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점을 찍는 ‘점심’(點心), ‘밥심’이 있어야 ‘뚝심’을 발휘할 수 있다
마음에 점을 찍는 ‘점심’(點心), ‘밥심’이 있어야 ‘뚝심’을 발휘할 수 있다
  • 한양대학보
  • 승인 2010.10.09
  • 호수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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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만 <사범대·교육공학과> 교수
아침과 저녁 사이에 먹는 ‘점심’(點心)이라는 한자는 말 그대로 ‘마음에 점을 찍는 일’이다. 중국 음식 중에 ‘딤섬’(Dim Sum)이라는 커다란 만두가 있는데 딤섬의 한자어가 바로 ‘점심’(點心)이라고 한다. ‘점심’은 바로 이 ‘딤섬’몇 개를 먹는 식사를 의미한다. 그 큰 딤섬을 먹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마음에 점을 찍지 않고 빠르게 먹어 치우는 점심은 더 이상 점심이 아니다. 마음에 점을 찍는 점심을 먹지 않는 우리들은 점점 심각한 일상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기계적인 삶을 반복하고 있다.

밥의 원료인 쌀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쌀을 의미하는 한자어, ‘米’는 열십자 ‘十’을 중심으로 위에 여덟 ‘八’이 뒤집혀 있고 아래에 여덟 팔자 ‘八’가 포개져 있다. 농부가 쌀 한 톨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88방울의 땀이 흘려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만큼 우리가 밥 한 톨을 버리는 것은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공급하는 농부들의 수고와 정성을 저버리는 일이다. 기운을 의미하는 한자어 ‘氣’는 ‘    ’ 밑에 쌀‘米’가 들어 있다. 기운을 내려면 쌀밥을 먹어야 한다는 의미다. 밥은 대자연의 기운과 농부의 정성이 담긴 신비한 음식이다.
밥을 먹는 것은 쌀 그 자체만을 먹는 것이 아니라 쌀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에 담긴 자연의 소리와 음악, 농부의 지극정성과 수고, 밥을 하는 어머니의 애틋한 마음을 먹는 것이다.

속도와 효율이 지배하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과정에 담긴 정성과 역사는 사라지고 오로지 결과만을 중시한다. 우리는 점차 속도가 지배하는 사회를 살아가면서 점심도 빨리 먹을 수 있는 식당을 찾아 후다닥 먹고 다시 속도전이 펼쳐지는 일터로 향한다.

끝도 없는 속도전에 참여하는 현대인들에게는 마음에 점을 찍는 ‘점심’을 먹고 ‘밥심’을 발휘할 겨를이 없다. ‘지식’은 ‘음식’과 ‘휴식’의 결합이다. 지식은 질주하는 속도 속에서 탄생되지 않고 치열한 고민과 고뇌 속에서 찾아온다. 휴식은 유의미한 지식이 탄생되기 위한 쉼표와 같다. 누구를 위해서 무엇 때문에 달리고 있는지를 생각할 시간적 여유도 없이 매일매일 똑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삶은 사람에서 멀어져 간다. 삶이 사람에서 멀어지면서 사람은 삶의 소중함을 잃어가고 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왜 달리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고 있는가. 내 삶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왜 나는 지금 이런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도 모르는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오늘은 여유를 갖고 마음에 점을 찍는 ‘점심’을 먹으며 점점 심각해지는 내 삶을 돌이켜보자. 점을 찍는 쉼이 있어야 내면적 ‘성숙’의 깊이를 확보할 수 있고, 다음 단계로의 ‘성장’이 보장된다. 성장하기 위해서는 성숙이 전제되어야 한다. 성숙 없는 성장은 무너질 수 있다. 대나무의 고속성장도 마디라는 ‘점’의 ‘쉼’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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