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태안을 잊었는가
당신은 태안을 잊었는가
  • 차진세 기자, 안원경 기자
  • 승인 2010.04.03
  • 호수 1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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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남아있는 유류피해 … 기약없는 배상에 주민들 울상

▲ 1. (왼쪽 위)갯벌을 20cm정도 파내자 기름막이 떠올랐다. 2. (왼쪽 아래)작년 4월 태안군 소원면 신두리 해안에서 삼괭이(고래의 일종) 시체가 발견됐다. 3. (오른쪽)갯벌이 기름의 영향을 받아 원래의 색을 잃고 시커멓게 오염돼있다.
지난 2007년 12월, 충청남도 태안군 근처 해상에서 삼성중공업 소속 크레인과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의 충돌로 기름 유출 사고(이하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가 발생했다. 유출된 원유의 양은 1만2천여㎘로 추정되며, 이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 10년간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모든 선박 유류사고의 유출량보다 많은 양이다. 원유는 태안군을 넘어 충청도 해안 전역, 심지어 전라남도와 제주도까지 흘러들어가 생태계와 지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혔다.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은 이러한 피해상황보다 130만 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의 모습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많은 언론 매체에서 대규모의 자원봉사 행렬을 앞다퉈 보도한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 자원봉사에 중점을 둔 보도가 현지 주민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박동균<대구한의대ㆍ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자원봉사보도에 과잉 집중한 관계로 피해상황전달이 상대적으로 밀려났다”며 “정작 중요한 과학적인 원인 분석과 대응책 등에 관한 보도가 부재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주민 피해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는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이 일어난 이듬해인 2008년 여름부터 해수욕장을 개장하는 등 태안의 회복을 알리는 정부의 움직임과 동일하다. 초기 태안 해안의 복원 기간이 최소 20년에서 최대 50년 이상으로 예상됐던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정나래<환경운동연합ㆍ기름유출사고 특별대책위원회> 간사는 “피해 지역이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 전 상태로 복원됐다는 정부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며 “환경학적으로 ‘복원’은 오염원이 제거돼 생태계가 완전히 회복된 상태를 의미하며, 현재는 ‘자연방제’기간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겉으로 보이는 기름을 닦아냈다고 해서 그것이 결코 방제의 완료를 의미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이 일어난 지 2년여가 지난 현재에도 원유의 흔적은 해안 곳곳에 남아있다. 김진성<의항2리 어촌계> 간사는 “갯벌을 30cm만 파도 기름막이 떠오르는 곳이 적지 않고 무인도의 경우 방제작업이 거의 되지 않은 곳도 있다”며 “극소수 종류를 제외한 생물들은 대부분 수가 극히 줄어 어획량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전했다.

농림수산식품부 조사에 따르면 태안군 어획량은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2007년에 비해 2008년 43%가 급감했으며 잠재 자원량을 의미하는 수산자원밀도는 2004년~2007년 평균에 비해 2008년 춘계 47%, 추계 51%가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주민들의 건강 또한 위협받고 있다.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 직후 주민과 자원봉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건강영향조사에서 일반인에 비해 방제작업 참여자의 체내 중금속 비율이 35% 이상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최근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에서 암 환자가 급증한 사실이 밝혀져 주민들이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과의 연관성을 제기하고 있다.

정 간사는 “외국의 경우 유출 사건이 발생하면 주민을 예방차원에서 방제현장으로부터 격리시키고 국가와 사고기업에 전적인 책임을 묻는다”며 “그러나 우리나라는 감성적인 구호에만 호소해 문제의 해결을 사건과는 아무 상관없는 국민에게 전가시켜 잊히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문제는 태안의 복원되지 않은 생태환경에만 그치지 않는다. 허베이스피리트호 기름유출 사고 이후 거의 배상이 이뤄지지 않아 대부분의 유류피해주민들이 생활고를 겪고 있고 지난 2월엔 태안 유류피해대책위원회 위원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 이후 태안 주민들은 대부분 양식장을 철거했고 한동안 맨손 어업 또한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유류 피해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진 것은 사고 직후 두 차례 지급 받은 생계지원비뿐이다. 김 간사는 “수산업에 종사하는 대부분 피해자들이 지난 2년 동안 소득 없이 생활해왔다”라며 “2008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수입이 200만원에 불과했다”고 토로했다.

