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란 골대에 결실의 골을 터트리다
고난이란 골대에 결실의 골을 터트리다
  • 심소연 수습기자
  • 승인 2010.07.23
  • 호수 13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국대회 3위 이끈 신현호<체육부실ㆍ축구부>감독의 이야기

무더운 햇볕이 내리쬐는 해남. 그곳에서 열린 제11회 전국대학축구대회에서 우리학교 축구부가 3위를 차지했다. 열정으로 가득찬 선수들, 그리고 그 뒤에는 신현호 감독이 있었다. “좋은 경기를 통해 한양의 명예를 드높이고 싶습니다” 한양중-한양공고-한양대-한양 대학원까지, 한양으로 통하는 신 감독의 인생을 들여다보자.

4년만의 성취, 노력으로 얻어낸 전국대회 3위

찌는 듯한 더위와 습한 날씨에도 서글서글한 미소로 맞아준 신현호 감독. 대회 준결승 진출을 축하한다는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57개 대학이 모여 토너먼트 식으로 진행되는 전국대학 축구대회는 규모가 큰 편이다. 그 대회에서 4년 만에 준결승에 진출한 우리학교 축구부는 지난 12일 고려대와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시합결과는 1:3으로 패. 우승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우리학교 축구부는 전체 3위의 성과를 올렸다.

준결승전인 만큼 이번 경기는 TV로 중계되었다. 보통 대학축구경기를 TV로 중계하는 것은 1년에 한두 번 있을 정도로 드물다. 우리학교 축구부 선수들에게 좋은 기회가 온 것.

“중계가 되는 만큼 ‘우승으로 우리학교의 명예를 드높이자’는 생각이 컸습니다. 학생선수들과의 미팅에서도 ‘한양대를 빛내는 게임을 하자’가 주요 주제였죠.”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TV중계에 선수들이 많은 실수를 했다고 한다.

“그 동안 잘해오던 애들이 TV중계와 강팀인 고려대를 맞아 이겨보자는 의지가 과했는지 실수를 많이 하더군요. 그래서 조금 안타까웠어요.”

패배의 원인은 이뿐만이 아니다. 하루단위로 있는 경기로 인한 체력고갈과 부족한 선수 수로 인해 교체가 잘 이뤄지지 못한 것. 하지만 결정적인 건 시합도중에 일어났다.

“경기 중에 우리 선수가 태클을 당해 넘어지면서 고대 선수와 부딪혔어요. 이 부분에서 심판이 퇴장을 줬죠. 그 때 부터 학생들이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 했습니다. 30도를 넘는 더운 날씨와 계속되는 경기로 인한 체력저하. 한 선수가 퇴장당하기까지 했으니 학생들에겐 큰 부담이었겠죠.”

그럼에도 우리학교 축구부의 앞길은 밝다. 탄탄한 선수진으로 구성됐기 때문. 축구부 주장인 오종철 선수는 이번 대회에서 우수선수상을 받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 그 뒤로는 17세 월드컵을 뛰었던 4명의 선수와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1학년 선수들이 자리 잡고 있다.

“처음 왔을 때는 애들의 변화가 눈에 띄지 않아서 많이 안타까웠어요. 그런데 어느새 많이 변해있더군요.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는 학생들을 보면 저 또한 지도자로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느끼게 되요.”

경기가 끝나고 신 감독은 열심히 한 선수들을 위해 휴가기간을 줬다고 했다. 하지만 휴식도 잠시. 선수들은 요즘 다시 연습을 시작한다. 바로 7월 27일 있을 명지대와의 시합을 준비하는 것.

“방학 때는 새벽에도 선수들이 연습을 해요. 하루 종일 연습만 하는 거죠.” 근력강화운동, 지구력 운동 등으로 이뤄진 연습훈련은 무더운 더위 속 선수들을 지치게 한다. 하지만 곧 있을 시합의 승리를 위해 선수들은 쉬지 않는다. “이번 경기에서도 학교의 명예를 빛내야 하는데. 열심히 해야겠죠.” 학교의 명예를 드높이자는 신 감독의 마음. 그 마음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

한양으로 통하는 신 감독의 고난 섞인 축구인생

신 감독이 처음 축구를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부터이다. “6학년 때 아버지와 함께 국가대표 경기를 보러 간적이 있어요. 그 날 우리나라 대표선수가 골을 넣었는데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기쁜 마음에 옆에 있는 사람 목을 잡고 ‘아버지 우리 골인이에요’를 외쳤던 신 감독. 하지만 옆을 보니 모르는 털보아저씨였다고.

“이성을 잃었었죠. 조금 있으면 우리나라가 이기게 되는 데다가 TV로만 보던 선수들의 승리를 직접적으로 느꼈으니까요. 게다가 아저씨들이 꼬마가 저 뿐이니까 오징어랑 과자를 수북이 줬거든요. 저는 그때부터 축구국가대표가 되기로 마음먹었어요.”

어렸을 적부터 동네 축구선수였다는 신 감독은 국가대표의 꿈을 가지고 한양중학교에 이어 한양공고에 입학을 한다. 한양공고 2학년. 신 감독은 몇 백 명의 선수들이 참가하는 청소년 국가대표 선발대회에 출전하게 된다. 하지만 그 길이 쉽지만은 않았다.

