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엄마,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 차진세 기자
  • 승인 2010.06.06
  • 호수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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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엄마의 희생을 넘어 인간성을 고찰하다

세상의 모든 아기들은 ‘엄마’라는 말을 가장 먼저 익힌다. 신기하게도 ‘엄마’라는 단어는 많은 나라에서 비슷하게 발음된다. 영어의 ‘맘’, 프랑스어의 ‘마망’, 인도어의 ‘엄마’ 등이 그 예다. 그것은 엄마와 자식의 친밀감이 세계 어느 곳에서나 공통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와 처음 소통하며 세상에 나온 아이들은 자라서 성인이 된다. 하지만 성인이 된 아이들은 엄마에게 의존하기는커녕 오히려 갈등을 겪기 일쑤다. 그러면서 서서히 자식들과 멀어져가는 것이 엄마의 일생이라면 너무 감상적일까.

「엄마를 부탁해」 출간 1년 반, ‘엄마’ 열풍
2008년 11월에 출간돼 그 해의 최고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신경숙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엄마를 잃어버린 가족이 엄마를 찾으면서 생기는 회상에 대한 이야기다. 이 작품은 소설로서는 가장 짧은 기간인 출간 10개월 만에 100만 부 판매ㆍ100쇄 인쇄를 넘길 정도로 강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소설의 인기에 힘입은 「엄마를 부탁해」는 연극으로 만들어져 수차례 공연되기도 했다.

「엄마를 부탁해」가 불러온 ‘엄마’ 열풍은 엄마를 다룬 다른 소설ㆍ연극ㆍ영화 등으로 이어졌다. 영화 「마더」ㆍ「친정엄마」,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ㆍ「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등이 흥행에 성공하며 ‘엄마’에 대한 관심을 끌어 모았다.

‘엄마’ 열풍을 이끄는 작품들은 대개 ‘숭고한 엄마의 희생’을 찬미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엄마’라는 한 개인을 탐구하는 것까지 나아간다. 김선영<국민대ㆍ사회학과> 교수는 “문화계의 ‘엄마’ 열풍은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였거나 항상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양보하던 엄마의 삶을 다시 보도록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엄마’를 다룬 작품이 최근 급증하는 것은 현재 존재하는 전형적인 ‘엄마’의 이미지가 그만큼 변화를 겪고 있음을 말해준다”고 설명했다.


엄마 다시보기
「엄마를 부탁해」는 이러한 엄마의 재발견을 ‘엄마의 실종’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해 나타낸다. 그리고 딸, 아들, 남편이 각각 엄마를 회상하며 ‘엄마는 가장 가까운 존재지만 또 가장 알지 못하는 존재’라는 점을 부각시킨다.

‘박소녀’라는 엄마의 이름조차도 소설 후반부에나 처음 등장해 엄마가 전적으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였을 뿐임을 드러낸다. 특히 딸의 회상부분에서는 소설에서 흔히 보기 힘든 ‘너’라는 주체를 사용해, 엄마를 찾는 사람이 작중인물을 넘어 독자 모두에게까지 해당된다는 뜻을 내포한다.

엄마는 길을 잃어버리면서 사라져버렸지만, 엄마의 실종이라는 사태는 엄마가 길을 잃어버린 것과는 사실 무관한 것일 수도 있다. 이미 가족들은 엄마를 ‘잃기’ 전에 ‘잊고’ 있었다. 엄마를 찾으면서, 가족들은 엄마를 잃어버린 현실은 엄마를 이미 오래전에 잊고 있던 자신들의 모습을 확인시켜 줄 뿐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이름 박소녀. 용모 흰머리가 많이 섞인 짧은 퍼머머리, 광대뼈 튀어나옴. …… 엄마를 모르겠어. 엄마를 잃어버렸다는 것밖에는.’ - 「엄마를 부탁해」  중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고 인정하자, 엄마는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난다. 가족들의 회상이 끝나고 이번에는 사라진 엄마가 화자로 등장해 엄마의 인생을 스스로 되돌아보는 것이다. 엄마의 숨겨왔던 아픔, 알지 못했던 소망이 비로소 엄마의 입을 통해 나타난다. 중학교에 너무나 가고 싶어했지만 갈 수 없었던 시동생 균이 몇 년 뒤 자살한 것은 엄마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었고 남편마저 은폐해버린 사건이었다.

