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행해지는 학내 성폭력
은밀하게 행해지는 학내 성폭력
  • 안원경 기자
  • 승인 2010.05.01
  • 호수 13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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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식 개선 교육프로그램 및 기관 활성화 필요

최근 우리학교에서 불미스런 일이 발생했다. ‘딸기츔’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누리꾼이 우리학교 법학 도서관에서 여학생들의 신체 일부를 촬영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리고 성추행 사실을 자랑 삼아 늘어놨다. ‘성추행 인증샷 사건’은 자유게시판을 뜨겁게 달궜고 미성년자이지만 냉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이에 고3이라는 ‘과도한 학업스트레스 때문에 범죄를 저질렀다’며 용서를 구하는 사과문을 올렸지만 며칠 뒤 법학도서관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가 우리학교 학생이었다는 점이 밝혀지면서 학내에 큰 충격을 줬다.

끊이지 않는 대학 내 성범죄
학내에서 발생한 성범죄는 이번뿐만이 아니다. 작년 우리학교 양성평등센터에 접수된 사건은 △과방에서 자고 있는 피해 여학생에 대한 신체접촉 △수업 중 교수의 성희롱 발언 △여자 화장실에 침입한 가해 남성의 변태성 관음 등 총 9건이다.

이에 김은경<양성평등센터> 책임 연구원은 “학내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는 피해자가 가해자와 관계를 고려해 신고뿐만 아니라 상담하는 것 또한 꺼려한다”며 “이를 고려하면 접수된 사건 건수는 적지만 학내 성범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예측할 수 있다”고 밝혔다.

▲ 교육방식별 실시 비율(복수정답)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발표한 보고서 「대학 내 성희롱ㆍ성폭력 실태 및 예방교육 활성화 방안 연구」(이하 대학 성범죄 실태 연구)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212개 대학에 접수된 성범죄 사건 중 학생 사이에서 발생하는 경우가 약 56%로 가장 높았다. 교수와 학생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범죄 비율 역시 28%로  꽤 높게 나타났다. 

이에 김다미<한국성폭력 상담소ㆍ온라인사업팀> 직원은 “학내 성범죄는 교수와 학생, 선배와 신입생과 같이 주로 가해자가 피해자를 억압할 수 있는 사회적 위치일 때 발생하며 피해자와 가해자가 일상적인 관계로 얽혀 있다”며 “이는 직장 내 성희롱ㆍ성추행과 유사한 양상”이라고 전했다. 또 학내 성범죄는 주로 MT나 오리엔테이션과 같은 술자리와 이완된 분위기에서 주로 발생해 문제가 더욱 불거진다.

지난 1월, 유명 사립대학에선 선배가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한 신입생 20여명을 성추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술에 취한 신입생에게 강제로 키스를 하는 등의 범죄를 저질렀고 가해자는 학생들의 요구에 따라 실명이 공개된 대자보를 게시하고 최소 2년 휴학을 권고 받았다.

이 사건이 이슈화됐음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광주 소재 대학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학생과 10여 명의 같은 과 학생들은 MT 도중 불을 끄고 눈을 가린 후 사람을 찾는 좀비게임을 했고 이 과정에서 성추행을 당한 피해 학생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김 직원은 “술을 먹은 뒤 발생하는 실수에 대해 관용적으로 여기는 문화가 깔려있고 많은 대학생들이 술자리에서 즐기는 게임이 성범죄를 발생시킬 수 있는 여지가 많다”며 “하지만 이에 대해 대학생들이 문제의식을 갖고 있지 못한 채 이러한 놀이문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라고 말했다.

성관련 인식 부족으로 발생
익명을 요구한 A는 “술자리에서 한 선배가 어깨 등을 쓰다듬어 기분이 나빴지만 이것이 성추행인지 알 수 없고 주변에 사람이 많아 강하게 항의하지 못했다”며 “그 뒤로 선배의 무례한 태도가 계속됐다”고 토로했다. 이처럼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성희롱ㆍ성추행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으며 피해자와 가해자가 이에 대해 인지하는 정도가 다르다.

▲ 예방 교육에 대한 구성원들의 일반적 태도

대학 성범죄 실태 연구에서 사건 해결이 어려운 이유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설문조사 항목 중 △사실 관계 확인이 어려움 △사건 성격의 모호성이 각각 30.9%, 19%로 나타났다.

이에 김 직원은 “집단 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은 서로 얽혀진 관계 때문에 증언하려는 사람이 없고 구체적인 증거를 확보하기 어렵다”며 “다양하고 일상적인 상황에서 발생하는 학내 성폭력 사건 중 가벼운 신체접촉이나 추근거림과 같은 행위들은 당사자 간의 입장 차이로 인해 양상이 더 복잡해진다”라고 밝혔다. 이러한 학내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뿐만 아니라 가해자에게도 큰 타격을 남길 수 있다. 성폭력 여부를 판단할 때엔 가해자의 의도는 고려되지 않은 채 피해자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피해자 중심주의’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김은경<양성평등센터> 책임 연구원은 “성폭력 피해 상담 시 가해자와 면담해보면 자신의 행위가 성폭력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며 “성폭력 사실이 명확할 때에 피해자는 철저하게 보호되지만 가해자는 피해자의 요구에 따라 공개 사과문을 게시해 학업생활에도 지장을 받는 경우가 있다”라고 전했다.

이에 김 연구원은 “자신이 성폭력을 당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자신이 성폭력 행위를 했다는 것을 인지하지도 못한 채 가해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선 성폭력에 대한 지식 습득과 성에 대한 의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학 성범죄 실태 조사에 참여한 대학 중 73%가 2회 이하로 성교육을 실시해 단발성 행사에 그치고 있다. 이에 현정<한국 여성의 전화ㆍ성폭력상담소> 상담사는 “현재 20대는 성을 금기시 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성에 대해 경직된 교육만 받아왔다”며 “대학에서라도 구색맞추기식 성교육을 지양하고 소규모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토론식 교육이 필요하다” 전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양성평등센터에선 △새내기 세미나 성희롱 예방교육 실시 △한양 양성평등 서포터즈 교육 △외국인 대상 성교육 소책자 배부 등을 하고 있지만 강제성이 없는 행사에 학생들의 참여율은 저조하다. 이에 김 연구원은 “학생들의 참여율을 높이기 위해선 필수 과목 지정과 같은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며 “학내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선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내 구성원 모두 성의식 개선을 위한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사진 박효은 기자
자료제공: 교육과학기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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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예도 2023-08-01 14:08:44
이 글은 대학 내 성범죄 문제에 대해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어 좋았습니다. 학내에서 발생한 성범죄 사례와 그 원인에 대한 분석과 함께 성범죄 예방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학생들과 구성원들의 성의식 개선과 제도적 보완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이 인상적입니다. 학생들과 교내 구성원들이 함께 동참하여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라며, 성범죄 예방교육에 대한 노력이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