이는 수산업 종사자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기름 유출 사고는 태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줬고 이에 따라 숙박업 및 관광업 분야에서도 큰 타격을 입었다. 만리포 해수욕장 근처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유인자<충청남도ㆍ태안군 54> 씨는 “기름 유출 사고 이후 전에 비해 관광객이 10% 이하 수준으로 줄었다”며 “성수기를 누려야 할 지난 여름에도 예전과 같은 만리포 해수욕장의 활기를 찾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에 택시 운전사 정종기<충청남도ㆍ태안군 44> 씨 또한 “저녁 시간이 되면 유흥업소를 비롯한 대부분 상업시설이 문을 닫을 정도로 태안군의 경기가 침체됐다”며 “이와 더불어 드문드문 태안을 찾아오는 손님에게 바가지요금을 씌우는 관광업자들이 생겨나면서 경기 침체의 악순환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태안 주민들이 경제적 곤란을 겪고 있지만 신속한 보상을 기대하긴 어렵다. 수산업의 경우 피해액을 정확하게 측정하기 힘들고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 이전의 소득 수준을 보여줄 수 있는 명확한 증빙자료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맨손어업 종사자의 경우 보상이 더욱 지체된다. 지난 2월 25일부터 맨손어업 피해자에 대한 접수를 시작했지만 직거래가 많은 어민들이 국제오염보상기구(IPOC)가 요구하는 까다로운 증빙자료를 제공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배상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는 현재는 소득에 관련해 명확한 자료를 제출할 수 있는 숙박업분야에서 먼저 배상이 이뤄지고 있다. 현재까지 2만5천431건의 피해배상 청구 건이 있지만 전체 건수의 약 5%인 1천237건만 사정돼 수산업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상액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지방ㆍ중앙 정부의 소극적인 움직임 또한 유류피해주민의 생활고를 가중시키고 있다. 태안군청의 한 관계자는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은 민사 사건이기 때문에 지방정부가 무분별하게 개입할 수 없다”며 “군청이 할 수 있는 일은 사고 당사자 간에 활발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 달에 한 번 회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김 간사는 “유류피해 사고 직후 지방ㆍ중앙 정부에 주민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지만 유류피해 특별법 제정 당시 주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힘든 지난 2년을 보낸 피해 주민들은 정부의 늦고 안일한 대응에 지쳐가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태안 유류 대책 연합회ㆍ이원면 지부> 사무국장은 “피해 주민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피로감이 쌓여가 배상 측과 투쟁할 수 있는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라며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과 완전히 복원되지 않는 바다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피해주민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또 박 국장은 “지방ㆍ중앙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한계를 짓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런 와중에 충청남도 서산시와 당진군에 걸쳐 기름 유출사고(이하 ‘대산항 사건’)가 작년 12월 20일 또다시 발생했다. 소형 유조선 신양호에서 담당자 실수로 유출된 기름이 서산시 대산항과 당진군 석문면의 8개 섬을 덮쳤다. 대산항 사건에서 유출된 기름의 양은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의 2천분의 1수준인 5.9㎘에 불과하지만 기름이 수십만 개의 타르조각으로 분리돼 굴 양식 등 주민경제에 적지 않은 피해를 입힌 것이다.
대산항 사건은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이 일어난 지 채 2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한 사건이라는 점과 관련해 정부의 관리 대책이 아직도 미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선체가 한 겹의 철판으로 만들어져 기름 유출 위험이 높은 단일선체 유조선을 계속 사용하고 있는 게 그 예다. 우리나라는 단일선체 유조선 사용 비율 30%가 넘어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부터 단일선체 유조선을 사용 금지하고 이중선체 유조선의 비중을 늘리려 하고 있으나 최근 조사에 따르면 아직도 단일선체 유조선의 비율이 절반 가까이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기름 방제 방식에 대한 문제도 제기된다. 현재 방제 작업에서 주로 사용되는 유화제 살포 방식과 고온고압 방식은 유출 기름 피해보다 더 큰 환경파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름을 녹이는 유화제 살포 방식과 기름을 떼어내는 고온고압방식은 눈앞에 보이는 기름만을 제거하기 때문에 해저생물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논란이 있다. 이에 해양경찰청은 지난 2008년 방제 방식에 ‘생물정화제제’를 추가함으로써 유류분해 미생물을 이용한 방제 기술을 도입했으나 이 또한 주변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용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정 간사는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을 비롯한 대형기름 오염사고의 영향은 단기간 예측이 불가능하므로 장기적인 영향 조사와 함께 근본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며 “정부는 ‘다시 태안에 가서 기름을 닦자’등의 근시안적이고 감상적인 구호를 외치기보다 현지 주민의 피해와 생태환경에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사진 박효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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