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전용강의의 허와 실
영어전용강의의 허와 실
  • 한양대학보
  • 승인 2009.11.29
  • 호수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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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들어 각 대학별로 전공과목의 영어전용강의 개설 및 운용이 대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우리학교도 예외는 아니다. 2007년 총 2985개 개설강좌 중 177개 강좌(5.9%)가 영어전용강좌로 개설됐는데, 2007년 전체 수업 중 5.9%가 영어전용강좌였던 것에 비해 올해는 9.0%가 영어전용강좌로 개설됐다. 앞으로 영어전용강좌의 수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 학기 동안 영어로 전공과목을 수강하다보면 따로 영어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당연히 영어실력이 늘고 전공지식도 늘려갈 수 있는, 소위 일석이조의 효과를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이것은 영어교육 측면에서 보아도 엄연한 사실이므로 전체적으로는 바람직한 교육 방향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어로 진행되던 전공과목 수업을 갑자기 영어로 한다고 해서 학생들의 영어실력이 무조건 향상되는 것은 아니다. 영어전용수업이 성과를 거두려면 먼저 해결돼야 할 전제조건이 있다.

우선, 가르치는 사람의 영어구사력이 상당 수준에 도달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무리하게 영어강의를 진행하면 재미없는 수업이 되거나 학생들이 강의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또 다른 전제조건은 학생들의 영어구사력이다. 학생들의 영어구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강의 내용이해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영어전용강좌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선 내용이해가 비교적 쉽고 흥미 있는 내용을 영어전용과목으로 정해야 한다. 학생들이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지리나 심리학 기초과목 등을 권장하고 있다.

다음으로, 발표나 토론, 작문 등 학생들의 활동이 주가 되는 과목으로 해야 한다. 많은 영어강좌가 교수의 일방적인 강의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데 이것은 교수의 영어구사력이 향상될 뿐 학생들은 듣기 연습만 하게 돼 영어전용강의 취지에서 벗어난 것이다. 또한 각 학과에서는 학생들이 영어전용강좌를 소화해 낼 수 있는 기본 영어 능력 및 영어 강좌 듣는 법에 대해 저학년 때 훈련을 시켜야 한다. 영어전용강좌는 신중을 기해 체계적으로 학생들에게 제공해야 하고, 준비된 강사나 교수가 수업을 진행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영어전용강좌가 원래의 취지대로 성공하려면 이처럼 철저한 준비와 훈련을 통해서 체계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현재처럼 마구잡이로 영어전용강좌를 개설한다면 학생들의 영어능력향상도 보장할 수 없고, 전공지식의 습득에도 문제가 생기게 된다. 영어능력향상을 위해 영어능력보다 더 중요한 전공지식의 습득이 소홀해 진다면 더 이상 대학은 지식을 전달하는 상아탑이 아닌, 거대한 어학당으로 전락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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