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는 PD의 논스톱 인생
철없는 PD의 논스톱 인생
  • 김가연 기자
  • 승인 2010.09.12
  • 호수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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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카멜레온 김민식<자원공학과 87> 동문
한껏 걷어올린 소매, 까맣게 그을린 얼굴. 그의 첫인상이었다. 주말드라마 「글로리아」를 촬영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그는 “48시간 동안 잠 한숨 못잤어요”라는 말을 천진난만하게 꺼냈다. 그의 웃음과 닮은 소탈한 인근 분식점에서 아직도 청춘이라 말하는 김민식 동문의 파란만장한 인생스토리를 들어봤다.

3번째 두드림 끝에 찾은 꿈

대학 시절 그의 평점은 3.0이 채 되지 않는다. 요즘같이 너도나도 4.0을 넘는 시대에 그의 성적은 우스갯소리로 ‘면접관이 이면지로 활용하는 스펙’에 불과하다.

“만약에 전공 성적이 F가 나오잖아요. 그러면 교수님을 찾아가요. 요즘은 듣기로는 C나 D가 나오면 찾아가서 F로 해서 재수강을 한다고 들었는데, 저는 F가 나오면 가서 사정을 해서 D로 해달라고 그랬어요.”

주변의 권유에 떠밀려 자원공학과를 택했지만 전공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 재수강을 해도 형편없는 성적이 나올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차라리 내가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생각했다. 그때부터 그의 괴짜행동이 시작됐다.

“어느날 건국대에 놀러갔다가 거기에 사이클 동호회가 있는데 여름방학동안 사이클을 타고 전국일주를 하더라구요. 그게 너무 하고 싶은데 한양대는 언덕이 너무 높아 사이클 동호회가 생길 수 없잖아요. 그래서 ‘난 한양대생인데 당신들이 하는 사이클 전국일주에 나도 좀 끼워달라’고 말했어요.”
조건은 회비 자진납세. 흔쾌히 승낙한 그는 ‘건국대 사이클 동아리 역사상 최초의 타 학교생’이 되었다. 그의 엉뚱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전공은 뒷전으로 하고 우리학교 연극영화학과에서 하는 각종 공연을 쫓아다녔다.

대학 졸업한 후에 그는 기업체에 이력서를 냈지만 취업문은 그에게 턱없이 높았다. 7곳에서 연이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칠전팔기라고 했던가. 8번째로 넣은 외국계 회사에 영업사원으로 취직했다.
“치과 영업을 했는데 너무 괴로웠던 게 치과에 들어가면 나는 영업사원인 게 티가 나요. 치과에 웃으면서 들어오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웃는 얼굴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싸늘한 표정으로 나오는 일이 치과영업이었다. 드릴 돌아가는 소리와 아픔으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을 보는 일에 회의가 생겼다. 결국 그는 2년 만에 영업의 문을 박차고 나온다.

이번엔 프리랜서 통역가가 되기 위해 통역대학원에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책 속에서 보던 영어와 생활 속에서 외국인이 쓰는 영어는 달랐다.
“교수님이 공부에 도움이 될 거라며「사인필드」와 「프렌즈」라는 미국시트콤을 추천해주셨죠.”
매일 저녁 ‘미국 시트콤을 보면서 미친 듯이 웃어 볼 수 있는 그날까지!’라는 목표를 세웠다. 공부를 위해 시작했던 시트콤 시청이 어느덧 삶의 일부가 돼 있었다. “본말이 전도된거죠. 영어공부 때문에 시트콤을 보다가 너무 재밌어서 한번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마침내 그는 한국 최초의 시트콤PD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MBC의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영업사원, 통역가에 이어 3번째로 두드린 문은 그를 매력적인 방송의 세계로 인도했다.

승부를 건 마지막 3라운드

우리나라 최초의 시트콤을 만들겠다는 그의 열정은 입사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청춘시트콤「남자 셋 여자 셋」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트콤이 인기를 끌면서 한순간에 와장창 무너졌다. 한낱 새파란 조연출에 불과한 그는 쓴웃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험난한 조연출 시절을 거쳐 드디어「남자 셋 여자 셋」의 후속작「점프」에 연출진으로 참여하게 됐다. 그러나「점프」는 시청률이 하강곡선을 그리다 결국 참패를 맞이했고 연이어 방영된 「가문의 영광」은 시청자들의 외면을 받아 조기 종영되고 말았다.

“세 번 정도 실패를 하잖아요. 실패의 노하우가 생겨요. ‘나한테 기회는 또 오겠지’하며 그냥 절치부심 이를 갈고 기다렸죠.”

