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주장하는게 아니에요”
“영화는 주장하는게 아니에요”
  • 류민하 기자
  • 승인 2011.04.03
  • 호수 1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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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한 영화감독, 민용근<연극영화학과 95> 동문

그와 인터뷰하기 위해 세종대를 찾았다. 그가 세종대 연극영화과 학생들과 ‘관객과의 대화’ 일정이 있었기 대문이다. 기자도 현장에 참석했다. 그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였다. 학생의 질문에 포함돼있지 않은 부분도 친절하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영화의 본질
민 감독의 장편 첫 데뷔작인 영화「혜화, 동」은 얼마 전 독립영화의 흥행기준이라고 하는 누적 관객수 1만명을 돌파했다. 영화의 흥행에는 매일같이 적극적으로 관객과의 대화(이하 GV : Guest View)를 진행하고 있는 그의 힘이 컸다.

작은 영화일수록 관객의 입소문이 크게 작용한다. 극장에서 하는 GV에 제약이 많아 다른 방식을 찾던 그는 10명 이상의 관객이 부르면 직접 찾아가는 GV를 시작했다. 역사상 처음있는 일이란다.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다른 감독의 영화를 같이 상영하고 그 감독과 영화의 공통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OST를 부른 가수와 함께하기도 한다. 

“GV가 보통 감독과 배우가 있고 사회자가 진행하면서 질문을 주고 받는식으로 정형화 되어있잖아요. 물론 그 자체로 소중한 시도이긴 하지만 영화 자체로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에서 주변으로 넓혀질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면 영화를 보고 보너스를 얻는 느낌도 있을테고요.”

「혜화, 동」은 마음의 움직임에 대한 영화다. 「혜화, 동」은 임신한 혜화를 두고 떠나간 한수가 5년 뒤 돌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한수가 돌아오자 혜화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제목의 ‘동’에서도 암시하듯 혜화의 마음은 계속 움직인다. 이 세밀한 영화도 처음부터 이야기 구조가 설계돼있진 않았다. 그가 기억하고 있는 이미지 하나에서 이야기들이 하나 둘씩 덧붙여져 만들어졌다.

“예전에 제가 TV 다큐멘터리를 할 때 탈장된 유기견을 구조하는 여자분 이야기를 찍은 적이 있거든요. 그 분이 개를 구하려고 3일 밤낮을 잠복하셨는데 마지막에 거의 잡을 뻔하다 놓쳤어요. 엄청 아깝게. 근데 그날 새벽에 추운데 차에서 우시더라고요. 울면서 ‘나는 널 구해주고 싶은데 왜 내 마음을 몰라주느냐’고 하시는데 짠했어요. 근데 개를 못 구해서 우는게 아니라 왠지 마음속에 다른 상처가 있는데 탈장견으로 인해서 건드려진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게 굉장히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어요.”

「혜화, 동」에는 클로즈업이 자주 쓰인다. 「혜화, 동」 뿐 아니라 「도둑소년」을 비롯한 그의 다른 단편들도 마찬가지다. 클로즈업은 주로 인물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데 쓰는 기법이다. 카메라는 자주 혜화의 얼굴을 바짝 당겨서 잡고 미묘한 표정을 잡아낸다.

“항상 ‘영화적인 것이 뭘까’하는 생각을 해요. 제 생각에는 표정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사건이나 스토리 같은 건 영화들에서 굉장히 많이 반복되는데 사람의 표정은 무한해요. 겉으로는 똑같아 보이는 무표정도 사람들마다 미묘하게 다르거든요. 그 표정이 본심을 표현하잖아요. 다양한 표정을 잡아내는게 영화의 본질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주장보다 공감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나서 주제에 대해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감독들은 말하고 싶은 것이 명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민 감독도 그렇다.

“주장하고 싶은 게 있으면 다른 매체로 할 수도 있는데 영화에 꼭 목적이 있어야 하는건 아닌 것 같아요. 영화는 같이 보면서 느끼는 거란 생각이 들어요. 「혜화, 동」 안에서 굳이 주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을 순 있겠죠. 사람들의 인연일 수도 있는거고, 상처를 극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거고. 하지만 그런 것들 보다는 혜화의 마음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통하게 되는지를 더 많이 생각했어요.”

