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을 넘어서
옷장을 넘어서
  • 심소연 기자
  • 승인 2011.03.13
  • 호수 13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젊음과 자신감을 무기로, 고태용 <비욘드 클로젯> 디자이너

신사동 가로수 길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생각보다 아담했다. 아늑한 조명이 밝히는 작업실엔 다음 컬렉션 준비를 위한 옷들과 더불어 커다란 사슴머리 박제와 테이블위의 강아지 인형까지. 다양한 느낌의 장식들이 그의 자유분방함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색으로 가득한 옷장의 문을 열어봤다.

나만의 생각으로
브랜드 ‘비욘드 클로젯’의 대표 고태용 디자이너. 그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 의상협찬, 서울패션위크 최연소 데뷔 등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의 첫 대학생활은 사회학과에서 시작됐다.

누구나 그렇듯 그도 그저 옷을 좋아하는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다. 하지만 여러 디자이너들의 패션쇼를 바라보며 자신도 저런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그는 의상학과로의 편입을 결심했다.

“해병대 생활을 마치고나서 편입준비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보다 그냥 재미있게 대학생활을 하고 싶어서 의상학과에 지원했죠. 그러다 3, 4학년을 다니면서 진로를 고민할 때 패션디자이너의 꿈을 갖게 됐어요.”

편입생이었던 만큼 다른 동기들에 비해 이론적인 부분은 다소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의상에 대한 관심과 실무적인 기술들로 앞서나갔다. 나중에는 친구들이 의상 디자인에 대해 물어오기까지 했다. 그는 누구보다 강했던 의상에 대한 관심을 점점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저는 제가 직접 입어볼 수 있는 남성복을 주로 디자인해요. 직접 입어보면 이 옷의 어디가 불편한지 확실히 알 수 있잖아요. 옷은 1cm로도 큰 차이가 나거든요. 제 스타일은 주로 클래식을 비틀고 프레피적인 디테일을 추가한 것이에요. 그 다음 저의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거죠.”

프레피룩은 미국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의 학생이 입는 옷차림이다. 기본적인 프레피룩에 고태용만의 색깔을 담은 「꽃보다 남자」 F4의 옷차림을 떠올리면 쉽다.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나서 6개월 후 그는 하상백, 이상봉 등 유명  디자이너들이 참가했던 서울패션위크에 도전한다.

나만의 방식으로
“패션위크에 참가했던 건 패션쇼를 통해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서였어요. 그전에 일했던 곳에서는 창의성이 중요시 되지 않아서 회의감을 많이 느꼈거든요. 그래서 내가 생각하는 옷을 자유롭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러기 위해서는 잘 알려진 디자이너가 돼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한국 시장 특성이 옷도 물론 좋아야 되지만 디자이너나 브랜드를 먼저 보잖아요. 그래서 저를 먼저 알리려고 노력했어요.”

그가 참가했을 당시의 경쟁률은 50:1이었다. 만만치 않은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았다. 그는 ‘될까, 안 될까’를 고민하기보다 된다고 생각하고 밀어붙이자고 결심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처음 쇼를 준비한다고 했을 때는 학교에서 취업하라고 성화였어요. 주변 사람들도 걱정을 많이 했죠. 하지만 굳이 주변 사람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어요. 차라리 열심히 해서 보란 듯이 성공하는 게 낫죠. 안된다고 했던 것을 되게 하면 사람들은 다시 나를 찾게 되거든요.”

쇼를 준비하기로 마음먹었지만 자금이 부족했다. 그래서 그는 한 온라인 쇼핑몰에서 일을 시작했다. 쇼를 준비하던 그에게 필요한 옷감을 떼기 위해 동대문을 뛰어다니고, 직접 원단을 다루는 일들은 좋은 경험이 됐다. 어느 정도의 자금이 마련되고 그는 본격적으로 쇼를 준비했다. 쇼의 테마는 ‘the green side of the moon’이었다. 달의 이면. 막연히 옷을 좋아하던 때부터 컬렉션을 준비하기까지의 과정 속에서 그가 맛본 디자이너의 이상과 현실의 충돌을 쇼에 반영한 것이다.

