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건축가 꿈을 펼치다
노래하는 건축가 꿈을 펼치다
  • 심소연 기자
  • 승인 2011.04.10
  • 호수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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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겸 가수, 양진석<와이그룹> 대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러브하우스’. 사정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새롭게 바뀐 집을 선사해주는 코너였다. 이 방송에서 인자한 웃음을 지으며 사람들의 집을 멋들어지게 바꿔주던 한 남자. 그가 바로 양진석 교수다. ‘러브하우스’ 때의 이미지로 건축가라고 흔히 알려져 있지만 그는 정규앨범 4집까지 발표한 가수이기도 하다. ‘건축가 겸 가수’라 불리는 그의 공간에 들어가 보자.

사랑의 집을 지어주는 건축가
그가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러브하우스’ 때부터였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집을 고쳐주던 시절. 그의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일까.

“임산부였던 분의 집이었는데 연탄가스가 계속 샜어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까 고치지도 못하고 계셔야 했죠. 그 집을 고쳐준 일이 기억에 남아요. 어쩌면 그 분한테는 생명의 문제가 될 수 있는 거였잖아요. 집이 안식처가 아니라 전쟁터로 돌변한 거죠. 그 때 우리가 평소에 잘 모르는 집의 소중함을 많이 느꼈어요.”

‘러브하우스’에서 그는 자신의 재능을 여과없이 보여줬다. 자신의 전공을 살려 사회 소외계층에게 삶의 장소를 제공해주는 일. 그에겐 매주가 보람있고 뜻 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유명세를 타며 ‘공인’이라는 이름표가 붙자 그는 방송이 양날의 검을 가졌다는 것을 느꼈다.

“공인으로 살아가는 게 좋을 수도 있지만 안 좋은 점도 많아요. 차라리 제가 순수하게 연예인이면 모르겠는데 건축도 따로 하고 있으니까 알려진 게 불편할 때가 많았죠. 그렇지만 방송에 출연할 수 있었던 건 영광이기도 하죠. 결국 양면이 있어요.”

러브하우스 시작부터 6개월 동안 그가 보여준 모습은 시청자들의 머릿속에 깊숙이 자리 잡았다. 한창 사람들이 그의 이름에 익숙해질 쯤 그는 갑작스럽게 활동을 중단했다. 자신의 본업에 집중을 하고 싶었다. 방송을 그만둔 후에도 타 방송사에서 출연요청이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자신만의 콘텐츠를 갖추고 시청자들이 진정으로 원할 때 나오는 게 좋겠다고 느낀 그는 모든 요청을 거절하고 그의 일, 건축과 음악에 몰두한다.

틀 위에 꽃피는 창조적 건물들
‘러브하우스’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건축 일에 집중하려 했지만 ‘공인’이라는 인식은 그를 다시 가로막았다.

“개인이 건축의뢰를 하기도 하지만 기업들도 하죠. 저 같은 경우는 개인 일보다 주로 기업들하고 일을 해요. 제가 러브하우스를 했다고 해서 기업에서 일을 많이 줄까요. 오히려 안줄 수도 있겠죠. 왜냐. 바쁘다고 여기고 러브하우스에 출연하고 연예인처럼 돼서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죠. 유명해졌다고 해서 그게 국가고시처럼 실력을 검증해주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그는 건축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내 작품을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하는 그. 자신이 만든 공간 속에서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기뻤다. 그런 그가 건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 용, 강은 건축의 기본이에요. 하나의 작품이니까 아름다워야 하고, 쓰기 편해야하고 무너지면 안 되니까 강해야하고. 건축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외적인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내적인 아름다움도 있어요. 우리는 보통 건축의 외관을 많이 보잖아요. 그렇지만 우리가 있는 이 내부공간을 어떻게 표현해낼 것인가도 중요하죠. 그렇기 때문에 외적인 아름다움과 내적인 아름다움이 같이 어우러지게 하는 게 필요해요.”

탄탄한 기본 위에 그만의 감각이 입혀지는 건축물들. 하지만 건축은 하나의 서비스업이기도 하기 때문에 그가 원하는 디자인만을 하기는 어려웠다. 돈을 내는 갑과 의뢰를 받는 을. 서로 의견조율이 된다면 문제가 없지만 가끔은 을의 전문적인 소견이 무시당한 채 갑의 취향에 따라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그는 그만의 색이 담긴 건축물들을 속속 만들어냈다. 신사미 타워, 잠실 더 샵 스타파크 등 창의성이 돋보이는 건축물들로 그는 다시 한 번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건축물에 담긴 그의 색. 그의 음악 속에도 이런 색이 담겨있을까.

