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제정 근간 법철학… 지속적 관심 필요
법 제정 근간 법철학… 지속적 관심 필요
  • 양영준 수습기자
  • 승인 2005.12.04
  • 호수 121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생명윤리법에 대한 법철학적 논의 요구돼
일러스트 신미현
지난 달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 집중 점검이 되었던 부분은 후보자의 법철학이었다. 법에 대한 자신의 가치관을 드러내는 법철학은 법관의 판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부터 시작한 법철학은 실정법을 넘어 올바른 법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소크라테스의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언은 플라톤의 저서 크리톤의 “법은 국가와의 약속이므로 나의목숨을 빼앗아 가는 것일지라도 지켜야 한다”는 구절이 와전된 것이다. 이는 악법도 일단 지켜져야 하며, 그 법이 정의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절차적인 방법을 통해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악법도 법이다”라는 법실증주의 명제에 따르면, 국가가 제정한 실정법은 그 내용 여하를 불문하고 준수돼야 한다.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실제로 1972년 일어난 10월 유신을 통해 세워진 이른바 유신헌법은 국회의 국정감사권을 폐지하고 직선제이던 대통령 선거제도를 간선제로 바꾸는 등, 국민의 기본권을 크게 축소시키고 대통령의 권한을 비약적으로 확대 강화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유신헌법은 민주화를 바라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처벌하고, 정권을 강화시키는 수단으로 사용됐다. 이는 악법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법철학에 대한 가치를 저버리는 결과를 낳았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한편 현대법철학의 큰 조류 중 하나인 자연법론에 의하면 정의롭지 못한 실정법은 그보다 상위에 있는 자연법(이성, 양심)을 거스르는 것으로서 효력이 없으며, 따라서 국민들은 이에 대해 저항할 수 있는 정당성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독일의 법철학자인 라드브루흐는 “정의가 전혀 추구되지 아니하거나 정의의 핵심인 행동원칙이 실정법률에서 의도적으로 부정되는 경우에는 그 법률은 단순히 부정당한(enriching)법이 아니라 아예 법으로서의 성질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실정법을 포함하여 법이라 함은 정의에 봉사하는 질서와 규정으로 정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척도에서 보면 악법은 모두 현행법으로서의 자격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지난 달 11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초ㆍ중ㆍ고 제7차 교육과정 교과서 내용 중 소크라테스의 법철학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바탕을 둔 현대법철학과 맞지 않는다”며 “이 명제는 반인권적 사상이나 사회현실을 옹호하는 것”이라고 삭제 권고하기도 했다.

현대 법철학의 또 하나의 중요 화두는 생명 윤리부문에 대한 논란이다. 특히 사형제도 존속·폐지를 두고 사형제도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지 않는지에 대해 뜨거운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헌법 제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한다. 헌법을 보면 심각한 죄수라 할지라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가져야 마땅하다. 이는 법 이전에 그 법을 존재하게 하는 법철학이 인간 존엄성에 대한 정의를 내려야 할 문제인 것이다.

사형제 존속에 대해 찬성하는 법철학자들은 형벌의 본질이 적어도 응보에 있는 만큼 흉악범에 대한 사형의 집행은 정의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법무부는 지난 6월 국회 법사위원회에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이 발의한 사형제폐지안을 반박하며 “사형은 정의에 부합하며 인명을 중시하는 인간존중 이념의 발현”이라며 “흉포한 인명 살상범이 극형에 처해지지 않는다면 일반의 정의감에 배치되고 피해자측의 불만과 사적 복수심이 증폭될 것”이라고 밝혔다. 폐지론의 가장 중요한 논거는 바로 인간 생명권의 불가침이다. 즉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관한 헌법 제10조의 전제가 되는 생명권을 침해하는 사형제도는 위헌적 형벌이라고 반박한다. 현재 대법관 및 대법관 후보자 13명 중 8명은 사형제 폐지에 찬성하는 입장을 나타내 귀추가 주목된다.

최근 황우석 교수가 배아줄기세포 연구결과를 발표함에 따라 새로운 생명윤리에 대한 법철학적 합의가 시급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생명윤리법이 지난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갔으나 배아보호법 제정과 같은 여성계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아 난자 보호에 도움이 되지 않는 등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배아가 인간인가 조직인가 하는 문제는 해결하기에 쉽지 않은 영역이다. 법은 재판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인 만큼 생명기술의 개별적 사례들이 윤리에 어긋나는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

법철학은 법을 제정하는데 있어서 근간을 이룬다. 인간의 도덕과 윤리에 어긋나는 법철학에서 파생되는 실정법은 결국 인간의 행복을 해치게 된다. 법철학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사랑이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게 만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