“학교 다닐 때 생각하던 화려한 디자이너에 대한 이상과 선배들의 현실이 너무 다르다는걸 느꼈어요. 세상은 내가 눈으로 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달의 이면이라는 콘셉트를 잡았어요. 쇼에 나갔던 옷을 예로 들면 겉으로 봤을 때는 재킷 안에 조끼를 입은 스타일이지만 실제로는 재킷과 조끼가 하나로 돼있는 거죠.”

처음이었던 만큼 기능적인 면은 많이 놓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컬렉션마다 로고를 직접 구상하고 음악도 자신이 고르고 믹싱을 하는 열의를 보였다. 자신의 쇼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옷뿐만이 아닌 그의 쇼 전체가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생각하길 바랐다. 젊고 위트 있는 감각을 인정받은 그는 우리나라 서울패션위크 최연소 디자이너로 데뷔한다.

나만의 자신감으로
첫 번째 컬렉션을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두 번째 컬렉션을 준비하던 그에게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쇼가 끝나고 6개월 후에 「꽃보다 남자」 제작진이 전화를 했어요. 제 쇼의 프레피룩을 보고 드라마와 어울릴 것 같다고 했죠. 그런데 연기자들 중에 유명한 사람이 한명도 없는거에요. 그래도 드라마 내용이 재미있을 것 같아서 디자인에 참여했는데 그게 의외로 대박을 친 거죠.”

이어지는 인터뷰와 CF촬영. 드라마 ‘꽃보다 남자’ 상승세와 함께 그의 이름도 뛰어올랐다. 사람들의 인식이 높아지면서 그는 대학생시절부터 꿈꿨던 ‘나만의 브랜드’에 한걸음 다가갔고 마침내 2008년, 그는 브랜드 ‘비욘드 클로젯’을 출시한다.

“비욘드 클로젯의 뜻은 말 그대로 ‘옷장을 넘어서’에요. 옷장이라는 게 옷을 보관하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스타일이나 성향을 볼 수 있는 공간이잖아요. 그 공간을 넘어보자는 뜻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어감이 너무 좋았어요. ‘클로젯’은 제가 추구하는 부드럽고 위트 있는 옷 스타일과 어울려서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고 앞에 붙는 단어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친누나가 비욘드 클로젯은 어떠냐고 그랬는데 괜찮은거에요. 그래서 그걸로 정했죠.”

그는 브랜드 런칭에 이어 세컨드 라인을 만든다. 세컨드 라인이란 패션쇼에 올라오는 의상보다 다소 일반화된 보급형 의상을 말한다. 이를 통해 그는 대중들에게 한걸음 더 다가갔다. 세컨드 라인을 통해 얻은 자본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옷들을 컬렉션을 통해 보여준다. 끝없는 도전을 보여주는 고태용 디자이너. 그의 영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저는 일상에서 영감을 많이 얻어요. 밀리터리를 콘셉트로 쇼를 했을 때는 저의 군대시절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보통 해병대를 주제로 한다고 하면 굉장히 강하고 거칠 거라는 인식을 갖잖아요. 하지만 저는 소년과 성인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소년이 느끼는 감정에 초점을 맞췄어요. 고향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 전쟁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들을 옷에 녹여냈죠. 겉으로 봤을 때는 완벽한 밀리터리룩이지만 내부 소재는 양털이나 니트같이 약간 포근한 느낌으로 믹스 매치했어요.”

소비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쉬운 콘셉트를 잡는 고태용 디자이너. 그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잃지 않으면서 좋은 옷을 만들어 가고 싶다고 전했다. 자신의 옷에 대한 자부심이 굉장히 크다고 말하는 그는 학생들도 자신감을 가지라고 당부했다.

“우리와 비슷한 가격대와 콘셉트를 갖고 있는 디자이너들을 봤을 때 저는 우리 옷이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우리 옷이 더 나아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하죠. 친구들도 확실하게 알았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경쟁시대에요. 같이 공부하고 있는 학교의 친구들, 다른 학교의 학생들, 더 나아가서는 해외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국학생들 모두가 결국 경쟁상대가 돼요. 이 점을 확실히 인식하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일러스트 심소연 기자
사진 류민하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