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도 씨로부터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미도 씨로부터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 류민하 기자
  • 승인 2011.03.05
  • 호수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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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뛰는(jumping together) 사람, 외화번역가 겸 작가 이미도 씨

jumping together. 같이 뛴다고? 이게 무슨말일까. 사실 jumping together는 여러 분야를 넘나든다는 뜻이다. 영어가 좋고 영화가 좋아서 외화번역을 시작한 그는 숨어있던 창조욕구를 이기지 못해 작가가 됐다. 그는 뭐든 재미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가 생각하기엔 창조성도 재미를 위해 존재한다.

‘이름난’ 번역가
「인생은 아름다워」 , 「식스센스」, 「슈렉」,  「반지의 제왕」,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쿵푸팬더」 . 모두 낯익은 제목들이다.  놀랍게도 이 영화들은 모두 이미도 씨가 번역한 작품들이다. 1993년 외화 「블루」로 영화번역을 시작한 그는 햇수로 19년 동안 500편이 넘는 영화들을 번역했다. 요즘엔 조금 덜하지만 몇 년 전만 해도 웬만한 외화는 거의 그가 번역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그게 다 착시에요 착시.” 그가 손을 내저었다. “1년에 대략 영미권 영화가 200편 정도 극장에서 개봉돼요. 그 200편을 나 혼자서 어떻게 봐요. 제가 연간 평균적으로 소화할 수 있는 영화는 스무편 내외에요. 대충 10%정도밖에 안되는데 크레딧에 번역 이미도가 계속 나오니까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제가 번역했던 영화들이 흥행했던 이유도 있죠.”

지금이야 엔딩 크레딧에 번역가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같은 영화라도 관람자가 영화를 보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극장용 자막과 케이블 TV 방영용 영화자막은 다르게 제작된다. 그는 번역자의 이름을 밝히는 ‘번역 실명제’를 처음 시작했다.

“지금은 수준이 많이 높아졌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비디오나 케이블 TV에 들어가는 번역을 지금처럼 정성들여 하는 것 같진 않다는 느낌을 받았었죠. 실명제를 하게 된 취지는 번역의 질을 높여보자는 거였어요. 책임의식을 갖고 해야 조금이라도 더 정성을 쏟을 것 아니에요.”

번역 실명제를 처음 시작했던 그. 우리나라 외화번역에 어떤 전환점이라 할만하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는 영화 번역일에 ‘얼떨결에’ 뛰어들었다. ‘얼떨결에’라고 표현은 했지만 그는 준비돼 있었다. 공군 학사장교 근무를 마치고 사회생활을 준비하던 무렵, 그는 미국에서 영화 판권을 거래하고 있던 지인의 소개로 국내 영화사들에 영문 보도자료를 번역해 외화를 소개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이 영어실력을 갖추고 영화도 좋아하던 그에게 자막 번역을 해보라고 권했다.

“제안을 받고 ‘어 재밌겠는데?’ 생각은 했지만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모르니까 자막 입히는 회사에 찾아가서 기술적인 부분들을 배우곤 제가 평소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감대로 자막을 붙였다 뺐다 하면서 익혔어요. 번역하고 자막을 넣고 시사를 했는데 신기해 죽겠는 거에요. 하하. 내가 번역한 자막을 통해서 사람들이 영화에 몰입을 하는 광경도 신기했고 처음 해본건데 내가 기술적으로 잘 맞춘게 너무 신기했어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어찌나 빠져들었던지 십여 년 동안 한눈을 안 판거죠.”

번역과 창조
번역가들은 번역을 잘하려면 외국어뿐 아니라 우리말을 더 잘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번역은 제2의 창조라고도 한다. 영화번역의 경우 모국어로 또 하나의 영화대본을 만드는 셈이다.

“보통 창조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을 떠올리잖아요. 그것도 맞긴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정보를 잘 버무려내는 것도 창작이라고 할 수 있어요. 창작도 벤치마킹적 접근이 가능한거죠. 이걸 가장 잘하는 사람이 스티브 잡스에요. 스티브 잡스는 몇가지 특징들을 융합시켜서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들어 내잖아요. 그는 이걸 커넥팅이라고 표현해요. 마찬가지로 원래의 텍스트를 우리 언어로 부리는 과정이 번역이에요. 번역의 결과가 어떤 효과를 발휘한다면 창작이 되는거죠.”

