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W, 저 광대한 세상을 보라
WOW, 저 광대한 세상을 보라
  • 차진세 기자
  • 승인 2010.02.19
  • 호수 13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년의 노력으로 6년째 최고 위치인 와우 이야기

‘부모님 일리단만 잡고 효도할게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이하 ‘와우’)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흔히 알고 있는 문구다. 일리단은 「와우」의 유명 보스 몬스터 중 하나로, 게이머들이 「와우」에 빠지는 걸 위트있게 표현하는 문구다. 이 문구는 새로운 보스 몬스터 ‘리치 왕’이 나오면서 ‘부모님 리치왕만 잡고 효도할게요’로 바뀌었다. 그리고 마침내 리치 왕이 무너지자 와우의 두 번째 확장팩인 「리치 왕의 분노」 스토리는 끝을 맺었다. 하지만 일리단만 잡고 효도하겠다던 자식이 리치 왕을 잡아도 효도를 할 것 같지는 않다. 「와우」의 세번째 확장팩 「대격변」이 내년 출시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워크래프트」와 「와우」의 약진
「와우」의 시작은 1994년 출시된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 게임 「워크래프트1」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게임은 당시 유일한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던 「듄 2」의 아성에 눌려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듬해 나온 후속작 「워크래프트2」는 질 높은 그래픽과 빠른 게임 속도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김시소 <게임메카> 기자는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워크래프트2」를 통해 전략시뮬레이션 게임에 대한 노하우를 익힌 개발사 블리자드는 1998년 「스타크래프트」의 출시로 세계적인 게임사 반열에 올라섰다”며 “사실 「스타크래프트」역시 기획 당시에는 「워크래프트」의 배경을 단순히 우주로 옮긴 것에 지나지 않은 아류작이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워크래프트2」와 「스타크래프트」에서 도입된 배틀넷(인터넷 멀티플레이) 시스템은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목적을 컴퓨터가 아닌 다른 유저들과 대결하는 것으로 바꾼 획기적인 시스템으로 평가받는다.

「스타크래프트」의 예기치 않은 성공 이후 중단됐던「워크래프트」시리즈는 2002년 「워크래프트3」로 돌아왔다. 이 게임도 100만장 가까운 판매고를 기록하며 상당한 성공을 거뒀으나 국내에서만 450만장 이상이 판매된 「스타크래프트」의 인기 때문에 국내 시장을 점령하지는 못했다. 3D 도입 등 기존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과는 차별화된 게임 시스템은 해외에서 큰 호평을 받아 전 세계적으로는 「스타크래프트」의 두 배가 넘는 2천만 장 이상이 판매됐다.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대명사 중 하나로 인식되던 「워크래프트」시리즈는 2004년 다중 접속 온라인게임 「와우」로 새롭게 등장한다. 초기 가입자 100만 명이 목표였던 「와우」는 2010년 현재 전세계 1천 150만 명 이상의 가입자를 보유할 정도로 최고의 온라인게임이 됐다. 김 기자는 “NC소프트의 「리니지」를 제외하면 「와우」의 성공과 비교할 수 있을 만한 온라인게임은 없을 정도다”고 덧붙였다.

방대한 세계관과 스토리에서 나오는 인기
16년 동안 세 편의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과 「와우」 및 두 편의 확장팩을 개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바로 와우의 방대한 세계관과 그를 뒷받침하는 스토리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각각의 작품을 이어오며 수정된 설정이나 새롭게 들어갈 스토리는 블리자드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만화나 소설로 보충된다.

이번에 죽음을 맞이한 「와우」 속 보스 리치 왕 아서스의 일대기를 다룬 소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아서스」는 미국 내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랐을 정도로 소설로서의 완성도 또한 인정받는다. 소설 외에도 만화가 김재환 씨가 그린  「태양의 우물」 등 만화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이기욱<국문대ㆍ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게임 내적인 화려함을 추구하는 한국 온라인 게임에 비해 「와우」는 수천 년에 달하는 스토리를 통해 게이머를 끌어모으려고 한다”며 “게이머들에게 서사적인 영웅 심리를 자극시키는 블리자드의 전략이 인기의 비결”이라고 평가했다.

블리자드의 인정을 받은 만화나 소설 말고도 「와우」팬들이 만드는 2차 창작물 또한 인기를 끌고 있다. 패러디 카툰 「와우 먼나라 이웃나라」가 대표적이다. 이는 이원복<덕성여대ㆍ시각디자인전공> 교수의 유명 저서 「먼나라 이웃나라」의 오마주(존경의 표시로 작품을 차용하는 일)로, 「와우」  세계관에 존재하는 여러가지 역사를 「먼나라 이웃나라」와 유사한 방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이러한 2차 창작물은 게이머들이 「와우」  역사의 세계관에 대해 큰 관심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와우」의 모토, 타락
「와우」의 세계관은 판타지 세계를 기반으로 한 여타 온라인 게임과 유사하지만 선한 인물을 타락시키는 서사 구조를 자주 사용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이번에 유저들에 의해 쓰러진 보스 몬스터 ‘리치 왕’ 역시 처음에는 인간 왕국의 ‘아서스 메네실’이라는 왕자였지만 전염병에 오염돼가는 백성들을 구하려는 의무감이 너무 강해 타락의 길로 들어선다.

「와우」 세계에서 처음부터 악한 인물은 찾아보기 힘들다. 「리치 왕의 분노」 이전 확장팩인 「불타는 성전」의 최종 보스몬스터인 ‘일리단’과 ‘킬제덴’ 역시 부족에게 부귀영화를 누리게 해주겠다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거나 이성에게 잘 보이려는 열망에 타락을 거듭하여 결국 게이머들에 의해 쓰러지는 운명이다.

이러한 타락의 시나리오는 「와우」가 기반으로 하고 있는 크툴루 신화와 연관되기도 한다. 크툴루 신화는 미국의 판타지 작가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한 신화 체계다. ‘크툴루’란 인류보다 훨씬 이전부터 지하에 살고 있던 ‘위대한 옛 존재’로, 인간은 그를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을 잃는다는 설정을 지닌 존재다. 이는 「와우」에서 ‘고대신’으로 바뀌어, 여러 인물이 타락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 차기 확장팩 「대격변」의 보스 몬스터로 유력한 ‘데스윙’ 역시 이 고대신에 의해 타락한 존재다.

 

이렇듯 「와우」에는 게이머를 끌어들일 강력한 장치가 존재한다. 그것이 최근의 게임에 비해 그래픽이나 화려함에서는 다소 밀리지만 6년째 최고 온라인게임의 위치에 있는 이유일 것이다.

일리단이 죽었고, 리치 왕도 죽었다. 이제 게이머들의 목표는 「대격변」의 ‘데스윙’이다. 부모님께 불효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대격변」이 몰고 올 대격변을 기대해보자. 
 일러스트 주소희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