“마지막 선발을 앞둔 합숙 날 갑자기 배가 아파오는 거에요. 계속 참다 병원에 가보니 급성맹장이었죠.” 그토록 원하고 원하던 국가대표. 앞으로 한경기만 이기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신 감독은 결국 맹장수술을 위해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다. 그날, 신 감독은 인생 처음으로 가슴 아프게 울었다고 한다.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펑펑 울었어요. 지금도 생생해요. 그 때 운 건 아파서 운 게 아니었어요. ‘어렸을 적 꿈인 국가대표선수를 이제 한 발자국이면 될 수 있는데 맹장 때문에 떨어졌구나.’ 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거든요. 말 그대로 눈물범벅으로 서울에 도착했죠.”

하지만 수술이 신 감독의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수술 후 3일 만에 다시 경기에 참가한 것.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뽐낸 그는 결국 선발 18명안에 들게 된다. 그리고 며칠 후.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신 감독은 베스트 선수로서 태국에서 열린 아시아 청소년 대회에 나가게 된다. 하지만 수술로 인한 상처가 쉽게 나았을 리 없었다.

“게임을 하는데 맹장수술한데가 튀어나오기 시작하면서 쿡쿡 쑤시기 시작했어요.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한데 이걸 선생님께 말하면 게임을 뛰지 못할 게 확실했거든요. 그래서 아프다는 말도 못하고 경기를 계속 뛰었어요.”

경기 후 악화된 수술부위로 인해 그는 한양대학병원에서 2번째 맹장수술을 하게 된다. 어렸을 적부터 축구에 대해 남다른 열정을 지녔던 신 감독. 결국 그 열정으로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대표선수로서 처음으로 가슴에 태극기를 달게 된다.

이어 한양대에 진학한 신 감독은 국가대표 선수로 뛰게 된다. 차범근 감독과 같은 라이트윙 포지션이었던 신 감독은 두 번째 고난에 부딪힌다.

“제가 원래 센터포워드였는데 대표팀 함흥철 감독님이 저를 라이트 윙으로 해서 범근이 형과 경쟁을 시키더라고요. 당시 범근이 형은 대들보 같은 선수였으니까 중압감을 많이 받았죠.”

국가대표 초기시절 신 감독은 후보 선수로 남아있거나 교체선수로 경기에 나가곤 했다. 청소년대표 때와는 다른 상황과 대접. 게다가 연말에 11명의 대표선수에게 주는 베스트 11상을 2년 연속 받지 못하자 신 감독은 결국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게 된다.

“하루는 태릉선수촌 합숙 때 축구를 그만둘까도 생각했어요. 이곳에 남아서 더 뭘 할 수 있을까하는 마음이었거든요.” 밤하늘을 보며 실의에 빠져있던 신 감독에게 힘을 준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던 축구에 대한 열망이었다.

“나 자신에게 말했죠. ‘현호야. 여기서 네가 현실을 도피한다고 행복할 것 같으냐. 현실에서 최선을 다해야 행복한 사람이지.’ 결국 이를 악물고 더 열심히 해서 베스트 11상을 계속 받게 됐습니다.”

선수생활의 끝, 하지만 새로운 시작

어린 시절 넉넉지 못한 상황 속에서 신 감독은 인생의 전환점을 여러 번 맛본다. 그런 고난 속에서도 신 감독은 축구를 향한 신념 하나로 버텨나갔다. 그런 그를 무너뜨릴 것은 없어보였지만 예상치 못한 부상이 선수생활에 있어 넘을 수 없는 고비가 되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예선으로 말레이시아와 경기를 했어요. 그 날 무릎을 다쳤죠. 그 부상으로 1년 반~2년을 쉬었어요. 치료도 해봤지만 소용이 없더라고요. 그때 제 선수생활은 끝난 거에요. 일찍 끝난 거죠.”

짧은 축구선수 생활이었지만 곧 조교를 하라는 주변의 권유가 들어왔다. 하지만 신 감독은 축구지도자가 되기를 원했다. “일찍 끝난 선수생활이었기에 이루지 못한 꿈들이 많았어요. 그 꿈들을 좋은 지도자가 돼 이뤄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후 신 감독은 할렐루야 축구 프로팀에서 코치, 감독을 하고 축구협회에서 기술위원으로 일하게 된다. 후에 대학축구감독을 맡고 싶은 마음에 숭실대 축구부에서 지도자를 맡는다. 그리고 지금 또 한 번의 인연으로 모교 한양대 축구감독에 이르게 된다.

신감독이 이끄는 총 30명의 선수 대부분이 저학년으로 구성된 한양대 축구부. 하지만 그들은 준결승에 진출을 했고 3위에 올랐다. 이번 대회를 통해 신 감독은 우리학교 축구부의 발전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계속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이번 경기가 저학년으로 나가서 시합을 한 건데도 4강전까지 진출했으니까요.” 내년에는 10위 권 안에서도 더 앞서나가는 팀이 되고 싶다는 신현호 감독. 여느 대학보다 뛰어났던 과거의 한양대학교 축구부의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지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글ㆍ사진 심소연 기자 nadahaha18@hanyang.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