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권하는 대학의 졸업생 ‘상품’ 만들기
‘스펙’ 권하는 대학의 졸업생 ‘상품’ 만들기
  • 우지은 기자
  • 승인 2010.12.31
  • 호수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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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보다 실되기 쉬운 졸업 요건, 학생들 불만 많아

대학이 대기업으로 졸업생들을 얼마나 배출하느냐가 명문대학의 기준이 되어버림에 따라 재학생들 스펙 올리기를 제도로 실시하고 있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이제는 스펙이 또 하나의 졸업 요건으로까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국내 대부분의 대학은 논문, 공인영어성적, 컴퓨터 자격증과 같은 졸업 요건을 제시하고 있다. 졸업학점을 모두 이수하더라도 졸업 자격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졸업을 할 수 없다. 이에 따른 폐해들도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신년호를 맞아 진정한 대학교육이 나아가야할 길을 되짚어본다.


높아만 가는 졸업 요건

고려대의 경우 기업의 요구에 대한 학생들의 교양 수준을 높이기 위해 지난 2004년부터 공인된 2급 한자 자격증이나 교내한자인증시험을 통해 한자 실력을 인증 받아야 졸업할 수 있도록 제도화시켰다.

하지만 취지와는 달리, 한자 때문에 졸업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상당수 발생하게 됐다. 곽종범<고려대ㆍ국어교육과 09> 군은 “개인이 필요하면 따는 것이지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이 또한 학생들의 스펙을 올리기 위한 학교의 전략으로 보여 진다”고 꼬집었다. 박의순<고려대ㆍ경영학과 10> 군 또한 “졸업은 해야 하니 울며 겨자먹기로 취득하기 위해 사교육을 이용하려는 학생들과 학원가의 상업적 행위가 맞물려 단기속성 등의 강의가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올해 새로이 선출된 고대 총학생회도 이를 문제점으로 인지해 관련한 공약을 내걸었다. 조우리<고려대ㆍ총학생회> 회장은 “외부강사를 초빙한 교내 한자특강의 경우 자체시험과 접목시킨 프로그램임에 따라 예상문제를 나눠주기 때문에 달달 외우기만 하면 손쉽게 인증 받을 수 있고 학군단만을 대상으로 하는 시험의 경우에도 컨닝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며 “이는 결국 실제 2급 수준의 실력을 갖추지 못하는 겉핥기식 제도일 뿐 아니라 돈ㆍ시간 낭비만 가중되는 것 같아 PF형식의 필수 교양 강의로 대체하자는 공약을 내걸었다”고 전했다.

실제 고대신문이 지난 10월 본교생 45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 결과 2급 이상의 한자능력시험에 합격한 223명의 학생 중 ‘自由(자유)’를 제대로 쓴 학생은 110명(49%)에 불과했다. 또 응답자의 74%가 ‘졸업요건을 충족하기 위함’을 자격증 취득 목적으로 답했다. 이에 조 학생회장은 “학우들 대부분 2급 정도의 수준 까지를 졸업 요건으로 내세우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숙대 문화관광학부도 까다로운 졸업 요건을 내걸었다. 지난 2009년 8월엔 단 두 명만이 졸업했을 정도다. 이 학교에 재학 중인 고윤정<숙명여대ㆍ문화관광학부 10> 양은 “특히 외국어 자격증을 3개나 따야 한다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라며 “제1외국어야 영어로 토익이나 토플점수를 요구하니 우리나라 대학생이라면 피할 수 없는 부분이라 생각하지만 복수 전공이 의무인 우리 학교 특성상 제2,제3외국어를 4년 동안 동시에 해내기란 벅찬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에 따라 문화관광학부의 경우 휴학이 비일비재해 다른 과에 비해 유독 고 학번 선배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높아만 가는 사교육비

이러한 졸업 필수요건들은 학원가마다 열띤 경쟁으로 번져 교내특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예비대학생 A양은 “학교가 만들어 놓은 졸업 요건에 학원들만 덕 보는 꼴”이라 말했다. 실제 한자 2급과 같이 각 대학마다 졸업요건으로 내세우는 자격증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학원들과 이들이 특강 나가는 대학들의 이름이 우후죽순 뜬다. 한 유명학원에 문의해본 결과 1개월 단기 속성반의 경우 약 400명 정원에 한 사람 당 약 9만원의 수강료로 이득을 창출하고 있었다.

