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서 재앙이 된 나
생명에서 재앙이 된 나
  • 유지수 기자
  • 승인 2011.03.12
  • 호수 13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91년 3월 14일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
나는 영남지방 전역을 돌아 남해로 흘러가는 한국 제2의 강, 낙동강이다. 대구, 부산 및 경남지역의 식수원인 내게 오늘 큰 위기가 찾아왔다. 상류지역 구미공단에 위치한 두산전자 페놀원액 저장탱크의 파이프가 파열돼 30톤가량의 페놀이 유입된 것이다. 강한 살균작용을 가진 페놀은 다른 물질과 합성해 전기ㆍ기계부품과 단열재, 접착제 등으로 사용되는 화학물질이다.

아침이 밝아 나는 언제나처럼 식수가 되기 위해 취수장에 도착해 염소 소독을 받았다. 그런데 소독을 마치고 나온 내게서 엄청난 악취가 나는 것이었다. 페놀 원액은 염소와 만나면 클로로페놀이 생성돼 최대 100배나 심한 악취가 난다. 오염된 나를 가장 먼저 발견해 신고한 것은 대구시민들이었다. 하지만 취수장 측은 원인 규명도 하지 않고 더 강력하게 소독하기 위해 내게 염소를 과량 투입했다. 심각하게 오염된 나를 마신 시민들은 두통과 구토를 호소했고 나는 문제가 개선되지 않은 채 마산과 부산까지 흘러갔다. 수돗물의 페놀 수치는 일시적으로 0.11ppm까지 올라갔는데 이는 우리나라 허용치의 22배, 세계보건기구 허용치의 110배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난 지옥의 물이 된 것 같아 너무 괴로웠다. 나를 마시고 임산부가 유산을 하는 등 끔찍한 결과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내 몸속의 페놀을 희석하기 위해 안동댐에서 초당 방류량을 30톤에서 50톤으로 늘렸다. 정수장에서는 염소 소독을 중단하고 활성탄, 오존, 이산화염소로 나를 소독했다.
그러나 기존의 허술한 식수 관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사고에 대한 정부의 대처 또한 너무 늦은 상태였다. 나를 식수원으로 하는 경남 주민들 뿐만 아니라 전 국민이 수돗물에 대한 분노와 불신을 갖게 됐다. 1989년과 1990년에 수도권에서 일어난 식수원 오염 파동에 이어 3년 연속으로 수질오염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한편으론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일로 인해 나와 내 형제들(한강, 영산강, 금강)의 관리 수준이 대폭 개선됐기 때문이다. 사실 말은 못했지만 이전에도 기업들은 정화비용을 아끼기 위해 내게 페놀을 방출한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 이번 사건으로 이 사실까지 밝혀지자 기업들의 안일한 환경방침과 비윤리적인 기업경영이 여론에 질타를 받았다. 사고를 낸 두산전자는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고 관계자 13명이 구속됐다.  각 시민단체에선 두산 제품 불매운동을 벌였다. 또 이례적으로 환경처 장ㆍ차관이 동시에 경질됐다.

가장 큰 소득은 이회창 국무총리가 직접 발표한 ‘4대강 수질개선 대책’이었다. 수질 측정 항목에 페놀류를 추가하고 단속반을 구성해 폐수 방출에 대해 집중적인 단속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산업폐수는 오염도가 배출 허용 기준치 이내라고 할지라도 하수종말시설을 반드시 거치도록 했다. 또 이번 일을 계기로 환경범죄범에게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을 내리게 하는 강력한 형사처벌법이 제정됐다.

여러 부처에 나눠져 있던 나에 대한 업무가 환경처 관할로 옮겨져 나는 환경처의 집중 관리를 받게 됐으며 환경처는 환경부로 개편됐다. 소문에 의하면 두산전자가 고의적 사고가 아니었다는 이유로 영업정지처분에서 풀려난다고 하던데 걱정이다. 하지만 이 한 몸 악취에 시달려 희생해 환경정책의 변화를 이끌어 냈으니 앞으론 관리가 철저히 이뤄져 맑고 깨끗한 모습으로 다시 국민들을 만나고 싶을 뿐이다.

도움: 환경부 자료실, 논문 「사회적 위기에 대한 정책 대응과 분석」,
저서 「환경 30년사」, 정준금<울산대ㆍ행정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