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내가 된다는 데서 연기의 희열 느끼죠”
“다른 내가 된다는 데서 연기의 희열 느끼죠”
  • 문종효 기자
  • 승인 2010.05.01
  • 호수 13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연기파 배우로의 꿈을 실현하는 노형욱<예술학부·연극학전공 04> 군

드라마 엑스트라로 간간히 방송에 출연해오던 14살의 어린 소년은 1998년, 자신의 짧은 연기인생 가운데 기억에 남을만한 역할을 맡게 된다. MBC 드라마 「육남매」의 오디션에서 당당히 합격한 것이다. 이후 소년은 점차 자신만의 연기인생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육남매」에서는 잘생긴 둘째 아들로, 「몽정기」에서는 성에 관심이 많은 사춘기 학생으로, 「똑바로 살아라」에서는 철부지 막내로 각각 출연하며 대중에 이름을 알린 노형욱 군. 04학번으로 학교에서 꽤나 높은 학번에 속하건만 인터뷰를 통해 만난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앳된 모습이 남아있었다.

어릴 적부터 시작된 연기자의 꿈

노 군이 연기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다. 한글도 제대로 모를 어린 나이에 연기학원에 들어가 연기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이후 그는 드라마 단역이나 단체로 등장하는 CF 등에 간간히 출연하며 미약하게나마 방송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현실과는 다른 ‘또다른 내 모습’이 되는 것에서 연기의 매력을 느낀다고 말한다.

“누군가를 연기함으로써 다른 내가 된다는 게 신기했어요. 지금도 연기를 하면서 이런 기분을 느껴요. 사전에 대본을 통해 내용을 다 알지만 촬영을 할 때는 이를 모른다는 전제하에 연기에 임한다는 것에 희열을 느꼈어요.”

▲ 육남매
그러던 중 MBC 수목드라마 「육남매」의 오디션에 당당히 합격하면서 노 군은 자신의 첫 주연급 드라마를 맡게 됐다. 이 작품에서 그는 잘생겼지만 반항심 깊은 둘째 아들로 열연해 호평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노 군에게 있어 「육남매」는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도 의미가 남다르다.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가 큰 역할을 맡은 셈이죠. 그런데 이 작품이 인연이 돼서 주말드라마 「종이학」에도 출연하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제 연기의 앞길을 열어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죠.”

영화 「몽정기」와 시트콤 「똑바로 살아라」는 거의 동시에 대중에게 공개됐다. 「몽정기」를 찍은 직후에 「똑바로 살아라」의 면접에 합격했기 때문이다. 이 두 작품이 나란히 영화관과 TV 브라운관을 통해 방영되면서부터 노 군은 본격적으로 언론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더욱이 두 작품 모두 사춘기 소년의 엉뚱한 상상이나 좌충우돌 개구쟁이의 이미지로 출연해 노 군의 앳된 모습을 한껏 드러냈다.

“「몽정기」 캐스팅 면접에서 합격한건 거의 운이었던 것 같아요. 이 영화의 면접 이전부터 수많은 드라마 및 영화 면접을 치렀는데 계속 낙방했었거든요. 나 자신과 연기에 대한 자신감이 점차 사라져가던 시기였죠. 그래서 「몽정기」도 당연히 떨어질 줄 알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면접에 붙고 나니 더 열심히 연기에 임하게 되더라고요. 주연이란 생각은 하지 않지만 이 영화로 인해 유명해졌던 것 같기는 해요(웃음).”


대책 없는 개구쟁이인 듯 보이지만 의외로 속은 깊은 남자아이를 자연스레 연기하는 노하우는 무엇일까. 그는 겸연쩍은 표정으로 “연기의 목적을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연기의 대상은 허구적 인물이잖아요. 그저 그 사람을 흉내내려고만 하면 제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대본을 보면서 ‘이 사람은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요. 그가 왜 걷는지, 그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등을 알게 되면 연기에 대한 몰입도가 한 층 증가하죠.”

목표를 향한 인내로 슬럼프 극복해

노 군은 어릴 때부터 연기자로 활동해왔다. 그런데 아역배우 때부터 연기활동을 지속하다 보면 연기자로서 겪는 남모를 고충이나 중압감도 상당하지 않을까. 바로 이 슬럼프로 인해 적지 않은 아역배우들이 연기자 생활을 중도에 포기하니 말이다. 노 군에게도 이런 슬럼프는 찾아왔다.

“정신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연기활동을 하지 않으면 점차 대중으로부터 잊혀져 간다는 사실을 느꼈을 때였어요. 누구나 알아주는 대스타가 아니면 이 법칙은 어느 연기자에게든 적용되는 것 같아요. 육체적으로 힘든 점은 별로 없었는데 이 사실만큼은 견디기 힘들었어요.”

