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속 일그러진 한국
미드 속 일그러진 한국
  • 차진세 기자
  • 승인 2009.12.30
  • 호수 1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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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를 통해 바라보는 우리의 국가 이미지

우리나라에서 미국 드라마 「로스트」의 인기는 배우 김윤진으로 인해 만들어 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윤진의 출연은 우리나라에서 「로스트」열풍이 불게 했으며 나아가 미국 드라마 마니아층을 형성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축구선수 박지성이 잉글랜드 프로축구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자 국내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인기가 급등한 일과 유사하다.

특히 극 중 배우들의 어눌한 한국어는 각종 패러디를 낳아 「로스트」의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도 그 매력에 빠져들기도 했다. 대표적인 ‘페이퍼 타올이 요기잉네’는 ‘페이퍼 타월이 여기 있네’를 미국 배우의 어눌한 발음으로 말하는 장면으로, 극 정황상 심각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패러디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장면 중 하나다.

미국 내 로스트의 인기
「로스트」는 여객기가 어느 무인도에 불시착하게 돼 승객들이 탈출을 하려다 벌어지는 사건을 그리고 있다. 일부 승객은 도중에 죽고 일부는 탈출하지만 어떤 음모에 의해 다시 섬에 돌아오게 된다. 아직 「로스트」의 모든 미스터리는 풀리지 않았으며, 이는 곧 방영될 마지막 6번째 시즌에서 밝혀질 예정이다.

우리나라에서의 「로스트」열풍은 먼저 미국 내에서 「로스트」가 굉장한 인기를 끌었기에 가능했다. 2004년에 첫 번째 시즌을 방영하고 작년 다섯번째 시즌을 마친 「로스트」는 매 편마다 꾸준히 천만명이상의 시청자를 TV앞에 끌어 모았다. 「로스트」의 시청률은 미국 내에서 작년부터 올해까지 방영된 드라마 중 15위를 차지했다. ‘아톰비트’라는 필명으로 미국 드라마에 대한 포스팅을 통해 2008 파워블로거에 선정된 임진오 씨는 “사실 「로스트」의 시청률은 해가 갈수록 조금씩 하락해가는 추세”라며 “그러나 핵심적인 시청자 층인 18세~49세 시청률은 꾸준히 10위권에 진입해 마니아층의 지지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로스트」는 시청률뿐만 아니라 작품성에서도 인정을 받는 작품이다. 미국 AP통신은 「로스트」를 최근 10년 간 최고 TV 프로그램 중 하나로 뽑았고, 하와이 국제영화제에서는 TV드라마이면서도 초청을 받아 특별상을 수상했다.

유명한 김윤진, 왜곡된 한국
배우 김윤진은 우리나라에 「로스트」열풍이 불게 만들었지만, 그녀 역시 「로스트」를 통해 스타가 됐다. 현재 방영을 앞두고 있는 마지막 여섯 번째 시즌까지 살아남은 김윤진이 사실 최초 기획 당시에는 없던 배역이었다는 것과 첫 번째 시즌에서 이름 없이 죽을 예정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정수진<무비위크> 기자는 “국내에서 「쉬리」,「단적비연수」등의 작품으로 여우주연상까지 받았던 김윤진은 지난 2003년 돌연 미국행을 선택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며 “국내 최고의 배우였던 김윤진은 미국의 무명 배우로 새롭게 시작해 마침내 「로스트」의 핵심 배우에까지 올라섰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윤진이라는 배우의 인지도 상승과 그 모국인 한국의 이미지 상승이 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로스트」는 우리나라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드러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김윤진이 연기하는 한국 여성 ‘선’은 서구인들이 생각하는 동양 여성의 표본이다. 온순하고 유순한 아시아 여성이라는 서구의 편견에 근거해 설정됐다. 또한 남편인 ‘진’은 지나치게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는 아내의 치마길이를 문제 삼고, 다른 남자와 이야기한다는 이유로 아내를 윽박지른다.
극 중반의 ‘선’의 회상 신에 나오는 초라한 한강대교는 한국은 저개발 국가라는 오해를 계속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르며 이미지를 새롭게 형성하려 했으나 그러한 노력이 무색한 장면이다.

이러한 사례는 단지 「로스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드라마「24」에서 한국은 현대에도 일본식민지시대 마루타를 연상시킬 정도로 잔인한 고문이 행해지는 발전하지 못한 독재 국가로 그려진다.「길모어 걸스」에서 한국 신부는 결혼 전날까지도 신랑 얼굴을 보지 못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를 가진 여성으로 묘사된다. 또한 미신을 믿어 딸에게 TV도 보지 못하게 하고, 딸에게 말을 거는 남자들에게 저주를 퍼붓는 어머니의 모습도 왜곡된 이미지의 한 예다.

이러한 왜곡은 현대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다.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한 70년대 영화 「매쉬」에서 한국 여성은 기모노를 입고 남자들은 베트남식 밀짚모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80~90년대의 작품도 마찬가지다. 「똑바로 살아라」,「폴링 다운」등 에서 한국인은 돈 앞에선 일말의 인정도 없는 구두쇠로 등장하거나 백인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일벌레 같은 모습으로 그려졌다. 한국 전쟁 이래 암울하고 어려웠던 역사의 영향이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것이다.

정 기자는 “아시아 최대 미국 드라마 소비시장 중 하나인 한국 시장을 사로잡기 위해 미국 드라마는 한국계 배우를 캐스팅하는 등의 전략을 짜고 있다”며 “그러나 정작 미국 드라마 속 한국의 모습은 여전히 20세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국가 이미지 향상을 위한 노력
김윤진의 인지도에 비해 한국의 인지도가 이렇게 낮은 이유는 외국인들이 김윤진과 한국을 연결 지어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부분 외국인들은 삼성과 LG를 일본 기업으로 알고 있다. 따라서 스타나 기업의 단순 진출이 아닌 국가 자체를 홍보하는 전략이 새롭게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국가브랜드위원회 자문위원 최동주<숙명여대ㆍ국제관계대학원> 교수는 “국가 홍보가 잘 이뤄지는 나라일수록 기업이미지와 국가이미지간의 격차가 적다”며 “외국에서 우리나라의 국가이미지는 기업이미지에 비해 현저히 낮다”고 설명했다. 「로스트」등에서 한국이 왜곡된 모습으로 나오지만, 한국 드라마에서도 다른 나라를 왜곡된 모습으로 그리는 경우 역시 존재한다. 올해 초 방영된 드라마「카인과 아벨」은 중국을 좀도둑이 넘치는 나라로 묘사해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국가 이미지를 높이려면 세계 각국의 문화와 정서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로스트」에서 초라한 한강대교를 비롯해 한국에 대한 왜곡된 장면이 나왔을 때 한국 시청자들이 보인 반응은 미국 및 드라마 제작진에 대한 감정적인 비판이 다수였다. 최 교수는 “진정한 국가이미지의 상승은 배타적인 정신으로는 이룰 수 없다”며 “우리나라의 이미지가 왜곡돼 있다면 그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러스트 주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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