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만든 1000일의 영웅, 존 F. 케네디
미국인들이 만든 1000일의 영웅, 존 F. 케네디
  • 김보미 수습기자
  • 승인 2010.11.27
  • 호수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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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동포 여러분, 조국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묻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십시오.” 국민에게 국가에 대한 헌신을 역설하는 존 F. 케네디의 취임 연설이다. ‘1000일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존 F. 케네디는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자유주의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 케네디는 ‘권력을 잡고 싶으면 마음을 얻어라’라는 말을 인생에 투영시켰다. 웅변과 재기에 뛰어나 기자 회견 등에서 텔레비전을 이용해 이미지를 심는 정치를 했고, 하버드대를 비롯한 각계로부터 많은 지식인을 각료로 포섭해 화려한 슬로건을 얻기도 했다. 그는 냉전적 상황에서도 군사적 충돌과 물리적 대결보다는 정치적 대화와 타결을 모색하려고 노력했다. 물론 그도 공산주의에 대해서는 강력 반대였지만, 강경노선보다는 시간이 걸리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더라도 평화적인 방법을 선호했다. 또 승자독식의 미국식 자본주의에 분배와 정부개입이라는 개념을 도입한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유지 발전시키려고 했다. 그의 구호였던 뉴프론티어 정신은 자유주의의 연장선상에 있었다고 평가받는다. 장준갑<전북대ㆍ사학과> 교수는 뉴프론티어에 대해 “이는 정치적 구호였을 뿐만 아니라 케네디 정부의 국내외 정치를 대변하는 개념이다”라고 밝혔다.

제 2차 세계 대전 동안 남태평양에서 고속 어뢰정의 해군 장교로 근무한 케네디는 배가 일본군에게 격침되자 위협을 무릅쓰고 동료를 구한 일로 영웅이 됐다. 케네디는 이 사건으로 무공훈장을 받는 등 당시 미국의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미국 국민의 영웅으로 재탄생했다. 그가 이렇게 영웅 대접을 받는 데에는 두 가지의 이유가 있다. 첫째는 미국인들의 ‘영웅 만들기’ 좋아하는 특징이고, 둘째로는 케네디라는 명문가의 자식인데다가 하버드대 졸업생이라는 점이 국민들에게 ‘엘리트’라는 긍정적인 인식으로 작용했다. 이에 대해 장 교수는 “물론 케네디의 당시 행동은 매우 자기희생적이고 지휘관으로서 목숨을 걸고 부하들을 구출했다는 면에서 당연히 박수받아 마땅한 영웅적인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불치병을 앓아 죽음이 항상 자신의 곁에 있다고 생각했고, 따라서 때로는 방종스런 행동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죽음이 항상 곁에 있기 때문에 용감하게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 과감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장 교수는 “과단성은 그가 대통령이 된 후에 잘 발휘되었는데, 쿠바미사일 위기 시에 그의 군사 참모들의 군사적 공격 요구를 끝까지 거부하고 소련과 정치적 협상을 밀어붙인 예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1963년 11월 22일 텍사스주 델러스에서 인기 절정에 있을 때 암살당해 미국민들의 가슴에 영원한 지도자로서 각인되었다. 또 케네디는 현실적 평화주의자로 미국 국민들에게 단결할 수 있다는 하나의 환상을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받는다. 장 교수는 이에 대해 “미국인들은 작은 선행에도 커다란 박수를 보내면서 한 사람을 영웅으로 대접하며 사회적 대리만족 내지는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강고한 반공주의자였으며 역대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적 정책을 국제적으로 실행했고, 미국의 국제적 영향력을 증대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또 짧은 재임 기간의 치적은 워싱턴과 링컨, 루즈벨트의 두드러진 업적에 미치지 못해 케네디가 과연 그만큼 높이 평가 받을만한 자격이 있느냐는 물음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동등한 처우를 보장하라는 흑인들의 줄기찬 요구에도 그는 소극적 자세를 임했다. 대외적 사안에서도 공과가 엇갈려 있다. 이를테면 미사일 위기 사태에 성공적으로 대처하고 핵실험 금지 조약을 성사시키기는 했으되, 그 성과는 쿠바 문제에 결말을 짓지 못하고 베트남 내전에 더 깊숙이 관여하는 과실로 상쇄된다.

살아서는 영웅, 죽어서는 신화가 된 존 F. 케네디. 불과 1000일의 임기로, 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높였으나 실질적인 전쟁의 책임 등을 둘러싸고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 내려지지 않았다. 장 교수는 “암살로 인해 그의 리더십과 신념 등이 실현되지 못하고 숭고한 것으로 남아버렸지만 그는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상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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