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저작권의 사회
죽은 저작권의 사회
  • 하동완 기자
  • 승인 2010.09.04
  • 호수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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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불법제본 여전, 문화부 새 제도 도입
서울캠퍼스 앞 인쇄소는 제본을 의뢰하는 학생들과 작업하는 직원들로 빈틈이 없다. 끊임없이 학생들이 오가고 직원들은 학생들의 요구대로 교재를 제본하느라 분주하다.

인쇄소에서 만난 대학생 A는 “교양서적을 친구들과 함께 제본하러 왔다”며 “소장하고 싶은 책도 아니고 수업시간에 많이 쓰이지도 않을 것 같아 제본을 택했다”고 말했다. 학교 앞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B씨는 “3월이나 9월 같이 신학기가 시작되는 때면 하루에도 2,30명의 학생들이 교재제본을 뜨기 위해 몰려온다”며 여전히 대학가 불법 제본이 성행하고 있음을 알렸다.

대학생들은 교재 제본이 불법이라는 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지만 모두가 새 책을 구입하는 것에는 선뜻 나서지 않는다. 학생이 부담하기엔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 학기 6~9과목을 수강해 권당 2~3만원하는 교재를 모두 구입 하려면 20~30만원 정도를 지불해야 한다. 연지흠<사회대ㆍ사회과학부 10> 군은 “아무래도 비용 문제 때문에 제본을 이용하게 된다”며 “훨씬 저렴한 가격에 강의교재를 구할 수 있어 제본을 많이 활용한다”고 전했다. 강의교재의 낮은 활용도도 이유로 지적됐다. 최은선<공학대ㆍ전자통신공학전공 06> 양은 “교양과목의 경우 교수님들이 수업에 교재를 잘 활용하시지 않는다”며 “그런 교양과목 교재를 새로 구입하는 것은 낭비인 것 같아 제본을 많이 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불법복제의 대안으로 중고서적 거래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헌책방, 교내 중고장터 등 중고서적 거래를 이용하면 저작권도 침해하지 않으면서 훨씬 저렴한 가격에 교재를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헌책방이나 중고장터를 통해 강의교재를 구입하는 대학생들은 드물다.

연 군은 중고서적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제본은 새 책처럼 쓸 수 있다”며 “하지만 중고서적은 낙서나 필기 같이 먼저 쓰던 사람의 흔적 때문에 더러워 사용하기 불편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제본을 선택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저작권을 일부 제한하는 대신 보상금을 지불하는 대안이 논의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19일 수업목적복제보상금 제도 도입을 알렸다. 대학 강의 중 영상물이나 인쇄물 일부의 사용을 허락하는 대신 한국전송저작권협회에서 보상금을 대학으로부터 받아 저작권자들에게 분배하는 제도다. 이 정책이 시행되면 대학은 보상금을 지불하는 대신 대학수업에서 지적저작물을 저작권자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다. 애초 저작권료 명목으로 학생 1인당 4190원을 일괄 징수 할 것 이라는 언론 보도가 있었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현재 한국복사전송권협회와 대학교육협의회 사이에 보상금 규모에 대한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복사전송권협회는 “학생 1인당 3천여원 정도로 계산해 각 대학으로부터 저작권료로 보상받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고 밝혔다. 하지만 “저작물 이용 허용범위는 내용 전부가 아닌 일부분에 한정된다”며 또 “강의실 밖에서 행해지는 교재제본까지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고 못 박았다.

이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손동환<인문대ㆍ영어영문학과 10> 군은 “수업시간에 쓰이는 저작물의 저작권 관련 절차와 비용이 간소해져 편리해질 것 같다”며 “보상금이 등록금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 되지만 합법적으로 저작물을 이용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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