그에게 좋은 번역이란 창조적 번역이다. 단순한 직역이 아니라 텍스트에 담겨 있는 수많은 문화와 정보를 읽어주는 번역. 그는 창조적 번역을 하기위해서 필요한 자질로 언어감각과 인문학적 감성을 꼽았다. 이에 따라 번역의 색깔과 맛이 달라질 수 있다.

“번역가의 우리말 구사능력이 뛰어날수록 더 좋은 번역이 가능해요. 원어로 된 창작물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언어를 통해 옮기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이 창작이죠. 그 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능력이 필요하겠고 풍부한 인문학적 지식을 갖추고 있으면 언어의 색깔, 맛, 멋 분위기를 살리기가 유리하겠죠.”

그는 번역에서 뿐 아니라 강연과 책에서도 모두 ‘창조’라는 키워드를 강조한다. 모두들 창조성을 강조한다. 창조성은 대체 왜 그렇게 중요한걸까.

“내 삶과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창조적 사고가 필요해요. 창조는 변화의 근거가 되거든요. 근데 쉬워요. 창조력(creativity)을 다이아몬드라고 봅시다. 그럼 C로 시작하는 creativity의 원석은 호기심(curiosity)이에요. 호기심을 가지고 뭔가를 열심히 관찰하면 curiosity가 creativity로 변하는 거에요. 호기심을 즐기기 위해 필요한 건 (크게)인문학 공부! 인문학은 수많은 인간사의 사례집이어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호기심이 길러져요.

넘나들기의 흔적
유명한 작가들은 번역일을 병행하기도 한다. 그는 거꾸로 영화번역을 하다 2004년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다. 지금은 신문에 칼럼도 연재하고 있다. 기업체를 돌아다니며 ‘창조적 상상력을 디자인하자’라는 주제로 강연도 하고 있다.

“십여 년 동안 번역에 푹 빠져 지내다 보니 1차적 창작도 해보고 싶다는 갈증이 오기 시작하는 거에요. 비유하자면 입양만 해왔는데 내 아이를 낳고 싶어진 거죠. 그래서 책을 썼는데 어느 정도 잘 됐고. 창작의 재미를 경험해봤는데 계속 할 수만 있다면 글을 안 쓰는게 이상한 거잖아요. 둘이 서로에게 스승 역할을 해주기도 해요. 글을 쓰면서 좋은 번역을 하게되고 번역일이 제 글쓰기 실력을 키워줘요."

영화와 영어. 그가 쓰는 책이나 칼럼을 보면 그의 넘나들기의 흔적이 잘 드러난다. 그의 글엔 그만의 글쓰기 방식이 있다. 책과 영화, 유명인들의 일화를 끊임없이 원문으로 인용하며 그의 생각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글을 전개하는 것이다.

“조선일보에서 ‘이미도의 영화 속 영어’라는 칼럼을 제일 먼저 시작했어요. 신문사에선 저에게 영화 속의 명대사 원문을 함께 소개하는 칼럼을 구성해달라고 요청했는데 저는 이왕이면 어떤 책하고 연결시켰을 때 훌륭한 영화를 많이 선정했죠.”

이런 방식의 글쓰기를 하려면 엄청난 양의 독서가 뒷받침 되어야 함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좋은 책이 너무 많기도 하고 번역이든 글을 쓰기 위해서든 필요한 공부의 과정이라며 겸손을 표했다. 그가 읽었던 많은 글귀 중에 마음에 남는 두 가지를 꼽아 들려줬다. 그가 품고 있는 큰 주제였다.

“소통의 기능을 일단 제외하고 언어가 가진 대표적인 두 가지 기능은 치유와 창조에요. 「굿 윌 헌팅」이라는 영화를 보면 상담치료사 숀이 가족으로부터 버림받은 아픔을 가진 수학천재 윌 헌팅에게 ‘It's not your fault.(그건 너의 잘못이 아냐.)’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해서 해줘요. 이 말을 반복해주니까 주인공이 마음을 열고 변하게 되요. 치유가 된 거죠. 창조적 언어의 좋은 예는 화성시의 슬로건이에요. ‘지구보다 큰 생각, 화성시’ 화성이 지구보다 크잖아요.

그래서 그런 표현이 나온거에요. 얼마나 재밌어요? 창조성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재미에요. 각각 치유와 창조로 기능하는 언어지만 핵심주제는 변화에요. 우리에게 익숙하지만 굉장히 큰 주제죠.”                
                          

글ㆍ사진 류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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