사업을 시행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국내의 콘텐츠 개발은 상대적으로 저조한 상황이어서 정보화 인프라가 세계적인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대조를 이룬다. 성대훈<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은 “정보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학교와 도서관에서 전자책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며 “이 속에서 여러 업체들이 전자책 업계에 참여하면서 전자책 산업은 점점 더 활기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책 산업은 저작권에서 시작해 저작권으로 끝나는 저작권 판매 사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저작권이 중요하다. 그만큼 전자책 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저작권의 문제 해결이 필수적이다. 전송권자인 저자와 데이터를 작성한 출판사와 서비스업체 사이에 합리적인 계약체결이 돼야만 한다. 전송권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종이책의 배포권만 보유한 출판사가 임의대로 전송권을 행사했을 경우 전송권의 권리를 보유한 저자와 마찰을 가져올 수 있다.

성 사무국장은 “다양한 기술의 발전과 단말기의 보급이 확산된다 하더라도 궁극적인 문제는 국민들의 저조한 독서율”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의 독서량으로는 일반 독자들까지 전자책이 확산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국민 전체의 독서율이 증가하지 않는 한 전자책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러스트 이민아 기자
사진 심소연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