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생각은 어디서 왔습니까”
“당신의 생각은 어디서 왔습니까”
  • 김규범 기자
  • 승인 2010.11.27
  • 호수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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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의 이방인에서 똘레랑스 전도사로, 홍세화<한겨레신문> 기획위원

날카롭다. 인터뷰 하던 기자를 향해 오히려 돌발 질문을 던지는 홍세화<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의 눈빛이 매섭다.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를 비롯한 숱한 저서로 우리 사회를 통렬하게 일깨우던 모습다웠다. 대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일갈하는 그 앞에서 어느새 인터뷰는 명 강의가 되고 기자는 말씀을 쫓기 바쁜 학생으로 변해있었다.

낯선 땅에 버려진 이방인과 한국
홍 기획위원은 1979년 남조선 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이하 남민전)사건에 연루돼 하루아침에 망명자 신분이 되고 말았다. 남민전 사건은 당시 반유신투쟁을 하던 조직인 남민전을 간첩으로 몰아 84명이 대부분 구속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06년 민주화 운동으로 명예 회복됐다.

그는 망명 당시의 스스로를 ‘삼중의 이방인’이라 표현한 바 있다. “한 마디로 고립무원이었습니다. 비빌 언덕이 전혀 없었죠. 간첩으로 몰린 저는 가까이 있던 프랑스 교민들조차 접촉할 수 없었습니다.”

한국의 레드 콤플렉스가 먼 타지에 있던 그에게까지 굴레를 씌운 셈이다. 당시 한국은 광주민주화운동이 벌어지고 제5공화국이 들어서던 시기였다. 무참히 억압받고 있었지만 그는 한국의 미래를 낙관했다고 한다.
“당시 한국은 강압적인 독재체제가 자리 잡고 있어 지금의 미얀마와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87년 6월 항쟁이 시작하기 전까지 매우 어려운 시기였지만 국민들의 민주화 열망이 가득했기에 곧 독재 체제가 끝나고 민주화를 이룩하리라 생각했죠.”

최근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민주화 투쟁을 숱하게 겪었던 그는 우려는 하지만 발전된 한국의 민주주의를 믿는다고.

“물론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과거와 비교했을 때 많은 발전이 있었습니다. 고문이 서슴없이 자행됐지만 지금 고문은 상상할 수조차 없잖아요. 이 점 하나만으로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이 꽤 높아졌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시끄러워지는 한국과 민주주의
최근 우리나라는 여러 이슈로 꽤 시끄러워졌다. 이를 두고 한편에선 불필요한 대립으로 사회적 비용만 소모된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중인 긍정적 현상이라고 말한다. 오히려 비판하는 세력이 민주주의의 본질을 잘 모르고 있다고 평가했다.

“프랑스는 시끄러운 민주주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19C 빅토르 위고는 ‘빠리는 항상 이를 드러낸다’고 평했다. 이를 드러낸다는 말은 항상 웃거나 화낸다는 뜻이죠. 이렇게 프랑스의 민주주의는 시끄럽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에서 시끄러운 민주주의가 퍼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득권 세력들은 본질적 의미를 따지기보단 피상적인 현상만 따지며 ‘시끄러움’만을 강조합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는 얼마 전 있었던 프랑스 연금개혁 관련 시위도 프랑스의 시끄러운 민주주의를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더불어 프랑스에선 실질적 민주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증거라고.

“본래 민주주의의 궁극적 지향점은 실질적 민주주의입니다. 선거권 같은 형식적, 정치적 민주주의가 정착되면 곧 경제 등 실생활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돼야 하는 게 맞습니다. 이를 폄하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 발상입니다. 한국에서도 이런 실질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습니다. 최근 한나라당의 복지 강조도 이를 반영합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저서 「진보의 미래」에서 ‘진보도 경제를 이야기해야 먹힌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적 있다. 사실 지금껏 진보는 경제이야기에 약하다고 비판받았다. 이에 대해 진보 지식인이라 평가받는 홍 기획위원은 어떻게 생각할까.

“진보도 이미 경제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이슈가 됐던 무상급식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무상급식은 가장 실생활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그 뿐인가요. 참여정부는 이미 부동산 관련 정책을 쏟아냈습니다. 이보다 더 경제에 가까운 이야기는 논할 수 없다고 봅니다.”

똘레랑스와 한국 그리고 민주주의
홍 기획위원은 ‘똘레랑스’로 기억된다. 기자도  난생 처음 들어보는 개념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뇌리에 박혀있다. 하지만 아직 어렵고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이 낯선 개념에 대해 다시 한 번 물어봤다.