연이은 부진 때문에 낙담해있던 그에게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논스톱」의 후속작「뉴 논스톱」의 연출을 맡게 된 것이다. ‘이번엔 실패하지 말아야지’하고 생각했다. 실패를 맛봤던 이전 작품에서 벗어나 다시 청춘시트콤으로 회귀했다.「뉴 논스톱」을 계기로 한국 시트콤은 다시 전성기를 맞이했고 그 후 논스톱 시리즈는 인기에 힘입어 4편까지 이어졌다. 한국 최초 시트콤을 만들진 못했지만, ‘시트콤’을 정착시킨 그가 시트콤에 담고자 하는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시트콤에 담고자 하는 가치요? 없어요.” 간단명료했다. ‘없다’라니, 명색이 연출자인데 너무도 간단한 대답이었다.

“뉴 논스톱 게시판에 어떤 시청자가 ‘당신은 나름 시트콤 매니아라고 하는 사람이 유치한 시트콤밖에 못만드느냐. 대학생이면 취업고민, 사회고민을 해야한다’고 지적했어요. 저는 이렇게 답변했죠. ‘당신이 대학생이라면 하루 종일 취업과 사회문제로 고민하다가 하루 20분 쉴려고 시트콤 틀었는데 거기서도 취직고민하면 보고 싶겠느냐’고요.”

그가 시트콤에서 추구하는 것은 오로지 ‘시청자들이 마음 편하게 즐기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3번째 도전은 아직 진행중


시트콤을 하다보니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에 또 다른 변화시점이 찾아온 것이다. 예능국에서 드라마국으로 조직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저는 변화없이 고착화 되는걸 못 견뎌요.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죠.”

그의 도전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문 안의 세계에 있는 또 다른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걱정과 우려 속에 만든 드라마 「비포&애프터 성형외과」는 성형이라는 특이한 소재로 젊은 여성층에게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미국드라마「닙턱」을 표절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1년동안 고민했다. 그리고 고심 끝에 만든 작품이 ‘대박’을 터트렸다. 대한민국 여성들에게 ‘내조’ 열풍을 일으킨 드라마「내조의 여왕」은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그는 모든 실패를 성공의 발판이라 얘기한다.

“많은 사람이 실패라고 얘기하는데 언제가 실패냐면요. 시도하다가 접으면 실패에요. 계속 시도하는건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인거지 실패가 아니에요.”

이번엔 주말드라마의 공식을 부수어 보고 싶었다. 누구네 삼형제, 나이 지긋한 노부부가 나오는 가족드라마가 아니라 미니시리즈 같은 젊은 청춘남녀들의 사랑이야기를 시도해 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작품이 눈에 띄었다. 그를 사로잡은건 ‘나이트클럽’이란 다섯글자. 그리고 ‘꿈’이라는 한 단어였다.

“제가 사실 대학시절에 나이트클럽을 열심히 다녔어요. 심지어 그때는 같이 갈 친구가 없으면 혼자 추러가서 나이트클럽 벽을 보고 스텝도 밟았죠. 대본에 나이트클럽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고 학창시절 추억이 떠올라 연출을 결정했어요.”

「내조의 여왕」에 이어 연출을 맡은 드라마「글로리아」는 나이트클럽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다. 주인공인 나진진은 새벽에는 신문을 돌리고 출근길 직장인들에게 김밥을 팔고 짬을내 노래 연습하고 또 밤에는 나이트클럽 밤무대를 뛰는 ‘억척녀’다. 그녀의 꿈은 ‘가수’다. 괴짜 공대생에서 프리랜서 통역사로, 그리고 영업사원에서 마침내 연출자가 되기까지 김 동문이 꿈을 찾아가는 과정은 마치 나진진과 비슷하다. 나진진과 그는 무작정 ‘꿈’이라는 라만차의 풍차를 향해 달리는 돈키호테와 닮았다.

“세상이 거절하기 전에 나 자신을 먼저 포기시키지 마세요.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미친듯이 들이대보세요.”

김민식 동문은 대학에 특강을 갈 때마다 대학입구에서 강의실까지 걸린 플래카드들이 공무원 시험에 관한 것이어서 말 그대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한번 ‘들이대 봐야’ 직성이 풀리는 그에게 행복은 매 순간을 ‘즐기는’ 행위를 뜻했다.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이고 내가 무엇을 할 때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지 그것만 알면 인생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청춘시트콤을 많이 연출한 만큼 그에게는 ‘청춘’이 가지는 의미가 남달랐다. ‘청춘’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는 부탁에 곧바로 대답이 나왔다.

“꿈을 꿀 수 있는 유일한 시기. 그래서 아직도 청춘이라고 생각해요. 왜냐면 전 아직도 꿈을 꾸고 있거든요. 저는 아직도 철이 없다고 생각해요. 먹고사는 것보다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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