그는 단편들 위주로 작업해왔다. 상업영화와 달리 단편은 보통 감독으로부터 시작된다. 자연스럽게 그는 대부분 자신이 쓴 시나리오의 연출을 맡았다. 그의 단편들을 보다보면 한가지로 묶이는 소재가 있다. 바로 ‘가족’이다. 단편 「주말」, 「엄마 미안해요」는 가족의 소통부재를 다뤘고, 「도둑소년」에도 가족이 결핍된 소년이 등장한다. 「혜화, 동」도 마찬가지로 가족을 다루고 있다. ‘가족’이라는 소재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는지 물었더니 아니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다만 시나리오를 쓸 때의 마음이나 상황이 반영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식적으로 관심이 있진 않았어요. 그냥 마음이 갔던거 같아요. 시나리오를 쓸 당시 실제로 느끼던 것들이 많이 반영이 돼요. 에피소드로 직접 반영이 되는게 아니라 상황이나 인물들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 같아요.”

그가 연출한 영화들의 목록을 보다보면 튀어보이는 것이 있는데 「원나잇 스탠드」다. 이 영화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추진하는 ‘인디 트라이앵글’ 프로젝트 중 첫 번째로 제작된 영화다. 프로젝트 주제는 매해 달라진다. 그가 참여했던 작년의 주제는 ‘에로티시즘’이었다. 그는 전체이용가 영화만 만들다가 처음 19금 영화를 만들게 됐다. 하지만 이 영화도 이전 영화들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고.

“이런 제안이 아니면 내 스스로 만들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베드신 찍는거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게 됐어요. 사실 내적으로 보면 영화가 크게 다르진 않아요. 단지 영화 속에 있는 인물의 마음들을 성적인 부분들과 결부시켜 표현할 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생각을 했던거죠.”


인생과 닮은 영화
민 감독의 영화가 인물을 보여주는 방식은 어떻게 보면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영화들은 인물을 ‘영화적으로’ 소개한다. 이 인물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다 보여준 다음 사건을 진행시킨다. 하지만 그의 영화는 인물의 상관없을 것 같은 면들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관객이 머릿속으로 인물에 대해 유추하게 한다.

“실제로 사람들을 만날 때 곧바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다 알게되는건 아니잖아요. 서로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면, 저런 면을 알게되고 머릿속으로 어떤 사람이구나 하고 알게 되는거죠. 비슷한 방식으로 영화도 조금씩 단서들을 모아주면서 관객들이 스스로 그려보도록 해주는거에요.”

그가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에 대해 물었더니 구체적인 것은 아직 없다고 답했다. 다만 지금까지와 달리 큰 힘이 느껴지는 강한 감정을 다루고 싶다고 했다. 깎은 손톱을 필름통에 모으는 그의 습관을 혜화에 부여할 정도로 세심한 그가 의외였다. 하지만 역시 특유의 세심함은 남아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스타일은 좀 달라지더라도 감정의 세밀함은 남아있었으면 좋겠어요. 영화에서는 인물의 감정을 많이 단순화 하잖아요. 되게 작은 감정이라서 잡아내기 어려운 것들이 인물들을 통해서 보여졌으면 해요. 혜화가 돌아온 한수에게 미우면서도 어떤 묘한 느낌들을 느끼듯이 사람의 마음이라는게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는 세종대 연극영화과 학생들에게 영화가 삶의 전부가 아니었으면 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도 그에게 영화는 여전히 중요한 삶의 한 부분이다. 그는 일상에서 얻어진 그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일을 계속 할 것이다. 다큐멘터리가 됐든 영화가 됐든 그는 계속 카메라에 사람들의 얼굴을 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천상 영화인이다.

“영화는 제게 삶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인 것 같아요. 일상생활도 되게 중요하죠. 영화도 내가 하는 일이니까 그 중 한 부분인거에요. 다큐멘터리도 사실 영화랑 통하는 면이 있잖아요. 어쨌거나 영상을 통해서 표현하는 일이니까요. 표현은 글이나 다른 여러가지로도 할 수 있겠지만 저에게 맞는 수단은 영상인 것 같아요.”

류민하 기자 rmh719@hanyang.ac.kr
사진 심소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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