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아래 파묻힌 조선의 역사
시청 아래 파묻힌 조선의 역사
  • 차진세 기자
  • 승인 2009.12.06
  • 호수 13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물 대거 출토된 서울시 신청사 공사 현장

서울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 시절 기존 청사 건물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청 청사를 짓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해체 후 바로 착공을 시작하겠다던 기존의 계획은 무산됐다. 문화재위원회가 새 청사 모습이 근처 덕수궁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제동을 건 것이다. 건물 디자인에 대한 재논의가 몇 번이나 이뤄진 끝에 예정보다 2년이나 늦은 작년 5월, 신청사가 착공됐다. 1년 넘게 순조롭게 이뤄지던 공사는 지난달 30일 공사 도중 조선시대 유물이 발견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문화재가 연이어 발견된 지난 2일 오후, 서울시 신청사 공사 현장을 찾았다. 공개된 현장에서는 한강문화재연구원에서 나온 연구원이 시민들에게 출토된 유물과 발굴 조사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공사현장은 공사가 진행되는 부분과 발굴 조사를 하는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은 조선시대 무기류다. 발굴된 유물의 양으로 미뤄 조선시대 무기를 제조하던 기관인 ‘군기시’ 터였음을 알 수 있다.

지건길<문화재위원회ㆍ매장문과위원회> 위원장은 “발굴 조사 현장을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며 “공사를 계속 한다면 철제 구조물이 조선시대 수도 한양의 심장부에 박힌 셈이 된다”고 우려를 표했다.

대규모 공사를 할 때는 사전에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공사 부지에 매장문화재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 후에야 공사가 가능하지만 이렇게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됐다는 것은 사전 지표ㆍ발굴조사가 충실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을 드러내 준다.

그러나 아직까지 매장문화재에 대한 사전 지표ㆍ발굴조사는 개발의 족쇄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자연환경지구 내 문화재 발굴조사기간을 단축시킨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다음날 아침, 다시 찾은 공사 현장에 더 이상 문화재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공사 일정을 더 이상 지연시킬 수 없어 유물을 잠시 이전하고 공사를 빠르게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출입이 가능했던 어제와 달리 공사 담당자는 “현장 공개는 끝났다”며 길을 막아선다.

공사장 바깥의 서울 광장은 성탄절을 맞기 위한 준비로 분주하다. 성탄 트리를 설치하고 장식을 하며, 각종 행사장을 조성하기 위해 시청 광장에 사슬로 울타리를 쳤다. 성탄절이 오면 문화재 출토와 같은 사건은 잊혀질 지도 모른다.

광장 통로를 가로 질러 가는 사람들은 공사장에 높이 둘러쳐진 벽을 무심히 쳐다보며 제 갈 길을 갈 뿐이다. 광장 통로를 통해 바삐 걸어가는 사람에게 신청사 공사장에서 유물이 발견됐다는 사실을 아냐고 묻자 “그렇다”고 답하면서도 이내 “이로 인해 신청사 건설이 지연돼서는 안된다”고 덧붙인다.

공사 현장 뒤편 벽에 새겨진 문구가 새삼 눈에 띈다. ‘서울, 맑고 매력적으로 변화하다.’ 변화를 하더라도 지켜야 할 원칙은 지키면서 변화하는 것이 진정으로 매력적으로 변화하는 길은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