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 배척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소수자 배척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 한양대학보
  • 승인 2010.11.20
  • 호수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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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8년 11월 4일 미국에서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 됐다. 이 사건이 의미는 단순히 새로운 대통령의 탄생했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가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흑인은 처음에 노예로서 아메리카 땅을 밟았다. 흑인들은 그 땅에서 인간이 아닌 가축 대우를 받으며 생활했다. 남북전쟁 이후 흑인노예해방 선언에 의해 흑인들은 노예라는 꼬리표를 뗐다. 하지만 백인들의 머릿속에 있는 ‘노예’라는 이미지는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흑인들은 여전히 멸시 받았고 차별 받았다. 버스에는 흑인석이 따로 있었으며, 식당과 가게는 흑인들의 입장을 거부했다.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단은 조직적으로 미국 내 흑인들을 학살하기도 했다. 이 모든 일들이 불과 100년전 만 해도 미국에서 빈번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인권운동과 흑인들의 노력에 의해 흑인들은 미국 사회에서 그 입지를 굳혔다. 그 결과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억압과 핍박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가장 쉬운 예를 들자면 성차별이다. 성차별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남아 여성들을 차별하고 있다. ‘여성이라서 취직이 안 된다’, ‘여자라서 남자를 따라야한다’와 같은 차별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성차별 역시 사회가 점차 발전되고 개방됨에 따라 그 정도가 낮아지고 있다. 그에 따라 여성의 사회적 참여도가 높아지게 됐다.
우리학교에서도 소수자에 대한 차별 문제는 심각하다. 얼마 전에 100여 일 간의 파업농성 끝에 해결된 학사지원직원 차별에 대한 문제도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단지 소수자라는 이유로 임금, 대우 등의 분야에서 차별을 받았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려 했지만 학교는 귀를 닫고 탄압했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그들을 인정함에 따라 그들도 변화 했다는 것이다. 50년 전 만해도 그 누가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탄생하고, 한국에서 여성이 법관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 했었을까? 단순히 소수자라는 이유로 그들을 배척하고, 차별하기 보다는 그들을 인정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이 기존의 기득권자들에 비해 열등하다는 관념을 깨고 사회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결국은 관념의 문제인 것이다.
무조건적인 차별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니 퇴보만이 있을 뿐이다. 위의 흑인과 여성의 예가 보여주듯이 그들이 못나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차별 받은 것이 아니다. 기득권자들은 그들만이 옳고 정당하다는 생각에 빠져 그들의 진면모를 보지 못한다. 이는 심각한 사회적 질병이며 악이다.
한국 사회는 점차 개방적이고 이성적인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하지만 소수자에 대한 인식변화가 없다면 우리나라는 폐쇄돼 발전 없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기에 한국은 소수자를 인정하고 포용할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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