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문화, 근본적 문제제기 필요
군대 문화, 근본적 문제제기 필요
  • 양영준 수습기자
  • 승인 2005.11.27
  • 호수 12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회에 투영되는 군의 폭력과 집단주의
폭력의 가해자이자 피해자인 남성들만의 군대 이야기를 다룬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가 세간의 화제다. 지난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돼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 등 4개의 상을 받으며 큰 호응을 얻었다. 윤종빈 감독은 연출의 변에서 “대한민국 대부분의 성인 남자들은 군대라는 ‘집단적 마초주의’의 스펙트럼 아래 폭력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로서 분노와 상처 그리고 죄의식을 느끼게 된다”며 “이 작품을 통해 폭력적인 상황을 만들어낸 사회제도와 구조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고자 한다”며 영화 제작의 배경을 설명했다.

상관의 군화에 매일 물광을 내 갖다 바치고 고참은 신참 팬티를 당당하게 뺏어 입는 군대의 부조리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승영과 그와 동창이자 내무반 선임인 태정의 이야기는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이라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군대에서 병사들은 극중 승영처럼 처음에는 말단의 피해자로, 계급이 올라가면서 가해자의 위치로 변하게 된다. 그러면서 단체와 질서를 받아들이게 된다. 극중 태정이 승영에게 해주는 “먼저 어른이 되라”는 충고처럼 우리 사회의 남성들은 어른의 이름으로 경직된 위계질서를 내면화시키는 것이다.

군대 안에서 벌어지는 구타, 폭언, 기합 등의 이른바 군대 문화를 개인의 문제나 잘못된 전통만으로 치부해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 지난 2월 만기 전역한 김민관<서울대·종교 00>은 “철학자 미셸 푸코의 말대로 군대는 미세한 움직임의 통제로 이뤄진다”며 “군대가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획일성과 상명하복을 요구하는 것이 문제”라고 강조했다.

규율은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을 여러 부분으로 나누는데서 시작한다. 2번의 구분된 동작으로 신호에 맞추어서 운동해야 하는 도수체조에서 보듯이 군대 훈련에서 상관과 병사와의 관계는 규율로 통제되는 관계이다. 전쟁터에서 불복종은 중대한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사소한 실수도 전체의 잘못으로 간주하여 징벌을 한다. 명령이 내려지면 즉각 시행하고 결과에 대해 보고해야 한다. 이에 대한 불이행은 항명죄로 다스리게 된다. 지난 18일 공군 병장으로 제대한 박상원<연세대·정외 00>은 “상관이 병사들에게 군 업무의 효율성을 위해 병사들에게 규율에 따른 움직임과 이에 대한 복종을 요구하면서부터 폭력이 시작된다”고 밝혔다.

청소하는 법에서 삽질하는 법까지 정해져 있는 규율화된 군대 문화는 일탈자가 나올시 징벌을 가함으로서 예외를 인정치 않는다. 지난 7월 제대한 오성범(26)씨는 “현재 활발하게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병사의 복지 문제를 개선하더라도 만연한 군대 문화의 폭력이 치유될지는 의문”이라며 “신체, 사상, 정치 등의 자유를 주는 것만이 군대 문화의 획일성에서 비롯되는 폭력을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군대 문화는 비단 군대 뿐 만이 아니라 사회에도 침투하고 있다는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명지대 권인숙 교수는 최근 저서 ‘대한민국은 군대다’에서 “여성비하, 위계주의를 생산해 내는 군대는 또 다른 방식으로 군사주의의 내재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강변한다. 즉 군대 문화에 익숙해진 한국 남성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군대에서 통용되던 권위적 습성을 일반 사회에 침투시킨다는 것이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에서 태정은 군대 이야기가 듣기 싫어 말을 중단시키는 여자친구에게 “넌 내가 볼 때 인내심이 부족해. 줄넘기라도 200개씩 해야 돼”라는 말로 군대 문화의 획일화와 폭력성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대학사회에서 나타나는 선, 후배 사이의 기강, 직업인이 되어서도 선·후임을 따지는 모습 등은 군대의 폭력성의 반영이다. 군대 문화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