덜어냄의 미학
덜어냄의 미학
  • 이형중 교수
  • 승인 2011.03.13
  • 호수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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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중<의대ㆍ의학과> 교수
floccinaucinihilipilification. (floccus+naucum+nihil+pilus=양털 한 무더기+하찮은 것+아무 것도 아님+머리 한 가닥=경시(輕視), 무가치 혹은 무의미하게 여김).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발해 삭발하고 승려가 돼 유유자적한 생육신 김시습의 심정이 이럴 것이다.

암자에 두고 온 난(蘭) 때문에 먼 길을 떠나서도 마음이 편치 않아 결국 중간에 되돌아오게 된 법정스님. 가진 것이 없어야 비로소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는 무소유의 파라독스는 견물생심(見物生心)에서 벗어나 부유해진 속내를 로그함수로 표현한 것일 터.

오랫동안 지병을 앓다가 돌아가신 분들은 대저(大抵) 손을 펴서 손바닥을 하늘로 내보이지만, 갑자기 하직하신 분들은 주먹을 꽉 쥐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사람이 한평생 살면서 하고 싶고 또 해야 할 일들이란 한정된 여정 내에 비워내기 불가능한 미련과 아쉬움, 희원으로 가득 채워진 화수분이다. 그래서 매시간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해야 하는 모양이다.

말은 내뱉으면 이미 과거지사가 되어 버리듯이 바로 지금, 현재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과거와 미래를 실낱처럼 아슬아슬하게 연결한, 시간을 미분한 가상의 오브제인 셈이다. 이러한 시간 연대기 3부작은 내 자신을 통해야만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내밀한 연극이기 때문에 누구나 조금이라도 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고 발버둥치지 않는가.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책 ‘불안’에서 ‘자존심=이룬 것/내세운 것’이라 했다. 결국 많이 바랄수록 더 좌절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에 요구를 버리는 것은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만큼이나 행복하고 마음 편한 일이다. 자아에 더해지는 모든 것은 자랑거리일 뿐만 아니라 부담이기도 하다. 자존심과 욕망을 낮출수록 모욕감과 불안감도 해소된다.

작년에 암수술을 받고 비탄해 하셨던 지인의 모습에서 문득 편안함을 느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움켜쥐기만 했던 손바닥을 펴게 되니까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고 하신다.

 하긴 그동안 방법을 몰라서 앞만 보았을까. 산책길 옆에서 피어난 이름 모를 봄날의 꽃잎만 보고도 가슴이 벅찰 수 있다면 어느 시인의 마음이 부럽겠는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누구나 일등이 될 수는 없지만 꼴찌가 항상 꼴찌로 남는 것도 아니다. 밭에 씨를 뿌리고 그 속에서 새싹이 자라 알록달록한 열매를 맺게 되면 가끔씩은 모든 것 잊고 흔들의자에 앉아 꽃냄새 맡으며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져보는 것은 어떨는지.

가슴과 머리속에 아무 것도 들어찰 수 없을 때까지 우겨넣는 것을 멈추고, 정리를 해보자. 죽기 전에 해야 할 버킷 리스트에서 한 칸씩 지워나가다 보면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논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덧살을 붙여 나가는 고찰(discussion)이 아닌 계속 덜어내는 초록(abstract)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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