정신적 스트레스를 견디게 해준 것은 좋은 배우가 돼야 한다는 스스로의 목표였다. 희망에 대한 인내의 끈을 놓지 않되, 다가올 그 시기를 위해 고된 오늘을 보내기로 한 것이다. 이런 생각과 함께 시간에 모든 걸 맡겼더니 마음이 홀가분해졌다고.

“연예인 황정민 씨가 ‘인생은 한 방’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저는 이 말을 믿어요. 지금 이 순간에 나 자신을 갈고 닦아 나중에 성공의 한 방을 보란 듯이 이뤄내는 거죠.”

노 군이 연극영화학과를 선택하게 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좀 더 나은 자신을 만들기 위해 학업에 전념하기로 한 것이다. 

“연기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쌓기 위해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하게 됐어요. 그래서 입학 당시에 마음속으로 다짐했죠. 방학이나 휴학 때가 아니면 연기를 하지 않기로요. 나 자신에 대한 수양의 의미도 있었지만 내가 연기활동으로 인해 학교 활동을 빠지게 되면 함께 고생해온 동기들에게 피해를 끼치게 되기 때문에 미안한 점도 있었어요.”

꿈을 실현하기 위한 디딤돌, 한양대

노 군이 우리학교 연극영화학과에 입학하게 된 계기는 의외로 소박하다. 연극영화학과가 서울에 위치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종교적 색채가 강하지 않은 우리학교의 학풍도 주요 이유로 작용했다고.

“서울에 위치한 연극영화학과를 찾았더니 우리학교를 포함해 두 군데 정도가 남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학교는 종교적 색채가 강한 학교였어요. 그 학교에 가서 잘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이곳, 한양대를 선택하게 됐어요.”

노 군은 우리학교 연극영화학과 출신 동문들의 사회적인 평판이 높다고 말한다.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훌륭한 교수진들로 인해 해마다 배출되는 졸업생들이 뛰어난 역량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학교 출신 연기자들 중에는 유독 ‘실력파’ 배우들이 많다.

“사회에 나가면 한양대 출신들은 일을 잘한다는 칭찬을 많이 들어요. 이는 한양대 연극영화학과의 위상이 그만큼 높다는 걸 의미하죠. 학과가 영화학과로 시작했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영화감독 출신들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실력파 연기자들도 각지에서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고 있어요.”

그는 예술학부가 인문대에 위치했을 때를 추억한다. 시설이나 설비는 지금의 IT/BT관으로 옮기면서 더욱 좋아졌지만 인문대 지하의 열악한 시설에서 동기들과 함께했던 시절이 그립단다. 워크샵을 준비하던 사소한 기억들도 노 군에게는 뜻깊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사실 IT/BT로 오면서 시설은 훨씬 더 좋아졌어요. 그런데도 인문대에 있었을 당시에 대한 향수가 있어요. 예술학부가 인문대 지하에 위치했을 당시 소극장이 있었는데 지금 가보니 그곳에 화장실이 생겼더라고요(웃음). 그 당시에는 나무판자에 페인트칠을 해서 복도에 말려놓고는 했는데 통로가 너무 좁아서 타 학과 학생들이 이를 밟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때는 판자를 밟고 간 학생에게 정말 화도 나고 불쾌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때가 그립네요.”

대중의 기억에 남는 연기인이 되고파

노 군은 현재 4학년 워크샵 준비로 여념이 없다. 음악적 요소를 가미시킨 셰익스피어의 역작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무대 디자이너를 맡았기 때문이다. 인터뷰가 끝나면 워크샵 준비를 위해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공연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앞으로 그는 배우라는 직업이 가질 수 있는 모든 영역에 도전해보고 싶단다. 영화배우나 연극배우 등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진정한 배우 말이다.

“영화배우나 연극배우라는 한정된 틀에 갇혀있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기회가 되는 한 최대한 여러 분야의 연기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물론 어려운 일이에요. 생각만큼 잘 안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더욱 노력해보려고 합니다.”

노 군의 궁극적인 목표는 기억에 남는 연기인이 되는 것이다. 비록 짤막한 한 장면이라 해도 대중들의 뇌리에 짠하게 기억될 수 있는 연기자가 그의 꿈이자 바람이다. 인터뷰의 마지막이자 뻔하기 그지없는 질문인데도 그는 겸연쩍게 대답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를 이루려는 강렬한 열의도 느껴졌다.

“대스타가 되고 싶은 욕심은 없어요. 영화배우 오달수 씨나 오광록 씨 같은 배우들처럼 대중들이 저와 제 연기를 알아주신다면 그걸로 만족해요.  단역으로 출연해도 확실한 인상을 남기는 배우, 인기스타보다는 연기파로 기억되는 배우, 그런 배우로 성장하는 것이 제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사진 박효은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