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만난 동아시아의 아픔, 그리고 미래
가슴으로 만난 동아시아의 아픔, 그리고 미래
  • 취재부
  • 승인 2005.08.29
  • 호수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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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복판에서 5박6일 동안 만남을 가진 동아시아의 젊은이들은 한양대학교 안산캠퍼스를 근거지로 일제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 안산 외국인 이주노동자, 조선족, 화교, 사할린동포들의 삶을 보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국제 평화학술심포지움을 통해 그들의 삶을 둘러싼 역사의 무게, 사회적 의미, 지향점을 생각해 봤다. 올해로 9회를 맞이하고 있는 동아시아 공동 워크샵에 참여하게 된 나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부터 자신들의 소소한 이야기들까지 모든 것들이 맞닿아 있었다는 것에 벅찬 감동이 움트기도 했다.

 나는 워크샵 기간동안 일본, 재일조선인 학생들과 함께 한대앞역 셔틀버스 정류장 정면에 위치한 ‘고향마을’을 방문했다. 안산 고향마을은 일제강점기에 강제징용으로 사할린에 끌려간 뒤 일본의 2차대전 패전 후 그곳에 버려진 사할린 한인들의 한국 영주귀국을 위해 마련된 곳이다.

한양대 학우들이 무심코 지나쳤을 안산 고향마을은 일제 식민시기 강제동원과 냉전, 가슴 아픈 이산문제를 간직하고 있는 소외된 역사의 한 단면이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내가 목격했던 것은 떨리는 음성으로 눈물을 떨구며 사할린에서의 기억들을 힘겹게 풀어내시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이었다.

나는 교과서에서만 봤던 ‘역사’라는 것이 아무리 멀리 손을 뻗어도 곁에 둘 순 있지만 닿을 수는 없는 것만 같았다. 사할린 동포 1세와 2세들에겐 그들의 이주사와 사할린에서의 이야기들이 결코 마모되지 않는 기억이었다. 아픔을 말씀하시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삶의 모순에 맞서서 지금 이렇게 살아있음 자체로 그들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워크샵에서 우리는 국적과 문화라는 이름을 벗어나 경계를 허물고 너와 나로 만나게 될 때 언어로 치환될 수 없는 정서적인 유대를 경험할 수 있었다.
어떤 문화를 바라보고자 할 때 오직 하나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구분하는 것은 위험하다. 정당하다거나 혹은 옳다는 것들은 절대적 가치로서가 아니라 그 다양한 문화적 배경에 따라 상이한 구체적 맥락 속에서 판단해야만 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진심은 견고한 벽을 관통하여 서로의 심장에 파고들었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이러한 값진 경험은 먼지 같은 젊은 나날 속에 우리 자신이 가슴이 시리도록 뜨거운 심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크샵 이후 나는 더욱 다양해졌고 덕분에 단순함을 벗어난 복잡한 괴로움이 나날이 더해갔다. 나는 동아시아의 역사와 이해관계에 대한 정보를 접했고 많은 서적과 정치가, 미디어의 고무적인 말들이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번 워크샵을 통한 인연들, 한국, 일본, 중국, 재일조선인, 사할린동포들의 한 단어, 한 마디의 짧음이 내게는 더욱 길게 느껴졌다.

그 여운은 지금 이 공간 안에 자신의 위치를 차지한 평범한 사람들, 하지만 언제나 개개인으로서는 특별하고 고결한 사람들이 ‘공감’ 자체를 이룬다는 것만으로 모두를 반응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워크샵에 한국 대학생들의 참여가 예상보다 적었다는 것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러한 워크샵을 통해서 동시대의 동아시아 젊은이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자신의 방향을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함께 나누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조현상 <국문대·문화인류학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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