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새는 골칫덩어리!?
대한민국 국새는 골칫덩어리!?
  • 문종효 기자
  • 승인 2010.09.12
  • 호수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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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유일한 국새전각장이라고 알려진 민홍규 씨가 제작한 우리나라 네 번째 국새가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예부터 전해 내려왔다는 국새 제조비법은 없는 것으로 밝혀졌고, 국새제작단장 민홍규 씨는 재료용 금의 사적 유용 및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 

국새를 둘러싼 사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국새는 많은 구설수에 올라왔다. 불평등 조약에만 사용되다 사라진 대한제국의 국새가 대표적이다. 대한제국이 수립되기 직전 고종은 국격에 맞는 새로운 국새를 만들기 위해 옥새규정을 반포했다. 이후 조선 왕조에서 사용하던 국새를 전부 없애고 8개의 옥새전각을 주조했다. 그러나 이 옥새들은 각종 이권을 박탈당하고 불평등 조약을 체결하는데 사용돼다 한일병합 직후 소실됐다. 병합 당시 순종비 순정효황후가 옥새를 치마 속에 감추고 주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약이 체결된 직후 대한제국의 옥새들은 돌연 사라졌다가 일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1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제국의 옥새가 어떤 과정 속에서 수탈당하고, 일본으로 건너갔는지 추측만 난무하고 있다. 광복 이후 맥아더 장군의 도움에 의해 국새는 국내로 반환됐으나 한국전쟁 이후 다시 일부가 소실되는 비극을 맞았다.

대한민국의 첫 번째 국새는 그 존재조차 불명확하다. 한 국가의 국새임에도 불구하고 누가 만들었는지, 어디에 있었는지는 물론 어떤 과정을 통해 사라졌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첫 번째 국새를 주조했을 것으로 알려진 가장 유력한 인물은 당시 조선의 옥새전각 전수자였던 석불 정기호 선생이다. 민홍규 단장의 스승이자 전각분야의 당대 최고 권위자이기도 하다. 그가 말년에 기록한 회고록 ‘고옥새간회정도’에 태극익룡 국새에 대한 소개가 발견되면서 대한민국 1호 국새의 형태가 드러났다. 2호 삽살개 국새 또한 ‘고옥새간회정도’에 기록돼있음이 확인되면서 대한민국 1, 2호 국새를 그가 주조했다는 주장은 거의 정설화돼왔다.

그러나 이에 반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석불 정기호 선생의 행적에 의문점이 많다는 것이다. 김양동<계명대ㆍ서예과> 명예교수는 “석불이 국내 전각분야의 최고권위자였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그러나 그는 옥새를 주조하는 기술이 없었으며 이를 전문적으로 작업하는 분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한 근거로 △평생 한번 제작한 전각집에 일생의 역작이라고 할 만한 대한민국 국새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점 △석불과 친분이 있던 사람들이 그가 국새 제작자라는 점을 몰랐다는 점 △석불의 경력에 국새 제작자라는 점을 내세우지 않은 점 등을 내세우고 있다. 더욱이 최근 민홍규 단장의 국새 사기사건으로 인해 이같은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는 양상이다.

김대중 정권의 주도 하에 이뤄진 대한민국 세 번째 국새는 내부 균열과 한글획수 논란으로 인해 한차례 홍역을 치른 바 있다. 당시 국새제작 자문위원이었던 최주 박사(2001년 작고)는 “균열은 제작과정에서 으레 생길 수 있는 것”이라며 “무게를 줄이기 위해 속을 비우고 제작하면 자주 생기는 일”이라고 증언했으나 오히려 역풍만 키웠다. 획수 논란 역시 세 번째 국새에 대한 논란을 키웠다. 이 국새는 이전 국새들과는 달리 한글로 제작됐는데 한글 대한민국은 총 20획으로 음양학에서 파멸격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한국전통전각학회’의 A 씨는 월간조선을 통해 “3대 국새는 소리글자인 한글을 새김으로써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며 “이같은 표현법은 국가적 상징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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