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체제로의 이행기, 조선후기
근대 체제로의 이행기, 조선후기
  • 문종효 기자
  • 승인 2010.02.19
  • 호수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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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주체들 하나둘 나타나
비합리적인 사회상이 극도로 강조돼 정상적인 가치관으로는 살아남기조차 힘들었던 조선후기에도 시대적 변화를 파악하고 이에 편승한 계층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당시 모든 기준보다 우위에 있었던 신분 자체가 높은 편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지를 발휘해 큰 부를 거머쥐었다.

신분이 곧 재산의 정도를 의미하기도 했던 당시에 이런 변화가 나타나게 된 데는 농업 기술의 발달이 결정적이었다. 못자리에서 모를 어느 정도 키운 다음 그 모를 원래 논으로 옮겨 심는 이앙법이 전국적으로 보급됐다. 이앙법은 기존의 직파법에 비해 노동력이 훨씬 적게 들기 때문에 굳이 소작을 주지 않아도 땅주인 혼자서 논을 갈 수 있게 됐다.

이앙법의 보급으로 이앙법을 이용해 거둔 자기 논의 모든 수확량을 가지는 자영농과 소작지에서 내몰린 소작농으로 농민층이 분화됐다. 자기 땅이 있는 자영농들은 남는 곡식을 시장에 내다 팔아 부자가 됐지만 졸지에 땅을 잃고 거리에 내몰린 소작농들은 하루 벌어 먹고사는 임금노동자가 돼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농업 이외의 다른 산업에 투입할 수 있는 잉여 노동력이 공급됐다.

임금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유입된 곳은 광산업 분야였다. 광산업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해 일자리를 찾기가 쉬웠기 때문이다. ‘광산 하나가 개발되면 그 주변에는 마을이 조성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광산업은 생산 유발효과가 큰 산업이었다.

임금노동자들을 모으고 각종 전문가들을 통솔하는 광산전문가인 덕대가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덕대는 대개 상인 물주에게 자본을 조달받아 임금노동자들을 고용해 광물을 채굴하고 제련하는 역할을 맡은 광산 전문인이었다. 상인물주와 덕대, 임금노동자들은 서로 계약을 맺고 협업하는 관계였다. 이 때문에 덕대는 근대 자본주의적인 요소를 갖고 있었다.

상인 물주들도 이 시기가 되면서 점차 거대화되고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게 됐다. 정조의 신해통공 정책 이후 민간상인들이 합법적으로 장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 거대한 구매력을 지닌 독점적 도매상인이 출현했다. 이들은 상품의 제작, 운송, 판매까지 모두 장악해 전국의 물가를 조정했다. 또 이들은 수공업에도 손을 뻗쳐 소규모 수공업자들에게 자본을 미리 대부해주고 이들이 만드는 제품을 사들였다. 이에 따라 영세 수공업자들은 민간상인들에게 경제적으로 예속됐다.

그러나 경제력을 가진 일부 수공업자의 경우 세금을 내고 초과 생산된 제품을 시장에 내다 팔았다. 납포장이라고 불린 전문 수공업자들은 관아상인이긴 했지만 부역에 동원되지 않고 세금만 내면 자유로이 상행위를 할 수 있는 계층이었다.

자영농, 덕대, 사상, 납포장 등은 비록 미약하긴 하지만 초기 근대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요소를 일부 가지고 있다. 이들 모두 ‘시장’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점과 계약에 의해 업무가 이뤄진다는 점 등이 특징이다.

그러나 이들은 임금노동자나 사회 빈민을 수탈하는데 앞장섰다는 점에서 사회변혁의 역할을 찾지 못했다는 한계를 보인다. 또 폐쇄적 대외정책을 고수해온 탓에 자본주의의 태동이 다른 국가보다 늦어진 점도 이들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였다. 자본주의 체제가 미처 정착되기도 전에 외세의 침략을 맞았기 때문이다. 이미 근대화ㆍ산업화를 이룩한 외세의 강력한 경제침투에 의해 이들은 몰락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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