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워팰리스 바로 앞, 포이동 266번지
타워팰리스 바로 앞, 포이동 266번지
  • 취재부
  • 승인 2005.08.29
  • 호수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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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번 여름 강남구 포이동과 맺은 값진 인연을 맺었습니다. 빈민연대활동을 통해 포이동 사건의 정확한 실태를 알려 노력하고 포이동 주민 분들께서 겪는 아픈 현실을 접했습니다. 우리는 올해 여름, 서울 곳곳의 노점상·장애인·노숙인 등을 찾아가 직접 그들의 삶을 체험해보며, 사회적인 억압과 차별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과연 서울은 새천년을 수놓는 시끌벅적한 화제들, 내 몸 하나 돌보기에도 바쁜 무한경쟁의 분위기와 함께 삶의 가장 어두운 그늘이 공존하는, 어쩌면 ‘잔인한 도시’라고도 불릴만한 곳이었지요. 그러나 그중에서도 우리의 뇌리에 가장 깊이 박힌 곳은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였습니다. 우리는 포이동 266번지의 현 상황이 바로 현재 우리사회에서 약자들에게 가해지는 ‘소리 없는’ 억압을 아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100여 가구의 주민들에게는 주민등록증이 없습니다. 전출입의 자유와 사회보장 혜택 등의 제반 시민권을 누리지 못합니다. 게다가 1990년부터 서울시측은 포이동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불법 점유자’로서 토지변상금을 물려 그 변상금은 이제 한 가구당 5천만 원을 넘었습니다. 그 이중고와 가난에 2004년 7월에는 포이동 주민 부부가 자살하는 일까지 발생했습니다. 양재천이 가로 흐르고 웅장한 타워펠리쓰가 가까이 보이는 포이동 266번지의 허름한 판자촌에 살고 있는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 분들은 국가로부터 주민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까?

1979년부터 정부는 넝마주이, 구두닦이 등 가난한 도시빈민들을 ‘자활근로대’라는 이름으로 묶어 관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81년, 바로 이곳 포이동의 주민들이 ‘자활근로대’의 일부로서 당시 포이동 200-1번지의 황무지와 같은 땅에 강제집단이주 됐습니다. 이때부터 이들은 국가공권력의 관리를 받으면서, 자력으로 그 땅을 일구고 촌락공동체를 형성해 왔습니다.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올림픽 때에는 ‘도시미관’을 우려해 마을 밖으로 나오지 않을 것을 강요당하는 굴욕도 당했습니다. 그런데 89년, 난데없이 국가는 주민들이 살고 있던 땅을 용도변경하고, 주민들을 ‘불법 점유자’로 몰아갔습니다.

정부가 국가에 의해 주민들의 삶의 역사를 이 땅 위에서 지워버리려는 계획의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군사독재로 인해 강제로 만들어진 도시빈민들의 삶의 터전이 국가에 의해 무참히 짓밟히는 이런 사태가 어찌 있을 수 있습니까? ‘관(官)’이 그 얼마나 민(民)을 함부로 여기는 것이며, 민(民)중에서도 도시빈민 등의 사회적인 약자들을 이보다 더 철저하게 무시할 수 있는 것입니까? 포이동 주민 분들의 역사를 증명하는 그 많은 언론·방송매체들의 보도와 증거자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남구청은 “사실관계 입증 안 됨”, “증거 없음”만을 되뇌며 버티고 있습니다.

포이동 대책위의 박동식 위원장님께서 처음 우리를 맞으며 눈물을 흘리시며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위원장님은 또한 89년, 공권력이 사회적 약자인 도시빈민들을 우습게 여기며 토지를 빼앗아갈 때에 저항 한 번 하지 아니하고 바보같이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박탈당한 데 대해, 그게 다 자신들이 못 배운 탓이라며 분개하고 탄식하셨습니다. 우리들은, 참된 민주(民主)는 결코 어느 누구에 의해 선사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압니다. 민(民)의 정당한 권리가 십 수 년에 걸쳐 이처럼 무시되는 사태를 눈감고 우리 모두는 도저히 ‘민주주의’를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우리 학우들이 포이동 266번지 주민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시길 바랍니다.  

박성열<사회대·사회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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