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우리가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 우지은 기자
  • 승인 2010.09.04
  • 호수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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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복사 조장하는 출판업계의 고질적 관행

출판업계가 대학가 불법복사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가 지난 3월 한 달 동안 대학가 주변 복사업소에 집중단속을 실시한 결과 210개 업소에서 1천56종 6천108부의 불법복사물을 수거했다고 밝혔다. 전공 서적 한 권당 3~4만원에 달하는 책값을 부담 없이 지불 할 수 있는 대학생은 얼마나 될까. 불법 복사를 조장하는 비싼 책값의 이유를 알아봤다.

새 학기, 교재비는 복사업소 주머니로
영어 전용 수업 시간, 수업을 듣고 있는 학생들의 앞에 제목은 같으나 저마다 다른 표지의 책들이 놓여 있다. 비싼 원서 값의 부담으로 저마다 제본을 한 것. 많은 학생들이 “위법이라는 것은 알지만 한푼 두푼이 아쉬운 대학생의 처지 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제본은 대학생들의 생활에 있어 기본 중의 기본”이라 말한다. 실제 이들의 원서교재 가격은 6만원으로, 아르바이트 전문 사이트 알바천국이 전국 대학생 남녀 2천35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 달 평균 용돈 23만6천원의 4분의 1을 넘어간다. 대학가 사정이 이렇다 보니 미국 무역 대표부(USTR)는 지난 20년간(1989~2008) 한국을 저작권법 위반 관련 감시 대상국으로 선정해왔다. 감시 대상국은 △지적재산권 관련법과 제도 △보호정책의 집행 실태 △시장조사 결과 △권리자 단체의 의견 등을 기준으로 지정된다.

홍승표<문화체육관광부ㆍ저작권보호과> 직원은 “우리나라의 저작권 보호정책이 높게 평가받아 지난 2009년부터는 연속으로 대상국에서 제외됐다”며 “하지만 USTR은 대학가 불법복사에 대해 많은 우려를 나타내 지속적인 보호정책 집행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감시대상국은 매년 4~5월 새로이 발표되기 때문에 또 다시 블랙리스트에 오를 우려가 있으며 우선감시대상국, 일반감시대상국 등 등급에 따라 수입물품에 보복의 관세를 부과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경제적인  피해와 이미지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문제가 값비싼 원서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다. 실제 문광부 저작권보호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단속에서 적발한 서적 중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해외원문서적이 23%, 국내 서적이 77%를 차지했다. 더욱이 전체 학술서적 합법시장 5천760억규모에 불법 복사로 인한 침해는 1천427억에 달한다. 홍 직원은 “이는 결국 경제적 피해뿐 아니라 출판사와 저자의 창작ㆍ연구 의욕 저하로 이어 진다”며 “사회적으로도 막대한 피해를 주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심각했던 90년대 후반에는 대학교재용 학술도서를 전문적으로 펴내는 500여개의 출판사와 저자들이 출판 중단선언을 하기도 했다.

독자에게 피해 입히는 잘못된 수익구조
하지만 대학생들의 의식 수준만 문제 삼을 수 없다는 것이 학생 대다수의 의견이다. 책값의 불합리한 상승이 근본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실제 출판사에서 교재 채택 대가로 로비하거나 교수가 출판사에 계약료를 제외한 웃돈을 요구하는 행위들이 공공연히 이뤄지고 있다. 작년에는 H 출판사가 보육교사교육용 교재 채택료로 수억원을 전국보육교사교육연합회에 건넨 것이 밝혀져 검찰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다. 원계약서에 기재된 25%의 저작권 사용료뿐 아니라 해마다 교재 판매대금의 15%인 약 1억 원을 운송보관료 명목으로 지급해 전체 책값의 40%가 지급 된 것이다. 올해 초에는 D 여대의 한 교수가 교재 계약금 외에 출판사에 3천만원을 요구해 불구속 기소 당했다. 익명을 요구한 A양은 “결국 이로 인해 생긴 불필요한 비용들이 고스란히 책값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게 불법 복사라는 선택을 조장하고 있다”며 불만을 표했다.

A양은 또한 “책값을 부풀리기 위해 출판사는 페이지를 부풀린다”며 “이는 독자들로부터 정당한 이유 없이 책값을 올렸다는 반발을 무마시키기 위한 것”이라 덧붙였다. 이는 2008년 5월 광주YWCA 대학생 소비자 모니터단의 ‘대학생 교과서 가격인상 현안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조사에 의하면 A출판사가 발행한 행정 분야 서적은 10여 년 전 첫 출판된 뒤 지난 해 변화가 미미한 개정판을 내놨지만 1만8천원에서 2만6천원으로 44.4% 인상됐다. B출판사가 발간한 투자분야 서적은 초판 발행 3년 뒤 글씨 크기만 늘었음에 불구하고 22%이상 증가했으며, C출판사의 자연과학 교재는 단원별 세부내용이 추가되면서 전년대비 50%나 인상됐다.

실질적인 대안은 책값 낮추기
저작권 특별 사법 경찰과 단속 권한을 위탁 받은 저작권 보호센터 직원들이 개강시기에 맞춰 전국 대학가에 걸친 집중단속을 벌이고 있지만 △출판물을 PDF파일로 컴퓨터에 저장 후 출력ㆍ판매하는 업소 증가 △복사업소가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복사 등 단속을 피하기 위한 복사기법의 지능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홍 직원은 “지난 3월 단속 중에 교외 복사업소보다 교내 복사업소에서 더 많은 불법 복사물이 적발 됐다"며 “심지어 불법 복사물을 학과 사무실에서 판매하는 곳도 있었다”고 심각한 우려를 표했다.

하지만 집중 단속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근본적 문제에 해법을 제시하는 대안들이 나타나고 있다. 리딩 패킷 서비스와 페이퍼백이 좋은 예다. 리딩 패킷이란 독자가 원하는 챕터만을 골라 책으로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로 종강 날 까지 소화하지 못하는 방대한 분량의 교재가 아까워 책을 구매하지 않는 대학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리딩 패킷을 교재로 사용한 김익현<서울여대ㆍ신문방송학과> 강사는 “온라인 저널리즘 분야는 한 권의 책에서 만족할 만한 내용을 찾기 어려운데, 다양한 책에서 원하는 내용만을 뽑아 교재로 만들 수 있어 만족스러웠다"고 평했다. 이를 교재로 이용한 학생들도 "필요한 내용만 담을 수 있어 가볍고 경제적이다"라고 말했다. 리딩 패킷를 개발한 출판사의 여경진<커뮤니케이션 북스ㆍ고객관계경영팀> 직원은 “전국 14개 대학, 30여 개 강의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한 결과, 교재 구입률이 80%가 넘었다”며 “앞으로 70여개 대학, 90여 개 강의에서 사용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보급판으로 저렴하게 출판되는 페이퍼백도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대학생들의 불법 복사를 막는 방책으로 작용 할 수 있다. 페이퍼백이란 표지와 속지가 재생지로 된 가벼운 책 종류로 값이 최대 50%까지 저렴해 선진국은 이미 양장본이나 하드커버보다 페이퍼백으로 만들어진 저렴한 교재를 즐겨 쓴다. 평소 페이퍼백으로 출판된 원서를 즐겨 구입한다는 이희연<서강대ㆍ경제학부 10>학생은 “지하철에서 페이퍼백용 원서를 자주 읽는데 좁은 지하철 자리에서 펼치기도 편리하고 핸드백 사이즈에도 안성맞춤이라 전공서적도 페이퍼백으로 출판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왔다”며 적극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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