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심소욕이 불유구라
종심소욕이 불유구라
  • 한양대학보
  • 승인 2010.03.22
  • 호수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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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차동<법대ㆍ법학과> 교수

누구에게나 선택의 순간이 있기 마련이다. 고교시절 문?이과의 선택, 대학입학에 있어 학과선택, 직업의 선택, 배우자의 선택 등. 한쪽이 반드시 다른 한쪽보다 좋은 것은 아닌데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인 것이다. 문과가 이과보다 좋고, 의사가 변호사보다 좋고, A씨가 B씨보다 좋다면 좋은 쪽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예를 든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어느 것이나 장단점은 있기 마련이어서 우열을 가늠하기 어렵다. 그래서 선택이 어려운 것이다.

이제 쉰고개를 넘어가면서 주위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 사람들에게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 한마디는 해 줄만한 여유가 생겨 그때마다 나는 종심소욕할 것을 권한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려 자기가 참으로 원하는 것이 무언지를 먼저 살피라고 권한다.

세상의 가치에 따라, 남의 소망에 따라 선택한 길은 가슴깊은 갈망이 없다. 그 길을 가면서도 순간의 소중함을 즐길 수도 없다. 이루고 난 후 성취감은 있을 지 몰라도 그 과정에서의 기쁨과 즐거움은 없다. 혹시 곡절이 있을 경우 쉽게 피곤하고 지치며 간절히 성취하고자 하는 소망이 없기 때문에 포기하는 경우도 더러 있고 좌절하기도 한다. 그래서 권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마음에 원하는 것이면 다해도 되는 것일까? 공자는 인생 70을 종심소욕이 부유구라고 하였다. 공자는 70세가 되어 보니 마음이 원하는 바대로 행동하여도 법도에 어긋나는 법이 없었다고 말한 것이다. 공자도 70세가 되어서야 그랬다니 범부가 70도 되지 않아서 종심하여도 될까?

이제 배움터에 새내기들로 다시 가득찼다. 설레임으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고 있다. 생각해 보니 내 삶도 중요한 선택은 대학생활중이나 그 직후에 집중되었던 것 같다. 분명 그때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조언을 해 주었을 텐데도 나는 제대로 귀를 기울인 적이 없었다. 조금만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면 좀 더 좋은 선택을 하였을 것인데...란 아쉬움이 남는다. 나는 다시 한번 그들에게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려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런데, 정말 하고 싶은 일들을 그대로 해도 될까? 공자는 70세나 되어서야 가능하였다든데...

구태여 토를 달아보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되 그 수단과 방법은 법도에 맞게 하라고 말해야겠다. 공자도 아니고 70세도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수단과 방법상의 제약으로 말미암아 하고 싶은 일도 못할 때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꼬리가 머리를 흔드는 꼴이 된 셈이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살고 있는 한 관계속에서 발생하는 제약은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래도 종심할 것을 권하는 것은 삶의 가치는 결국 개인적 행복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그 의미를 조금 깨달게 되었다고 생각한 순간 이미 너무 많은 선택을 해버려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을 알았다. 삶은 깊이 생각해 보지 않으면 누구나 늦은 후회를 할 수 있다. 논어의 이야기에 어둡찮은 해석을 괜스레 첨가한 것 같아 계면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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