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 없는 것은 결석이다
자리에 없는 것은 결석이다
  • 한양대학보
  • 승인 2010.11.06
  • 호수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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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 없는 것은 결석이다

요즘 주변에서는 변화를 찬양하기도 하고 또 달라지는 것에 볼멘소리도 들린다. 두 가지 소리를 다 듣다보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지 애매할 때가 있다. 고개를 갸우뚱하면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해준다"는 얘기도 자주 듣는다.

이를테면 학생들이 결석사유서를 가져오면 출석으로 인정을 하는 일도 애매할 때가 있다. 병원 진료, 행사참여, 입사시험 등등 이유를 들고 있다. 이런 이유는 해를 거듭 할수록 늘어가고 있어 난감해진다. 출석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이 똑같이 취급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자리에 없는 것과 있는 것에 차이가 없어도 괜찮은 것인지, 또 이에 대한 상대적인 불평은 없는 것인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매사에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관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이기적이라고 질책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 학생이 교환학생 비자 인터뷰로 결석했는데 그 증빙자료를 갖춰 당당하게 출석을 요구하는 태도에 어색한 적이 있었다. 또 계속 같은 시간에 3주에 걸쳐 병원 진단서를 제출해서 의아하게 생각한 적도 있다. 
과연 출석과 결석의 차이가 얼마나 될까. 학생이 결석 한번을 치명적이라고 판단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뚜렷한 계산도 없이 마구잡이식으로 “손해는 안 돼”라는 인식이라면 교수도 공범이 될 위험도 있다. 올바른 태도인지 되짚어 봐야 되지 않을까. 이러한 모습들이 변화의 물결을 타고 거침없이 파고든다. 학생위주로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또 그렇게 성장해온 경험이 있다고 해도, 대학에서는 좀 더 사회적이고, 좀 더 교육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줄어들고 있어 안타깝다.

간혹 일어나는 지엽적인 일이 사건이 되고, 전체로 파급되는 중대한 문제로 포장돼 정책이나 제도개선으로 치닫게 된다. 정치적인 쇼와 같다. 그 일을 방지하지 못하고, 정당하게 판단하지 못하고, 또 처리하지 못한 과오를 전체의 문제로 호도하고 탓을 돌리는 관행은 오래된 수법이 됐다. 잘못된 부위를 치유하기 보다는 전체로 몰고 가면서 담당부처는 면책의 여유를 즐기는 행태에 대해서 별로 주목하지 않는 사회로 변모되었다. 이런 관행이 그만큼 조직적이고 체계화되었다는 뜻이다. 이런 엉뚱한 교훈들이 교육의 장에서도 거리낌 없이 나타나는 변화에 대해서 조소를 보내는 모습도 있지만,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과연 누가 기만하는 것이고, 누가 손해를 보는 것인지 오히려 학생들 간에는 더 잘 알고 있는 일을 교수가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는 점이다.

변화를 통해 나타나는 형상에 부정적인 면이 있는데도 눈을 감는 교육자의 문제인지, 그래도 된다는 피교육자의 문제인지 이 또한 애매한 지경이 됐다. 어느 한쪽의 손해가 아니라 양쪽의 손해이고 전체의 손해가 될 뿐이다. 이런 함정이 주변에 널려있다는 불안감도 있지만, 혹시 부분에 집착하여 전체를 제대로 못 보는 잘못을 저지를까 걱정이 되기도 한다. 순수하고 정열적인 학생들이 더 많지만, 작은 불씨가 큰불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세심한 관심이 필요한 때이다. 정당하게 자기 몫을 감당하는 성실함이 곧 사회에서 자기의 위치를 확보하는 유리한 조건이 된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정대철<사회대ㆍ신문방송학과>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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