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간과하는 현실 앞에서
현실을 간과하는 현실 앞에서
  • 우지은 기자
  • 승인 2010.08.29
  • 호수 13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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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의 고충을 간과하는 학자금 대출
26살의 민호 군(가명)은 3학년 2학기로 재입학을 앞두고 있다. 지난 2년은 다른 진로를 모색하는 시간으로 보내 학교를 다니지 않았다. 재입학이기에 등록금에 입학금을 더한 5백5십여만원을 내야하는 상황, 부모님께 손을 벌리기에는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등록금을 걱정하던 찰나 국가에서 취업 후 학자금 제도를 새로 도입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거다 싶었지만 신청 절차를 알아보기 전부터 자격 요건이 걸림돌이 됐다. 직전학기 B학점 이상.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뒤처지는 건 아닌지 암담하죠. 주변 친구들 대부분 값비싼 공인영어시험을 매달 응시하고 어학연수를 취업 필수코스로 여기고 있어요. 모두가 온 시간을 들여 공부하는 이 상황에도 저 같이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들에겐 공부하는 시간조차 사치처럼 느껴지죠. 일하느라 상대적으로 B학점을 받기 힘드니 또 다시 강의실 ‘밖’에서의 고군분투를 시작해야 해요. 하지만 이렇게라도 학교를 다니지 못한다면, 이렇게라도 해서 학위를 따지 못한다면 언젠가 이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는 희망조차 갖지 못한 채 살아가야 해요.”

현재 민호 군의 가정에는 정기적인 수입원이 없다. 하지만 부모님 명의로 된 집이 있다는 이유로 소득분위 30%이하라는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해 든든학자금을 이용하지 못한다. 집을 팔아 등록금을 감당하려 해도 경기불황으로 집이 팔리지 않아 결국 주택담보대출로 등록금을 해결할 수 밖에 없다.

민호 군은 토로했다. “서민들이 느끼는 체감 경기는 정말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년간 등록금은 치솟기만 했어요. 하지만 정부가 내놓는 등록금 해결책이라고는 단지 돈을 대출해주는 방법뿐이에요. 소득이 많건 적건 사회에 첫발을 디디기 이전부터 등록금이 부담 될 수밖에 없어요. 자격 요건이라고 정해 놓은 그런 안일한 구분으로 실제 등록금 대출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요. 제도 자체가 그 제도가 필요한 사람들을 고려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졸업을 앞둔 4학년인 지영 양(가명)은 대학에 들어온 이래 3번을 제외한 나머지 학기들은 모두 일반 상환제와 농어민자녀 학자금 대출을 통해 등록금을 마련했다. 지영 양도 앞의 민호 군과 같은 생각을 전한다. 자격 요건이 되는 학점의 문턱이 너무 높다는 것. 시골에서 올라와 생활비, 방세, 용돈, 대출 이자를 충당하기 위해 지영 양은 상당한 시간을 아르바이트에 할애하고 있었다. 일반 상환 대출의 기준이 되는 2.0이상으로 학점을 받지 못한 경우도 있다.

“인간 구실을 못한다는 생각에 자책감에 사로잡힌 적도 있어요. 대출을 받지 못해 학교를 다니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땐 가난이 죄인가 하는 허무감이 밀려오죠. 제 힘으로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학기 중엔 매일 5시간 이상, 방학 중엔 8시간 이상 알바를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여기에 2시간 씩 과외까지요. 학업 자체가 의무가 아니라 학업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들이 의무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남들처럼 취업준비와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을 갖기엔 지영 양이 책임져야 할 산은 너무나도 컸다.

이자도 큰 골칫거리다. 일반 상환 제도는 재학 중에도 이자를 갚아야 하기 때문에 학교를 다니면서도 늘 부담을 안고 살아가야 한다. 이자를 한번이라도 제때 납부하지 못하게 되면 채무 불이행자로 등록된다. 이는 결국 추가 학자금 대출 중단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또 다시 등록금 걱정을 해야 하고 취업에서도 채무 불이행자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영 양은“학자금을 낼 수 없어 대출을 받는 것인데 이자 몇 번 밀린 적 있다 해서 다른 대출도 아닌 학자금 대출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불합리하게 여겨질 뿐이에요. 하지만 정부가 올해 도입한 취업 후 학자금 대출을 받을 생각은 없어요. 재학 중엔 이자를 내지 않아도 되지만 졸업 하고 취직을 해서도 원금을 포함한 복리이자를 모두 감당할 자신은 없어요. 마치 공부와 취직 모두 빚을 갚기 위해 하는 것이 되어버리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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