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논리를 작곡을 통해 표현하다
내 안의 논리를 작곡을 통해 표현하다
  • 박효은 기자
  • 승인 2010.05.30
  • 호수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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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형 <음대ㆍ작곡과 89> 동문- 1989년 한양대 작곡과 입학- 1995년 베이시스로 가요계 데뷔- 파리고등사범음악원 영화음악 및 작곡 석사



















대중음악가수, 영화음악 작곡가, 클래식 음악 연주가 정재형<음대ㆍ작곡과 89> 동문

클래식과 뉴에이지 음반판매 차트에서 7주째 1위를 유지하고 있는 음반이 있다. 「르 쁘띠 피아노」, 정재형<작곡과 89> 동문의 작품이다. 89학번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세련된 그의 패션 감각은 그의 음악적 재능을 넘어서 또 다른 매력을 풍겨왔다. 심상치 않는 뮤지션, 싱어송라이터, 작곡가 정재형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정재형, 음악인이 되기까지
정 동문이 음악을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짝사랑하던 희야라는 여자아이 때문이었다. 희야를 따라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것. 정 동문은 그때 시작한 피아노를 그 이후로도 여러 번 그만두기도 하고 다시 시작하기도 했다. 그러다 인문계와 자연계중 하나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어요. 피아노로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를 보면서 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재능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저는 좀 더 창조적인 일이 하고 싶었어요. 그 즈음해서 작곡가에 대한 동경이 커졌죠.” 그는 본격적으로 음대 입시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시 레슨 지도를 해주시던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한양대에 지원했다.
“저요? 날라리였죠.” 어떤 대학생이었냐고 묻는 질문에 정 동문의 대답은 간결하다. 그는 많이 놀았다고 답했지만 막상 그렇지도 못했다. 당시 음대 교육과정이 너무 빡빡했기 때문이다. 매일같이 1교시부터 9교시까지 수업은 물론 토요일 수업도 예사였다고. “입시를 준비하면서 음악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입학하고 나니까 배워야 할 게 훨씬 많더라고요. 무척 힘들었지만 당시에 배웠던 것들이 후에 파리 유학생활에서 많은 도움이 됐어요.”

대중가수 정재형 그리고 파리유학
대학교 3학년, 그는 베이시스라는 그룹으로 가요계에 데뷔를 하게 된다. 당시 우리학교 관현악과 동기였던 김연빈을 만나 그녀의 쌍둥이 언니 김아연과 함께 그룹을 결성하게 된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가 바로 베이시스의 대표곡이다.
“대중음악 가수가 돼야 겠다고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니에요. 군복무 당시 쌍둥이 자매로부터 곡을 하나 부탁받았어요. 처음엔 곡만 맡기로 한 거였는데 그냥 셋이 같이 하자고 해서 그룹을 하게 됐어요.”
당시에는 학교를 다니면서 방송활동을 하는 전례가 없었다. 학교에서는 이를 두고 교수 회의가 열리기도 했다고. “교수님들은 제가 좀 더 공부하기를 원하셨던 것 같아요. 처음엔 반대하셨지만 막상 데뷔하고는 많은 도움이 돼주셨어요.”
베이시스 3집, 그리고 가수 정재형이라는 이름으로 단독 앨범을 내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갖춰갔다. 또 이소라, 엄정화, 서지원 등 다른 가수들의 곡 작업에 참여해 그의 작곡 실력도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던 정 동문은 돌연 파리로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그는 도볼 파리 고등사범 음악원에서 영화음악과 작곡에서 석사로 졸업했고 최고 연주자 과정을 수료했다. 평소 글쓰기를 좋아했던 그는 파리에 있었지만 개인 홈페이지를 통해 꾸준히 한국의 팬들과 소통했다. 파리에서의 생활을 짧게 글로 남기던 것이 인연이 돼 그의 유학생활을 엮은 책 「Paris talk」도 출간하게 됐다.
그는 또 작품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다. 유학생활 틈틈이 솔로앨범을 냈고 영화음악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이제 클래식 앨범까지. “저는 대중음악, 영화음악 그리고 클래식 음악이 다른 장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음악이잖아요. 자기 안에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들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많은 것 같아요. 아예 색다른 것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 대한 어법을 다르게 하는 것이죠.”

「르 쁘띠 피아노」로 돌아온 정재형
정 동문의 클래식 앨범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예상했던 바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는 내심 행복한 눈치였다. “기분 좋죠. 이 정도까지는 기대 못했어요. 앨범을 처음 시작할 때 의외로 내가 갖는 시간이 적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 앨범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각자가 원하는 나의 세상으로 가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그 사람이 어딘가에 첫 발걸음을 내딛었을 때 그 느낌처럼요.” 그는 이번 앨범에서 자신이 차지하는 영역을 70% 정도라고 말했다. 나머지는 듣는 이가 저마다의 감상으로 채워가길 바랐다.
그는 음악이 있어 행복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음악에 있어서만은 관대하다. 지난 달 소속사인 안테나뮤직의 주최로 열린 콘서트 ‘대실망쇼 보컬경연대회’에 참가한 그는 관객들에게 기존의 이미지와 다른 파격적인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후 가요계의 이봉원, 윌리웡카라는 애칭까지 얻게 된 그. 덕분에 경쟁자였던 유희열, 루시드폴, 박새별, 페퍼톤즈를 제치고 왕중왕전에서 대망의 1위를 거머쥘 수 있었다. 소감이 어떠냐는 질문에 그는 “난 쿨하니까”라며 유쾌하게 웃는다. “화려한 퍼포먼스를 통해 망가지면서 사실되게 많이 걱정했어요. 그래도 제가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거 같아요.”

대중음악가수, 영화음악 작곡가, 클래식 음악 연주가까지 수많은 수식어가 그에게 붙는다. 거기다 교수라는 직함을 하나 더 추가해야할 것 같다. 한 때 데뷔문제로 교수님들의 걱정거리였던 정 동문이 이제는 대학 강단에 서고 있는 것. 음악이란 큰 틀 안에서 자기만의 스펙트럼을 키워가고 있는 그. 그에게 있어 작곡이란 자기 안의 논리를 표현하는 것이기에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고3때 피아노를 전공하는 친구를 보며 재능은 타고난 것이라고 느꼈던 것처럼 그에게 있어 작곡은 하늘이 내려준 재능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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