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장국 한 그릇 속 얼큰한 위로
해장국 한 그릇 속 얼큰한 위로
  • 우지은 수습기자
  • 승인 2010.05.29
  • 호수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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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먹은 뒤 흐트러진 속을 달래기 위해 먹는 국들을 총칭해 해장국이라 한다. 본래 숙취를 푼다는 의미의 해정이 속을 푼다는 뜻의 해장으로 변화된 것으로 고유어가 많이 남아있는 북한에서는 지금까지도 해장국을 ‘해정탕’이라 부른다.

해장국이 일반 서민들에게 보급된 시기는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하면서부터다. 인천을 드나들던 많은 외국인들은 쇠고기의 주요 부위들을 소비했다. 이에 따라 쇠고기의 내장, 뼈 등이 남게 됐는데 식당에서 이것들을 국으로 끓여 저렴한 가격에 노동자들에게 팔게 된 것이 해장국 대중화의 시발점이다.

그러나 해장국을 서민들만 즐겼던 것은 아니다. 해장국이 등장하는 조선말기 풍속화나 문헌이 이를 뒷받침 해준다. 신윤복의 「주막도」에는 술국을 먹으러 온 선비들의 모습과 솥 앞에 앉아 해장국을 뜨고 있는 주모의 모습이 담겨있다. 1925년에 쓰인 시집 「해동죽지」에서도 양반들이 즐겨먹는 해장국으로 ‘효종갱’을 소개하고 있다. 효종갱은 ‘새벽종이 울릴 때 먹는 국’이라는 뜻으로 효종갱으로 유명한 경기도 광주에서 이를 끓여 밤새 서울 재상집으로 가져오면 새벽녘이 된다는 데서 유래했다.

해장국은 지역마다 재료와 끓이는 방법이 달라 그 종류도 가지각색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선지국은 서울이 원조로 그 맛이 씁쓸한 것이 특징인데 이는 집집마다 다니며 맛이 없어진 된장을 사다 끓였기 때문이라 전해진다. 기후와 수질이 콩나물 재배에 적합한 전주에서는 콩나물국밥이 유명한데 콩나물에는 강한 알코올의 대사산화물을 제거하는 아스파라긴산이 함유되어 있어 숙취해소에 좋다.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충북 괴산과 섬진강 근처의 하동에서는 각각 간과 위장을 맑게 하는 올갱이와 재첩을 끓인 국으로 속을 달랜다. 그 외에도 차가움이 특색인 울진의 오징어물회국수와 해조류 모자반을 재료로 한 제주도의 몸국 등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해장국들이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기존 식재료의 새로운 조합으로 탄생된 신 메뉴들이 각광받고 있다. 추어탕에 우렁을 넣어 끓인 우추탕, 고급 식재료인 전복을 라면에 넣어 끓인 전복 라면 등이 그 예다. 젊은이들 입맛에 맞는 일본라멘, 쌀국수, 해물탕면 또한 ‘신세대 해장국’으로 인기가 좋은데 특히 ‘돈코쓰’라 불리는 돼지사골 육수에 숙주나물을 얹어 먹는 일본라멘은 피부에 좋은 콜라겐 성분이 함유돼 있어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

음식의 맛 못지않게 음식을 즐기는 분위기도 중시되는 시대인 만큼 해장국을 즐기는 방법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는 중이다. 해장국골목으로 유명한 청진동이 재개발 사업의 대상이 되면서 해장국집들이 프랜차이즈로 부활해 서울은 물론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전통적인 맛에 더해진 현대적 인테리어로 수요층이 확대되는 추세다. 1937년 청진동에 해장국을 처음으로 정착시킨 ‘청진옥’의 최준용<서울시ㆍ종로구 40>사장은 “과거 남자손님이 대부분이었던 것과 달리 요즘엔 가족동반, 연인동반 등으로 해장국을 즐겨 찾는다”며 “여성들의 여가시간이 늘어남에 따라 매출에서 여성고객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30%에 이른다”고 수요층 변화를 설명했다.

서민들의 지친 속뿐 아니라 지친 마음, 얇아진 지갑까지 달래주던 해장국. 서민음식의 대표주자로서 맞은 화려한 제2의 전성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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