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러브에 담은 어린 시절의 꿈
글러브에 담은 어린 시절의 꿈
  • 심소연 수습기자
  • 승인 2010.06.06
  • 호수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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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야구와 함께 지내온 천보성<체육부실ㆍ야구부> 감독

▲ 천보성<체육부실 야구부> 감독
우리학교 야구감독인 천보성 감독. 어린 시절부터 야구선수가 꿈이었다는 그는 우리학교에 입학하고 난 후 롯데와 삼성 소속 프로선수로 활약한다. 3년 간의 선수생활 끝에 한국 최초의 선수출신 코치가 된 천 감독은 3대 LG트윈스 감독을 거쳐 KBO 경기운영위원을 맡았었다.

야구를 꿈꾸던 소년에서 프로야구 선수로

“어렸을 적 꿈은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는 것이었어요.” 어린 시절의 꿈에 대한 질문에 천보성 감독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초등학교 때 선배들이 입고 다니는 유니폼이 멋있어 보였어요. 그래서 야구를 하기로 결심했죠(웃음).” 천 감독이 어렸을 때는 우리나라 프로야구가 없던 시기였다. 그래서 일본이나 미국의 야구경기가 우리나라에서 유행했었는데 이 시기에 천 감독도 부모님이 사다주신 일본 야구 책을 보며 프로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막연한 꿈을 가지고 시작한 야구였지만 고등학교 때는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할 정도로 천 감독의 열정과 실력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가족의 반대라는 벽에 부딪친 것. 학업에 열중하라는 가족들과 야구선수를 꿈꾸는 천 감독 사이의 갈등의 고리는 고등학교 때 와서야 풀렸다. “가족 중에서도 특히 누나들이 반대를 많이 했어요. 야구를 시작하면 공부를 등한시 할까봐 걱정이 됐나봅니다. 하지만 중ㆍ고등학교 감독님이 오전수업 후 야구연습을 시켜서 학업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고 하셨어요. 그래서인지 나중에는 집안에서도 많이 응원을 해주더군요.”

학창시절 가족과의 갈등 때문인지 천 감독은 우리학교 야구부 학생들에게도 학업과 운동의 병행을 명심하라고 조언한다. “대부분의 운동선수들이 학업을 등한시 하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선수생활은 한정돼 있으니 사회에 나갈 준비도 필요해요. 이때 학업이 중요 요소가 되는 거죠. 가능하면 학업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해보는 것이 좋아요. 야구부원들이 교내의 좋은 교수님과 친구들을 만나고 사귀었으면 합니다.”

힘든 훈련과 계속되는 경기일정, 잦은 부상으로 선수들은 피곤에 지치기 쉽다. 천 감독도 이런 어려운 시기가 있었다. 그때마다 동료 선수들이 있어 함께 이겨낼 수 있었다.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남우식, 삼성 선수시절 같은 한양대 출신이었던 이만수, 장효조, 김시진 외 많은 선수들과 함께 있는 것이 저에겐 큰 힘이 됐죠.”

프로야구선수에서 한양대 감독에 이르기까지

가장 기뻤던 때를 묻는 질문에 즐거운 추억에 잠긴 듯 보이는 천 감독의 모습은 옛 선수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다. “역시 우승을 했을 때가 가장 기뻤어요. 아마추어 때 MVP상을 받았고 프로야구선수 때는 한국시리즈 우승을 했었거든요. 그 시절이 야구선수로서는 가장 행복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리 인대 부상을 당했을 때는 너무나 절망적이었어요. 한창 선수활동을 하던 때인데다가 한국시리즈를 앞둬 더욱 막막했죠.” 아마추어 야구선수에게 부상은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프로야구 선수에게는 은퇴로 연결되는 지름길이다. 시즌을 코앞에 두고 인대 부상으로 6개월 동안이나 고생했던 천 감독은 6개월이 6년처럼 여겨졌을 것이다.

그 무렵 천 감독은 구단으로부터 코치 영입 제안을 받았다. 한국 최초 선수출신 코치가 되는 셈이었지만 이제 막 3년간의 선수생활을 끝낸 천 감독은 걱정도 많이 됐다. “코치제의를 받았을 때는 막막했어요. 선수생활을 더 하고 싶은 아쉬움도 남았고요. 하지만 삼성에서 해외연수를 보내줘 코치생활의 기반을 마련해준다는 얘기를 듣고 해보기로 결심했습니다.” 코치에 이어 LG트윈스 3대 감독이 된 천 감독은 2년 연속 LG구단을 한국시리즈 준우승으로 이끌어 높을 승률을 기록했다.

감독으로서 좋은 성적을 내던 그에게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 측에서 경기위원 자리를 제안했다. 한국 프로야구를 관리ㆍ통괄하는 기구인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의 경기위원으로도 활동한 천 감독은 기억에 남는 추억을 떠올렸다.

“KBO 위원으로 있을 때 국민대에서 3년 동안 강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야구를 좋아하는 대학생들에게 야구규칙 등을 알려주고 함께 야구경기도 보러 갔었어요. 학생들과 소통을 많이 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10년이 지난 일을 바로 얼마 전의 일처럼 이야기 하는 천 감독은 아직도 강연을 듣던 학생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마추어 야구선수에서 프로야구선수, 프로야구구단 감독의 세월을 거친 천 감독은 현재 우리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있다. 우리학교 야구부는 작년 전국대학야구춘계리그전에서 8강을 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다. 후배이자 제자인 젊은 선수들과 함께 있어 행복하다는 천 감독은 학생들의 장래를 많이 생각한다.

“프로 구단에서는 승리만을 위해 팀을 이끌어 가면됐지만, 대학 감독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학생들에게 야구와 함께 인품도 가르쳐야하고 학생들의 장래도 생각해요. 그 때마다 쓴 소리도 많이 해야 하지만 훌륭한 선수로 성장하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보람차고 즐겁습니다.”

평생을 야구와 함께 살아온 천 감독. 그는 인터뷰를 마칠 즈음에 학생들이 우리학교 야구부 경기에 보러 올 것을 권했다. 빡빡한 수업과 취업 걱정으로 힘들고 지칠 때 천 감독의 야구에 대한 열정을 떠올리며 야구장에 들러보는 건 어떨까.   

사진 박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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