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지샜던 그들의 58일
눈물로 지샜던 그들의 58일
  • 김상혁 기자
  • 승인 2010.02.26
  • 호수 1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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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 아주머니 해고 논란

▲ ERICA캠퍼스에서 해고 조치 당한 청소 아주머니들이 시위를 지난 58일간 해왔지만 학교 측에서는 "책임이 없다"고 일관하고 있다. ERICA캠퍼스 총학생회도 이 사태에 대한 해결을 포기한 상태다. 박효은 기자
ERICA캠퍼스에서 청소 업무를 담당하던 비정규직 여성 직원 30여명이 작년 12월 30일 사실상의 해고 조치를 당했다. 이들은 작년 학교와 계약한 용역업체 측에게서 ‘면접에 불합격됐다’는 문자메시지로 해고 사실을 통보받았다.

현재까지 용역업체가 3번 정도 바뀌었지만 업체만 바뀌는 것일 뿐 이들이 일하는 데는 지장이 없었다. 이기남<경기도ㆍ안산시 56> 씨는 “지난 10년 동안 새로 계약한 업체가 고용을 승계해 와 해고는 상상도 못했다”고 전했다.

청소 아주머니들은 해고 사유에 대해 “노조 활동을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강둘남<경기도ㆍ안산시 56> 씨는 “노조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사람들 대부분이 해고됐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 2004년부터 전국여성노동조합 경기지부 조합원으로 활동해왔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부당 해고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고 ‘해고’란 용어 자체도 잘못됐다”고 반박했다. 권혁영<총무관리처ㆍ관재과> 과장은 “학교와 용역업체의 계약 형식이 일정 기간 일을 맡기는 도급 형식이기 때문에 학교는 채용 과정에 관여할 수 없고 이번 사태에 대해 법적 책임도 없다”고 말했다.

해고 후 청소 아주머니들은 지난 12월 31일 본관 점거에 나섰고, 그러던 중 한 명이 음독자살을 기도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 상황에 대해 전추자<경기도ㆍ안산시 61> 씨는 “음독 자살 시도 직후 물을 달라는 요구에 학교 관계자는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며 분개했다. 그 후 지난 1월 20일부터 본관 농성을 중지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양 캠퍼스 정문에서 시위를 벌였지만 지난달 27일 투쟁을 그만뒀다. 해고된지 58일만의 일이다. <관련기사 3면>

‘노조 활동’이 해고 사유인가
청소 아주머니들은 평소 학교와 용역업체가 자신들이 노조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시선으로 바라봤다고 주장했다. 강 씨는 “노조 운동을 학교 측이 번번이 방해하곤 했다”고 말했다. 우선 모임에 필요한 장소부터 제공해주지 않았다. 안경자<경기도ㆍ안산시 57> 씨는 “총학생회에 부탁해 강의실을 대여하면 어느새 학교 직원들이 내쫓곤 했다”고 말했다.  안 씨는 “노조 간부급은 리스트를 작성한 것 같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박성옥<경기지부 전국여성노조> 조직국장은 “노조를 탈퇴한 사람만 선별적으로 고용한 정황이 보인다”고 밝혔다. 또 조합비 납부 통장을 없애면 해고되지 않았다. 박 조직국장은 “업체 중 한곳이 ‘조합비 납부 통장을 해지하고 확인서를 갖고 오라’고 말해 그 지침에 따른 사람들은 재고용됐다”고 주장했다.

청소 아주머니들에게 노조는 권리주장을 위한 최소한의 통로다. 노조 결성 후 이들의 유급 휴가 연차일이 기존의 10일에서 15일로 늘었다. 안 씨는 “법으로 정한 연차일이 15일”이라며 “그마저도 해주지 않다가 노조 교섭 후 처음 늘린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 가입 후 최저임금도 받게 됐다. 청소 아주머니들이 노조 활동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용역업체들의 주장은 다르다. 이윤도<애니시큐> 부장은 노조 활동을 제한했다는 의혹에 “심사 당시 면접자가 노조인지 비노조인지는 구분하지 않았다”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부장은 “심사 때 무성의한 태도를 보이거나 이력서를 제대로 작성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주로 탈락시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또다른 의혹이 제기됐다. 용역업체 측은 “심사 한 달전쯤 아주머니들의 성실도를 파악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용역업체 선정이 지난 12월 16일 이뤄져 당시에는 심사 자격이 없었다. 박 조직국장은 “심사는 이력서와 면접만으로 진행됐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들 곁에 우리는 없었다
처음 해고 사태를 학생에게 알린 건 ERICA캠퍼스 총학생회였다. 총학생회는 학교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해당 사실을 주기적으로 알렸다.

하지만 지난 1월 중순 청소 아주머니들에 관한 총학생회의 게시글이 뜸해지기 시작했다. 대신 2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한 ‘한양 서포터즈’가 꾸려졌다.  ERICA캠퍼스 총학생회장 유예슬<공학대ㆍ화학공학과 06> 양은 “총학생회 내부에서 해고 사태에 조심스럽게 접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의 결정 △학교 측의 압박이 그 이유다. 중운위 내부에서 노조 관련 문제에 대해 거부감을 표하는 의견이 제기됐고, 학교 측에서 학생회 간부 수련회 지원에 대해 압박을 가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관련 내용이 오간 7차 중운위 회의록은 공개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우리학교 학생 A는 “총학 측에서 처음엔 일을 크게 벌이다가 끝이 흐지부지되니 비판적 여론을 염려해 비공개로 처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 양은 “당시 중운위에서 논의한 사항이 많아 미처 다 보고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총학생회는 ‘표면적 활동에 나서지 말고, 협상 테이블 마련을 위한 노력을 하자’는 입장을 표명했지만 사실상 사태 해결을 포기했다. 인터뷰 당시 유 양은 지난 26일이 마지막 시위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실제 타 학교의 사례를 비교해도 총학생회가 전면에 나서지 않은 경우는 드물다. 고려대는 총학생회 주도로 3일동안 1만명 이상의 학생 서명을 이끌어냈다. 성신여대는 재학생 9천명중 6천500명이 서명했다. 반면 우리학교는 서명운동조차 기획하지 못했다. 한양 서포터즈 회장 신성수<과기대ㆍ응용수학과 03> 군은 이에 대해 “총학생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줬더라면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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