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적 루틴과 10,000 시간의 노력
창조적 루틴과 10,000 시간의 노력
  • 한양대학보
  • 승인 2010.03.13
  • 호수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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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중 <의대·의학과> 교수
한강물까지 얼어붙게 만들던 혹독한 추위도 3월로 발음되는 봄이란 기표 앞에서는 여지없이 방을 빼야만 한다. 퀭하니 찬바람만 불던 캠퍼스와 늦은 시간의 학교 앞 도로변은 스스로 성인임을 증명하고픈 상기된 학생들의 높고 낮은 소리들로 채워지고 있다.

마흔이 넘었지만 아직도 충분히 젊다고 자부하는 내게 25년 전 신입생 시절 모습이 파릇파릇한 대학 새내기들과 겹쳐진다. 당시에 가졌던 고민들, 하고 싶었던 일들,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불안감들도 함께.

젊다는 것은 축복받을 일이다. 빛나는 눈매와 탱탱한 피부, 때 묻지 않은 무제한의 사유, 겁 없는 도전과 아직 부과되지 않은 사회적 책임감으로부터의 자유, 숏 프로그램 시작단계의 김연아라고나 할까. 지난 20여년을 이리저리 반추해 보지만 결국 주인이 되지 못한 삶의 과정으로 인해 후회와 아쉬움이 태반인 불완전한 인생일 뿐이다.

지금 나이의 절반 무렵, 40이 넘으면 무슨 낙으로 살지 삶을 움직일 동력이 관성 이외에 있을지 궁금하였다. 돌이켜보면 루틴이란 예측 가능한 삶의 궤적 속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은 재미없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지금은 변화에 겁을 내는 소위 기성세대가 되어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지만 나비효과처럼 여기에 조금만 변화가 있었더라면 인생이 어떻게 변했을지.

하루하루 자동문처럼 열고 닫히며 피동적으로 살아져버린 게 아닌지. 현실을 뛰어넘으려는 고민을 조금만 더 해 봤더라면, 아주 조금만 더 창의적으로 일상을 바꿨더라면, 미래의 유령에게 이끌린 스쿠루지처럼 후회하지는 않았을 텐데.

발령 10년이 되어가는 요즘 10,000시간, 하루 최소 3시간의 위력을 실감한다. 새벽의 수술 장이란 절해고도에서 나만 바라보는 동료, 후배, 제자들을 떨지 않고 이끌어 나가야 하는 그리섬 반장이 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프로페셔널은 수익을 뜻하는 성과물로 대신 말해야 한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자신의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세컨드 오피니언, 즉 처음에 제시한 치료방법이 효과가 없어 제2의 의견을 요구하는 환자가 있다면 근 10년의 수련기간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자인하는 셈이다.

잘하는 사람은 열심히 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한다. 브레히트의 말처럼 때로는 자기 삶에서 한 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소격효과와 같은 전환점이 필요할 듯하다.

그래야만 창조적 방법으로 조금씩 루틴을 바꿔나갈 수 있다. 무엇이든지 1만 시간의 연습을 견디면서 치열한 삶을 즐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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