‘아내를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균에 대한 당신의 침묵이 사는 동안 아내를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을 지를 생각하지 못했다. …… 당신에게 균의 일은 늙어가는 동안 잊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고 이제는 잊은 듯 여겨졌다.’ - 「엄마를 부탁해」  중

엄마는 머리가 쪼개지는 두통을 견디면서도 자신의 병을 내색하지 않는다.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으면서도 자식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소망원이라는 보육시설의 후원자로 남몰래 선행을 베푼다. 그건 자식들은 물론 남편조차 한참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엄마, 주체성을 찾으러 떠나다
「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결국 돌아오지 않는다. 단지 엄마의 목소리를 빌어 엄마에게도 욕구와 고뇌가 있었음을 드러낼 뿐이다. 그렇게 부각된 ‘엄마의 인간성’은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를 통해 새롭게 드러난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큰 이슈라면 역시 ‘엄마의 휴가’다. 드라마에서 ‘엄마’ 역할을 맡고 있는 건 김한자라는 인물이다. 김한자는 외형적으로 보면 시아버지를 평생 잘 봉양하고, 살림도 잘하고 아이들은 물론 시동생까지 훌륭하게 뒷바라지한 희생적이고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엄마상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금 더 살펴보면 ‘순종적인 아내와 희생적인 엄마’라는 전형적인 엄마상을 거부하고 ‘명령하는 아내와 불평 많은 엄마’라는 성격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남편의 걱정에 짜증을 부리고 무시하는 아내, 손자의 양육을 거절하는 엄마 등 김한자가 보여주는 모습은 전통적인 엄마상이라고 보기 힘들다. 김 교수는 “김한자로 드러나는 「엄마가 뿔났다」에서의 기존 엄마상 파괴는 실제 사회에서 중년기 이후 남편들이 무력감, 상실감을 겪는 현상과 연결돼 있다”며 “남편들과 달리 아내들은 자녀양육 등의 책임감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성향을 보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덧붙여 “이러한 가족상의 변화는 이미 오래전에 이뤄졌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는 여전히 가부장적 남편-아내의 이미지를 재생산해오기 바빴다”고 비판했다.

집안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지만 여느 엄마들처럼 가사노동이란 의무를 40년간 수행해온 김한자는 어느날 ‘1년 동안의 휴가를 달라’는 선언을 한다. 이제 ‘희생하는 엄마’의 재발견에서 ‘자아를 찾아나서는 엄마’로 새롭게 변화한 것이다. 엄마의 휴가로 인해 발생하는 ‘가사노동의 부재’라는 갈등소재에 자식들은 반대하는 반면 시아버지와 남편은 엄마의 입장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고 싶을 때 자고, 밥 먹고 싶을 때 먹는 김한자의 평범한 자유는 얼마가지 못해 며느리의 유산기운으로 인해 끝난다. 엄마가 일찍 돌아와 가사노동을 다시 맡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결말은 전통적 엄마상에 도전했던  「엄마가 뿔났다」 마저도 마지막에는 기존 가족이념을 옹호하는 통속적 가족극으로 변했음을 의미한다. 엄마는 가사노동에 복귀했고 가족들 모두가 행복해 보이지만, 사실 그 화목함은 드라마 초반부와 비슷하게 일시적이고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엄마가 뿔났다」 또한 ‘가정에는 어쩔 수 없이 엄마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를 깔아 ‘엄마의 휴가’를 포기하게 할 수 밖에 없도록 했던 것이다.

‘엄마는 웃지 않네. 울지도 않네. 엄마는 알고 있었을까. 나에게도 엄마가 필요했다는 것을.’ - 「엄마를 부탁해」  중

「엄마를 부탁해」 의 말미에서 엄마는 다시 딸이 돼 ‘엄마의 엄마'를 회상한다. 많은 우리 자식들이 간과하는 것은 우리 엄마 역시 누군가의 딸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평생을 엄마로 살아온 그들의 모습만을 기억하지만, 사실 엄마들도 엄마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라는 걸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엄마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는 비극을 맞기 전에. 
일러스트 주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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