모 온라인 구인 업체가 지난 2006년, 4년제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 1천775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조사에 따르면 55%인 976명의 학생이 취업을 위해 과외학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취업과외로는 39%가 토익ㆍ토플 학원 수강, 28.4%가 자격증 취득 학습(복수응답)이었다. 또 대학생 10명 중 6명은 다른 취업 준비생들처럼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떨어질 것 같다는 불안한 심리 때문에 사교육을 받는다. 지난 1월 취업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학생 2천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조사에서는 대학생 한 사람이 '스펙'을 쌓기 위한 사교육비로 한 달 평균 27만1000원, 연간 325만원을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청년 단체는 “재학생들의 지적 수준 향상에도 엄연히 책임과 의무가 있는 대학이 이를 돕지는 못할망정 학생들 개개인의 일로 전가시키고 심지어 스펙을 요구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라며 “대학이 학생들의 사교육 불안을 해소시키기 위한 ‘교양’ 제도를 모색 하지 못하고 ‘스펙’시류에 편승하려해 학생들의 사교육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해외 일부 대학은 오래전부터 이를 인식하고 삶의 밑천인 교양을 우선적으로 가르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높아만 가는 진정한 교육에 대한 열망

해외의 경우 개별전공을 강조하는 종합대학과 달리 인문ㆍ사회ㆍ자연ㆍ과학ㆍ예술, 글쓰기 등의 전반적 교양과목을 깊이 있게 다루는 학부중심의 교양학부 대학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대학들은 교수들이 연구보다 학생들을 교육하는데 전력을 다한다는 점에서 젊은이들이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고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적성을 살릴 수 있는 힘을 발휘하도록 해준다.

미국 뉴욕에 위치한 세인트존스대학의 경우 전공과 선택 과목 없이 100권의 고전을 읽고 토론하는 ‘Great Books’ 프로그램이 4년 커리큘럼의 전부다. 오리건 주의 리드 대학의 경우 학생들은 교양교육의 뼈대를 세워주는 필수강좌를 수강하고 논문 작업 전인 3학년에 수료자격시험을 치른다. 스스로 학습계획을 짜 1년 내내 개인 연구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대학들도 있다. 이러한 대학들의 대부분은 학생 개개인의 학점을 공개하기 보단 학생들의 장단점을 함께 평가하는 심층평가를 진행한다는 특징을 갖는다.

익명을 요구한 유학준비생 C양은 “이러한 학부중심대학은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고 학생들이 진정 필요로 하는 공부를 하게끔 유도 한다”며 “교양중심으로 학생들의 능력을 길러 사회에 기여하는 인재를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국내 몇몇 대학도 자체적인 교양시스템을 제도화하는 추세에 있다. 고전 바람이 불면서 고전 100권 읽기를 학부생들의 필수과제로 제시하고 있는 영남대와 세종대 등이 그 예다. 영남대의 경우 ‘명저 읽기와 글쓰기’라는 과목을 전국최초로 교양필수로 지정, 1학년생 전원에게 고전읽기를 의무화 했다. 숭실대는 2007년부터 독서후기클럽을 만들어 매월 초 선정된 책을 신청한 학생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의무적으로 독서 감상문을 제출하게 해 첨삭지도를 해주고 있다. 현재 독서 토론 클럽만 해도 18개에 달하고 독서여행, 인문학축제, 저자 강연 등으로 학교의 예산 지원과 그 범위도 늘어나고 있다.

숭실대 도서관 박영철<숭실대ㆍ학술정보운영팀> 팀장은 독서후기클럽을 만든 취지에 대해 “국내 대학을 뛰어넘는 인재 양성과 공동체 의식의 함양을 목표로 한다”며 “인문적 소양을 기르는 것은 사회에서 원하는 업무 능력을 키우는 것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주체적 삶의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박 팀장은 “오피니언 리더가 되려면 먼저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글쓰기ㆍ말하기 소양이 길러져야 하는데 토론 클럽과 글쓰기 교실 등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며 “학생들 스스로도 이를 통해 입사 면접 시 많은 도움이 됐다고 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지은 기자  7thheaven@hanyang.ac.kr
일러스트 김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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