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그램의 실험과 IRB 심의로부터 도움얻기
밀그램의 실험과 IRB 심의로부터 도움얻기
  • 이상욱<인문대ㆍ철학과> 교수
  • 승인 2011.05.02
  • 호수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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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욱<인문대ㆍ철학과> 교수

스탠리 밀그램이란 미국의 심리학자는 1961년부터 예일대학에서 ‘권의에 대한 복종’에 대한 실험을 수행했다. 당시 진행 중이던 나치 전범 아이히만의 재판에 자극을 받은 밀그램은 이 실험에서 2차 대전 중 자행된 나치의 대학살이 진정으로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인지를 알아보고 싶어 했다. 우선 예일대학 근교에서 모집된 피실험자에게 전기 충격으로 주어지는 처벌이 기억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을 한다고 설명했다. 피실험자는 기억력 시험에서 틀린 답을 내는 사람에게 점점 더 강한 전기충격을 부과하는 시험관의 역할을 맡는다. 처음에는 일상적 분위기에서 시작된 실험은 전기충격을 받은 사람이 너무 고통스럽다며 실험을 그만두고 나가게 해달라고 불평과 애원을 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대부분의 피실험자는 이런 상황에서도 실험을 계속할 지를 흰 실험복을 입은 연구자에게 문의했지만 “실험은 계속되어야만 합니다”는 사무적 대답만 듣는다. 놀랍게도 상당수의 피실험자는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에게 치명적인 전류를 흘린다.

다행히도 문제에 틀려 ‘벌칙’을 당했던 사람은 실제로 전기충격을 받지 않았고 단순히 고통스러운 연기를 했을 뿐이었다. 이 실험은 평범한 사람이 ‘강요되지 않은 상황’에서조차 권위에 의한 명령에 얼마나 쉽게 복종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지만 학계에 상당한 논란을 가져오기도 했다. 우선 실험 참가자들에게 실험의 진짜 목적을 숨기고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하도록 요구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실제로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인문사회과학연구에 대해 IRB(기관심의위원회) 심의가 일반화된 이후에는 밀그램식의 실험이 수행되기 더욱 어려워졌다. 이에 대해 일부 연구자들은 피실험자의 인권을 고려하다보면 학문의 발전이 저해된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 생각한 것이다. 우선 기관심의의 목적은 인간에 대한 실험 연구를 막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기관심의는 연구자가 미처 인지하지 못한 윤리적 쟁점을 심의 과정에서 미리 제기해 줌으로써 연구자로 하여금 나중에 마주칠 수 있는 윤리적 논란을 사전에 방지하고 보다 바람직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 게다가 기관심의가 연구의 ‘윤리적’ 측면만을 보는 것도 아니다. 밀그램의 실험 자체는 인상적이었지만 실험이 정확히 무엇을 밝혀냈는지에 대해서는 동료 심리학자들 사이에서 논란이 많았는데 이는 실험 설계에 허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이처럼 심의대상 연구계획에는 연구자가 자신의 연구에 몰두한 나머지 미처 못 본 방법론적 문제가 있을 수 있고 이는 기관심의 과정에서 발견되어 시정될 수 있다. 이처럼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인문사회과학 연구는 IRB 심의과정에서 연구의 윤리적, 방법론적 타당성을 검증받음으로써 많은 이득을 얻을 수 있다. 본교에도 기관심의위원회가 설치되어 있고 심의되는 연구계획서 중 점점 많은 수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인문사회과학연구로부터 나오고 있다. 생산적으로 수행된 기관심의를 통해 한양대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연구가 윤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모두 더 훌륭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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