건축과 접점을 찾은 음악
“전 음악도 건축과 똑같다고 봐요. 기초부터 끝마무리까지 다 잘 지어져야 되거든요. 기본적으로 음질에 신경을 많이 쓰고 연주에서 노래까지 전체적으로 고민을 많이 해요. 그 중에서도 가사가 굉장히 중요해요. 가사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음악이 180도 달라지거든. 그래서 가사 말에 신경을 많이 쓰죠. 메시지를 담으려고도 하고.”

그의 4집 앨범 어반라운지(urban lounge)엔 이러한 그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도 그럴 것이 8년의 준비기간을 거쳐 나온 앨범이다. 이전 앨범들의 발매 간격에 비하면 상당히 긴 기간이다. 독학을 한 음악이지만 프로듀싱을 맡고 전곡을 직접 작사했다. 앨범에 수록된 총 11개의 곡 중에는 그만의 사연이 담긴 곡도 있다.

“곡 중에 ‘센티멘털 러브’라는 노래가 있어요. 제 딸이 아주 어릴 때 거실로 아장아장 기어 나왔던 모습을 보고 만든 노래에요. 이때 처음으로 딸과 내가 소통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게 딸아이가 차만 타면 이 음악만 들어요. 자길 보고 만든 노래를 기억하는 거야. 그래서 참 의미가 있죠.”

잔잔한 어쿠스틱 스타일의 곡 사이사이에 다채로운 색이 담겨있는 그의 노래. 2010년엔 ‘장소찾기 프로젝트’ 앨범을 발매하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한 장소 안에서 그가 느낀 감정을 곡으로 표현해낸 ‘장소찾기 프로젝트’는 ‘건축가 겸 가수’라는 그의 특색을 잘 담아냈다.

“보통 장소, 동네, 도시라고 하면 건축가의 분야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를 음악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장소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한거죠. 작년에 발매한 가로수길, 홍대 주차장길에 이어 올해 4월 5일에 강변북로가 나와요. 홍대 주차장길을 지을 때는 학생시절 밤 늦게 친구들과 홍대 감자탕 집에서 술 마시며 놀았던 기억이 많이 났었죠.”

건축과 음악. 얼핏 들으면 관계없는 분야라고 생각하기 쉽다. 둘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것일까.

꿈이 낳은 시너지효과
“건축하고 음악은 보수적인 틀 위에 진보성이 가미된 점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건축이 굉장히 보수적이잖아요. 하지만 시대성을 담아야 하고 세련돼야 하죠. 대중음악도 마찬가지에요. 시대성을 많이 담아야 유행하잖아요.”

건축을 보면서 선율을 떠올릴 수 있고, 음악을 하면서 여러 가지 공간감을 느낄 수 있어 시너지 효과를 얻는다는 그. 영화광인 그는 주로 영화에서 영감을 얻는다. 영화에 나온 장소를 보며 공간적인 감각을 키울 수 있고 등장인물들의 인생이야기를 통해 음악적인 영감을 얻는다.

와이그룹 대표이사부터 서울시 건축위원회 의원, 음반활동, 7년간 재직한 우리학교 ERICA캠퍼스 건축학부 겸임교수까지. 쉴 틈 없이 살아왔을 것 같지만 그는 웃으며 “시간 많아요” 라고 말한다.

“남들이 시간 없지 않느냐고 많이 물어봐요. 그런데 가만히 돌아서 생각해봐. 대학생들이 공부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동아리도 하고 친구들하고 놀러도 다니고. 사회인들도 그래요. 회사만 다니나요. 그렇지 않아. 시간 되게 많아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대신 멍하게 있는 시간은 좀 없는 편이죠. 관심 없는 부분은 철저하게 안하기 때문인 것도 같아요.”

여유를 잃지 않는 그지만 여러 활동을 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런 그에게 힘이 되는 것은 그가 지닌 ‘꿈’이다.

“나는 꿈을 포기하지는 않아요. 끝까지 갖고 있어야 된다고 봐. 꿈을 버리는 순간 내 자신이 없어지는 거야. 아무도 꿈꾸지 말라고 하진 않잖아요. 내 자유죠. 내가 목표를 향해서 그리는 꿈이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꿈을 향해서 달려가기 때문에 원동력이 생기는거죠. 거기에서 다양한 분야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나오는거에요.”                           

일러스트 심소연 기자
사진 류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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