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멀리 있는 그들의 꿈을 위해 열정을 펼치다
아직 멀리 있는 그들의 꿈을 위해 열정을 펼치다
  • 주상호 기자
  • 승인 2010.11.13
  • 호수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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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세상을 표현하는 소설가 김기홍 씨

카페에 들어오는 그의 발걸음에서 조심스런 몸짓이 묻어난다. 소설 「피리 부는 사나이」의 긴 호흡을 마치고 잠시 쉼을 청하고 있는 그에게서 소설가다운 진중함이 드러난다. 그의 진중한 모습 속 유쾌한 인생이야기를 들어봤다.

음악을 향한 열정 그리고 문학
학창시절 그는 책읽기를 좋아하고 음악을 즐겼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음악을 좋아해 기타를 치고 소설을 좋아해 소설을 썼을 때 그는 비로소 ‘평범한’ 사람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학창시절 책읽기도 좋아했지만 음악을 더 좋아했어요. 처음 악기를 배우는 시기여서 이것저것 만져보며 악기를 익혔죠. 중고등학교 땐 홍대 근처에서 지내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도 했죠. 학교에서도 공연을 했지만 클럽에서 공연을 할 때 진짜 음악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어요.”

중학교 때 처음으로 기타를 치고 메탈과 록에 심취했다. 그는 음악이 좋아 고등학교 때 ‘Rock^2id’라는 동아리에 들어가고 대학교에 들어가서도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다.

“매일 동아리 방에 가서 연습했어요. 밥만 먹고 나면 바로 가는 곳이 동아리 방이었죠. 동아리에서 실력을 키워 후배들 레슨도 하고 재미있었죠. 공연을 끝낸 뿌듯함과 그 뒤 술자리도 또다른 재미였어요. 추억을 헤아리면 밑도 끝도 없을 거예요.”

그랬던 그가 인문학에 눈을 뜬 시기는 공익근무요원으로 지내던 시절이었다. 그때 그는 학교 다닐 때 읽지 못했던 책들을 무작정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보면 문득 이 사람처럼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을 해요. 또 좋지 못한 소설을 읽을 때는 ‘아 이 사람 보다는 내가 잘 쓸 수 있는데’라고 생각을 하죠. 이렇게 소설에 대한 열정을 키웠어요. 문학과 첫눈에 반한 것이 아니라 같이 지내다 보니 사랑에 빠지게 된 셈이죠.”

군 제대 후 그는 진지한 고민에 빠져든다. 그가 좋아하는 음악, 그의 일상이 돼버린 책, 둘 중 하나를 택할 때가 온 것이다.

끝내 소설을 택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는 그는 이렇게 말한다. “소설을 택했다고 해서 음악을 포기한 것이 아니에요. 친구들, 선후배들 끼리 밴드를 만들고 기타를 칠 수 있기 때문에, 음악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요. 그래서 후회가 없는 거예요.”

그는 제대 후 단편의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졸업 후 2년 동안 본격적으로 소설에 매진해 나온 작품이 「피리 부는 사나이」다. 13-14세기 경 독일 하멜른의 아이들이 한 나그네를 따라가 돌아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이다.

“보통 전설들과는 많이 다른 이야기잖아요. 어릴 적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되게 기묘한 기분으로 읽었던 기억이 나요. 책을 본 후 문득 자꾸 생각나더라고요. 전설 속 사라진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TV에서 나오는 실종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현실 속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글을 쓰기 시작 했어요.”

집요함과 관심으로 글을 완성하다
어릴 적 그는 책읽기가 마냥 즐거웠다. 잠자기 전 책 한 권을 집어 침대에 드러누운 후 잠이 올 때까지 읽어대기 일쑤였다. 그러나 막상 업으로 삼으면 항상 재밌는 것만은 아니라고 전한다. 그래도 그는 집요함을 강조한다.

“글을 읽는 게 재미있어도 직업으로 삼으니까 마냥 재미있을 수만은 없더라고요. 책을 읽어야 하는 압박도 오고 시간에 대한 압박도 오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제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고 또 잘하기 때문에 선택했으니까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죠.”

집요하게 파고 든 첫 작품 「피리 부는 사나이」를 준비할 때 그가 겪은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학교 시절 짬짬이 시간을 내서 글을 썼었어요. 시험기간 등이 껴있어서 중간 중간 다시 보면 제 글이 새로워 보일 때도 있었죠. 대학교 재학 시절 「피리 부는 사나이」란 제목으로 중편소설을 냈는데 당연히 떨어졌어요. 대학교 졸업 후 이제야 집요하게 글을 쓸 수 있었죠. 수능 볼 때의 긴장감을 가지고 글을 썼는데 수능과 달리 딱히 정해진 것이 없기 때문에 더욱 불안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집요하게 쓸 수밖에 없었죠.”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는 2005년 런던 지하철 테러 사건, 마드리드 열차 테러, 실종 사건 등이 등장한다. 그는 이런 것들은 주변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되며 이는 소설가가 되기 위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최근 후배들과 만나 이런 얘기를 했어요. 어떤 종교에서는 배우자를 지정해주더라고요. 후배들은 이것이 말이 되냐고 했는데 조금 더 관심을 가져 생각해 보니 현재 중매나 결혼정보업체가 맺어주는 것이랑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를까 생각했어요. 딱 답이 나오지 않아도 돼요. 이렇게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생각을 해보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죠.”

그는 아직 자신을 신인이라 생각한다. 좀 더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꾸준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뜨거운 그 무엇인가를 향해
집요하게 준비한 「피리 부는 사나이」로 등단 후 그는 재도약을 위해 숨을 가다듬고 있다. 그가 지난 10월 한 달 동안 맡았던 조선일보 사설 칼럼 일사일언을 보면 그의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다.

『그녀의 이름은 니나, 캄보디아 시엠립에 살고 있는 아홉 살 난 소녀이다. 나는 종종 그녀를 떠올린다. 조잡한 기념품을 손에 들고 “세 개, 원 달러”를 외치며 따라붙던 다른 소녀들도,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면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밀던 그보다 어린 꼬마들도, 날이 저물면 오토바이를 모는 아버지 등에 매달려 집으로 돌아가던 그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내게 앙코르는 고대의 유적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다』 - 일사일언 중.

쉼 속에서 드러나는 자유, 기나긴 길을 헤쳐 나온 자만 느낄 수 있는 여유가 아닐까.
“앞으로 쓰고 싶은 것이 뚜렷하게 보이지는 않아요. 단지 어떤 새로운, 뜨거운 것을 쓰고 싶은 마음 뿐이죠. 제가 글을 통해 사람들에게 주고 싶은 것도 비슷해요. 제 말들이 조금이나마 그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수 있다면 더 없이 기쁠 뿐이죠.”

그는 글을 쓸 때 가장 두려운 것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때때로 자신이 쓴 글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얼음 조각처럼 박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등골이 오싹해진다고 한다. 그는 문장과 말은 짧을수록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글을 쓰지 않는 사람들도 조심스러운 마음을 가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한번 뱉은 말은 주워 담지 못하고 상대방의 가슴에 비수로 꽂힐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이 중요해요. 집으로 돌아가며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도 조심스럽게 말을 해야해요. 말하는 것이 중요해요.”

사진 류민하 기자
일러스트 김나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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