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을 보내드리는 방법
고인을 보내드리는 방법
  • 한양대학보
  • 승인 2010.08.30
  • 호수 13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용각 <학생처·취업지원센터> 직원

며칠 전 병환을 앓으시던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새벽 4시에 연락을 받고 서울에 있는 가족들은 서둘러 전라북도 남원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뵙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이미 임종을 하신 할아버지께서는 차가운 몸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고 식구들은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느낄 시간도 없이 눈앞에 다가온 장례식 준비에 정신을 빼앗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장례는 현실입니다’라는 한 상조회사의 TV광고가 머릿속을 맴맴 돌고 있었습니다.

입관에서부터 발인까지 3일이라는 시간은 몇 시간의 쪽잠만을 허락하고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수의를 입혀드리고 염을 하고 입관을 하는 30분 정도 짧은 만남만이 저희와 할아버지 사이에 놓여 있었을 뿐 나머지 시간은 장례라는 현실 속에 치여 바쁘고 피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발인을 하고 하관을 하는 마지막 3일째 날에는 억수같이 쏟아진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만큼 많은 비가 왔습니다. 봉분 위에 잔디를 덮는 상조회사 직원들은 쏟아지는 빗속에서 서둘러 일을 마치길 원했고, 폭우는 식구들의 머릿속에서 최대한 일을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 외에 많은 다른 생각들은 씻어내려 버렸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다시 현실로 돌아온 며칠 후 오늘에서야 제 가슴 속에서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살아나셨습니다. 폐암의 고통 속에서도 손수 앞집 자두나무에서 따 주셨던 빨간 자두 한 알,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수첩 속에 품고 계셨다는 증손자 건우의 사진, 시골에 내려갈 때면 항상 신고 다니셨던 하얀 고무신, 마지막으로 뵙던 지리산 나들이 길에서 허겁지겁 다슬기국을 드시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이제야 할아버지를 보내드릴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왜 며칠이 지나서야 가능해야 할까요. 왜 우리의 장례식은 그렇게 바쁘고 힘들어서 차분히 고인을 보내드릴 마음조차 갖기 힘들게 하는 걸까요. 저는 할아버지께 드리는 한 통의 편지를 쓰고 싶었습니다. 할아버지를 보내드리는 자리에서 그 편지를 읽고 그것을 태워서 할아버지가 가실 하늘나라에 같이 날려버리고 싶었습니다. 마음속에서나마 할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를 추억하며 가시는 길을 축복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우리의 장례문화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봅니다. 3일 동안 고인을 잊지 않고 보내드리는 의식을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고인을 보내드리는 예를 다하는 바라고 생각하며 그 시간 동안 나름대로 고인을 추억하며 고인을 보낼 준비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우리의 장례문화가 형식에만 치중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형식에 묻혀 고인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추억해 보는 시간을 가질 틈이 없습니다. 상조회사가 말하는 장례는 현실이지만 고인의 가족과 친지, 지인들에게 장례는 진정한 ‘의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루 정도는 고인을 추억하고 고인에게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있는 진정한 ‘보내드리기’의 시간이 장례 문화 속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니다.

다시 저 곳(彼岸)으로 돌아가시는 분과 이 곳(此岸)에서 보내드리는 사람들이 가슴 속에서 서로 만나고, 신나게 울어 보고, 사랑한다 한 마디도 해 보는 그런 여유가 있는 장례식이 된다면 좋지 않겠습니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