“똘레랑스란 ‘용인’입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죠. 출생지역, 종교 같은 기준으로 남을 평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말합니다. 다만 ‘용인해주지 않는 것’(엥똘레랑스)은 용인하지 않습니다.”

낯선 개념인 똘레랑스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그는 똘레랑스를 어떻게 접하게 된 걸까.
“똘레랑스는 프랑스에서 처음 접한 가치였습니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이주 노동자 문제, 여성 문제 같은 다양한 사회 문제를 둘러싼 토론에서 똘레랑스가 자연스럽게 논의되고 있었는데 이런 모습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똘레랑스를 익힐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똘레랑스도 완벽하진 않다고 한다. 똘레랑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는 점은 곧 똘레랑스가 완벽히 자리 잡지 못했다는 사실의 반증이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프랑스의 똘레랑스가 수준 높은 원인은 사회 지배세력의 차이 때문이라고.

“물론 아직 프랑스도 똘레랑스가 많이 부족합니다. 하지만 한국에 비해선 진일보된 점이 많습니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은 똘레랑스를 거부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기반이 엥똘레랑스이기 때문이죠. 지역주의 같은 엥똘레랑스를 기반으로 패권주의를 누리고 있는 그들은 당연히 똘레랑스의 확대를 거부합니다. 이 점이 우리와 프랑스의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죠.”

듣다보니 어렵다. 똘레랑스의 중요성은 이해하겠지만 한국에 똘레랑스가 필요한 이유를 아직 모르겠다. 고개를 갸우뚱 거리는 기자에게 그는 똘레랑스가 실질적 민주주의 실현의 열쇠라고 말한다.

“이미 정치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한국은 이제 실질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우선 출생, 신념, 종교 등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똘레랑스가 그 답을 제시해 줄 수 있습니다.”
사실 그는 여러 저서들을 통해 우리사회의 기득권층을 강력히 비판하곤 했다. ‘용인’이라는 똘레랑스를 강조하는 그가 이들만은 용인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엥똘레랑스이기 때문이라고.

“어떤 사회든지 지배세력은 존재합니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이지요. 중요한 점은 지배층의 지위에 맞는 능력과 도덕적 의식의 존재여부입니다. 우리사회의 지배세력은 이 두 가지가 모두 없습니다. 능력도 없고 사회적 책무(노블리스 오블리주)도 이행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오로지 학벌, 지역주의, 반공이념을 기반으로 지배할 뿐입니다.”

대학생과 ‘내 생각’ 키우기
그는 수 없이 많은 대학생 대상 특강을 진행한다. 얼마 전 ERICA캠퍼스 인문학 콘서트에서도 강단에 선 적이 있다. 그가 이렇게 수 많은 대학생들을 찾아다니며 만나는 이유는 대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함이라고.

“본인의 생각이 어디서 왔는지 되짚어봐야 합니다. 본래 사람은 한번 정한 생각을 여간해선 바꾸지 않습니다. 다른 생각이 개입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지요. 중요한 점은 과연 누가 그 생각을 선택한 주체인가 하는 것입니다. 기자님의 생각은 누가 정한 것입니까? 100% 본인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나요. 아니라면 본인의 의지가 아닌 생각들은 누가 머릿속에 넣은 것일까요. 바로 지배층입니다. 학교와 교육제도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주입된 생각들이 지배하고 있는 셈입니다.”

친절한 교수님 같던 그가 갑자기 눈빛이 날카로워진다. 요즘 대학생들이 자신만의 생각이 없다는 점이 가장 안타깝다고. 글쓰기가 배제된 교육제도가 대학생들의 생각을 앗아갔다고 말한다.

“프랑스에서는 학생들에게 흰 종이 한 장을 주면 글쓰기로 자신의 생각을 채워나가지만 우리나라 학생들은 흰 종이를 주면 암기했던 지식들을 옮겨 적기에 바쁩니다. 물론 프랑스도 학교를 비롯한 정규교육과정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학생 개개인의 생각을 키울 수 있는 기회는 열려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기회가 없죠.”

실제로 프랑스 중학교 3학년생은 ‘사형제도가 옳은가?’라는 비교적 간단한 명제에 대해 탐구하지만 고등학교 졸업 즈음에는 ‘국가는 개인의 적인가?’라는 심오한 주제까지 섭렵한다고 하니 대학생으로서 부끄러워졌다. 그는 낙담하는 기자에게 많은 독서를 할 것을 조언했다.

“지배층의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선택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하죠. 특히 인문사회 쪽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이로움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탐구해야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면 자신만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하냐고요? 지배세력이 친절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불온서적이라는 딱지를 붙여서 말이죠.(웃음)”       

사진 류민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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