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마음의 국경은 남아있다
아직까지 마음의 국경은 남아있다
  • 서정훈 기자
  • 승인 2009.11.23
  • 호수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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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터민 50가구 정착한 경기도 안성 아파트 풍경
거센 바람 때문일까. 1500여 세대가 거주하는 안성의 한 아파트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 찾아보기 힘들다. 아파트 주변 상가도 고요하긴 마찬가지.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만이 길거리를 맴도는 이곳은 북한에서 우리나라로 건너온 새터민 50가구가 우리나라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안성의 한 아파트 단지다. ‘일반적인 아파트와 무엇인가 다르지 않을까’하고 찾아온 이곳은 생각보다 크게 특이한 점 없는, 우리 주변의 평범한 아파트와 마찬가지였다.

작년 여름, 경기도 안성시에 새터민 50가구의 보금자리가 마련됐다. 아파트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국민임대주택에 새둥지를 튼 새터민들은 “집을 받고 나니 어디로 훨훨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좋다”며 기쁨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 그들이 안성에 정착한지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입주 초기에는 새터민과 일반 주민들의 갈등으로 인해 마을 분위기가 흉흉했던 적도 있었다고.

“1천 500세대가 넘는 아파트에서 새터민 50세대는 티도 안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입주 초기에는 많이 티가 나더군요. 행동이나 말투에서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뭔가 다른 것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그네들도 발음이나 억양에 크게 신경을 쓰는 것 같던데 몇 십년씩 써온 억양을 한 번에 바꿀 수 있나요. 거부감도 느껴지고 그랬죠. 무섭기도 했고요.”

아파트 근처에서 작은 슈퍼를 운영 중인 최영미<경기도ㆍ안성시 49> 씨는 새터민과의 첫 만남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새터민들은 일단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입국하면 하나원에서 남한 사회에 대한 교육을 받는데, 이를 수료해야만 우리나라에 정착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남한 사회 교육은 대체적으로 자본주의에 대한 교육으로 있지만 이를 수료하더라도 막상 실전에 부딪히면 실수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슈퍼를 하는 최 씨는 자본주의의 방식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새터민을 많이 봤다고 했다. “물건의 용도를 모르는 사소한 실수부터 시작해서 돈을 계산할 때 긴장한 탓인지 금액을 못 맞추는 경우도 있었어요. 지폐 액수를 헷갈려 하시는 분도 많았고요. 지금은 적응을 다 잘 하셔서 이런 일도 다 추억으로 남아있지만요.”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예전과 같은 갈등과 반목은 없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한다.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학원에 새터민 자녀가 다닌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학원 원장에게 전화해 새터민 자녀를 내보내지 않으면 당장 학원을 끊겠다고 협박한 주민도 있었고 아이에게 ‘절대 북한에서 온 애들이랑은 놀지 마라’고 신신당부한 부모도 있었다고.

이 아파트의 경비원으로 재직 중인 한 할아버지는 일반 주민들과 새터민들 간의 ‘벽’을 무척이나 아쉬워했다. “처음 왔을 때 심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북한에 대해서 막무가내로 묻는 사람들도 있었지. 지금도 그게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냐. 마주치면 인사도 안하는 사람도 많고. 그 사람들도 이제 우리나라 국민인데, 안타깝지.”

하지만 아파트에서 묘한 긴장감을 직접 느낄 순 없었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일까, 날씨가 추워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았기 때문일까. 입주 초기만 해도 ‘새터민이 사는 아파트’라고 언론에 대서특필 되는 바람에 집값이 떨어질까 전전긍긍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한 공인중개사의 말은 찬바람을 더 차갑게 만든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건 그들에게, 우리는 자유 대신 또 다른 속박을 준 것은 아닐까. 새터민에게도 우리에게도 마음의 국경은 여전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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