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력은 인문학적 사고방식에서 나옵니다”
“경쟁력은 인문학적 사고방식에서 나옵니다”
  • 류민하 수습기자
  • 승인 2010.06.06
  • 호수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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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에서 현실의 의미를 찾는 정민<인문대·국어국문학과> 교수

▲ 정민<인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정 교수의 연구실은 마치 조선시대 훈장님 방을 연상케 했다. 연구실로 들어서자 고서들이 가득한 책장이 눈앞을 가로막았다. 책장 위에는 한자글귀가 길게 붙어있었다. 책상엔 묵과 벼루와 다기가 올려져 있었다. 과연 고전문장을 가르치는 훈장님답다. 79년 우리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후 현재 국어국문학과 교수로서 고전문학을 15년째 강의해오고 있는 정 교수를 만났다.

나를 알아가는 수업
정 교수는 이번 학기에도 ‘고전 명문 감상’을 강의한다. “고전 강의는 제대로 하지 못하면 고전을 면치 못한다”며 웃는다. 그는 자칫 사람들이 고리타분하다거나 어렵다고 생각하기 쉬운 고전을 그만의 색다른 방식을 통해 가르치고 있다. 

“고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한문 해독이 우선이겠죠. 학생들이 고문의 한문을 어려워 하니까 수업시간엔 학생들과 같이 한문을 해독하면서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의 답을 정정해주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한자만 나오면 진저리를 치고 멀리하려는 학생들이 있는데, 모르는 것보다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이 더 창피한 거겠죠.”

정 교수는 매 학기마다 핵심테마를 선정해 강의를 진행한다. 이번 학기의 핵심테마는 ‘나’ 이다. 강의시간에 옛 성현들이 자신을 성찰하며 쓴 일기장이나 자서전들을 엮어읽기 한다는 그의 설명이다.

“학기초에 ‘나’에서 시작된 강의는 학기말이 될수록 초점이 ‘깨달음’으로 옮겨갑니다. 학생들이 수동적으로 고전을 배우기보다 고전을 통해 삶의 가치를 상승시킬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우리 곁에 존재하는 고전의 힘과 좋은 문장
정 교수는 현재 한 일간지의 ‘세설신어’라는 코너에 금요일마다 글을 기고하고 있다. 세설신어 코너는 옛날 이야기를 통해 현실을 바라본다.

“고전은 결코 현실과 동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제 책 중에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 있는데 출판 뒤 주위 반응을 들어보니까 공부하는 사람은 공부법으로, CEO들은 경영법으로 각 개인에 맞춰 이해하고 읽었더라고요. 그런데 사실 전 그저 다산 선생의 생각을 정리해낸 것에 불과합니다. 이처럼 우리 고전엔 현실의 다양한 부분에 적용될 수 있는 원리가 담겨 있는거죠. 고전이 지닌 컨텐츠의 힘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고전을 일반인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좋은 문장이 필요하다. 정 교수의 저서 「미쳐야 미친다」, 「정민선생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 「정유각집」 등은 학술적인 성격이 강하고 고전을 다루고 있음에도 누구에게나 쉽게 읽힌다는 평을 듣는다. 좋은 문장이란 비전문가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간결할 뿐 아니라 리듬감이 느껴지는 문장을 의미한다. 그는 좋은 문장의 요건으로 소리내어 읽었을 때 막힘없이 읽혀야 함을 꼽는다.

“어려운 내용을 쉽게 설명하려면 글쓰는 자신이 글을 소화하고 있어야 합니다. 글쓰기에서 전달력은 매우 중요하죠. 내 글이 좋은 글인지 알아보고 싶으면 한번 다 쓰고 나서 소리내어 세 번 읽어보세요. 그 과정에서 내 글의 결함을 저절로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스스로 글을 고치는 과정을 거친 후엔 남이 읽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인문학적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경쟁력
정 교수는 ‘길 위의 인문학’ 운영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다. 길 위의 인문학은 국립중앙도서관과 교보문고가 주최하는 행사로 인문학 관련 저서와 저자의 자취가 깃들어 있는 현장을 전문가와 독자가 함께 찾아가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다섯번 개최됐고 행사 때마다 신청인원이 몰렸다.

“누구나 현대사회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에 대한 욕구충족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길 위의 인문학 행사 신청 때마다 높은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이 책 읽는 대중들의 욕구를 이 행사가 어느 정도 충족시키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 같아 고무적입니다.”

길 위의 인문학 행사에 대해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던 그는 학생들이 취업준비로 인해 인문학을 경시하는 풍조에 대해 의견을 묻자 한숨을 내쉬었다. 학생들은 당장 눈으로 볼 수 있는 한 줄의 스펙을 원한다. 인문학은 자기성찰을 통해 정신을 고양시킨다. 하지만 조급한 마음에 인문학적 사고를 위한 폭넓은 독서와 경험은 뒷전인 학생들이 많다. 이런 경쟁은 도토리 키재기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어쨌든 현실에 맞춰 취업시장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개인들이 마인드를 바꾸기를 바라기는 힘듭니다. 대학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바꿔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학생들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강좌들이 더 많이 개설돼야 합니다. 강의하는 교수들도 학생들이 인문학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폭넓은 인문학적 소양보다는 한 줄의 스펙을 원하는 현실을 그 역시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까. 그럼에도 그는 학생을 향한, 인문학을 향한 희망과 열의를 놓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당부했다.

“진정한 나, 진정한 성공을 찾는 깨어있는 주체가 되세요. 항상 나는 누구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염두에 두기 바랍니다.”

사진 박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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