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살아가는 남한 세상
그들이 살아가는 남한 세상
  • 안원경 기자
  • 승인 2009.11.22
  • 호수 13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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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으로 살아가는 새터민의 삶을 조명하다

통일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는 새터민 수는 1만6천명을 넘어섰고 우리학교에도 12명의 새터민이 재학 중에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일부로 자리 잡았지만 아직도 신분 노출을 두려워하며 주변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취재 도중 기사에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그들의 요청엔 여전히 걱정과 두려움이 남아있었다.

국가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인권유린
북한인권시민연합은 최근 탈북한 새터민 인터뷰 등을 통해 북한 인권 유린 상황을 심층적으로 연구한 「북 인권 실태 특별보고서」를 지난 달 8일 발표했다. 보고서에서는 과도한 아동 노동과 영양 부족, 태아 살해, 수감자 여성에 대한 성적 인권 유린 등 지속적으로 발생했던 문제가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모든 국민에게 무상교육을 실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다르다. 12세 전후 아이들은 ‘숙제’라는 명목으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곡식이나 토끼가죽과 같은 물자를 제출하지 못하면 학교 수업을 받을 수 없다. 또 사회주의 교육을  이유로 아이들에게 강제노동을 시키기도 한다. 쌀을 비롯한 국제 사회의 구호 물품은 군대와 평양에 먼저 지급돼 타지역 아이들은 여전히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다. 영양실조에 걸린 동무를 의미하는 ‘영실동무’, 강한 영양실조에 걸린 동무를 의미하는 ‘강영실동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다.

방상희<북한인권시민연합ㆍ조사연구팀> 간사는 “90년대 말 이후 UN식량계획과 각종 비정부기구에서 제공된 과자 등 인도적 지원 물품은 암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다”며 “강제노동과 굶주림으로 학업을 포기한 아동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여성의 인권 유린 또한 심각한 수준이다. 사회주의 국가지만 유교적 가치가 남아있기 때문에 북한 여성은 교육과 고용에서 차별 받는 것은 물론 바지도 착용하지 못하며 자전거도 타지 못한다. 학대 받는 여성을 보호하는 법규나 조치는 없다.

탈북에 실패하거나 사상이 불손하다고 여겨지는 여성은 정치범 수용소로 강제 이송돼 발가벗겨진 채로 수색 당한다. 임신한 여성의 아이를 강제 낙태하고 낙태할 수 없는 태아는 태어나자마자 살해한다. 방 간사는 “북한 국경 근처에선 여성인신매매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정치론’을 강의하고 있는 김광용<사회대ㆍ정치외교학전공> 강사는 “북한정부는 기존 수령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헌법으로 보장된 북한 주민의 기본권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다”며 “북한사회는 생존권은 물론 평등권조차 보장될 수 없고 사회적 약자가 숨 쉴 수 없는 곳”이라고 전했다.

남한으로의 고행, 남한에서의 고생    
북한의 기아 상황과 국민을 끊임없이 억압하고 착취하는 정부는 북한 주민을 밖으로 내몰았다. 1998년 탈북자 수는 300여명이었지만 2008년에는 한 해 탈북자 수만 2천명을 훌쩍 넘었다. 대학생 새터민 A도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해진 90년대 후반 주린 배라도 채우자는 생각으로 탈북을 감행했다.
목숨을 걸고 선택한 남한행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몽골 사막을 지나다 동행했던 사람들이 실종됐고, 극심한 일교차로 동상에 걸려 발을 잘라낼 뻔한 위기도 있었다. 죽을 고비를 넘겨 도착한 남한에서의 처음 느낌은 바로 외로움이었다.

A는 “친구도, 아는 사람도 없는 서울에 작은 짐 가방을 들고 도착했을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다”며 “처음 남한에서 맞은 겨울은 마음도 몸도 모두 추웠다”고 회상했다. 남한에서 적응기간을 거치고 대학교에 입학한 A가 교수에게 처음으로 들은 말은 새터민이라는 사실을 먼저 밝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친해지기 전에 새터민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주변 학생들이 처음 호기심을 가지다 이내 거리를 둔다는 것이 교수의 생각이었다. 또 다른 대학생 새터민 B 역시 “처음엔 새터민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며 “무심코 주변 사람에게 새터민이라는 것을 말했을 때 놀라며 경계하는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A가 처음 수강한 기초필수 강의는 ‘한국근현대사’와 ‘윤리와 가치’였다. 북한과 다른 역사관으로 서술된 한국근현대사와 이름도 어려운 철학자 사상은 남한 학생들과 다른 교육과정으로 공부한 A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

A는 “새터민 대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중간 정도 따라 갈 수 있다”며 “고등학교를 남한에서 졸업했지만 다른 아이들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고 토로했다.

A는 “자신은 남한 사회에서 적응을 잘해나고 있는 편”이지만 “끝임없이 경쟁하는 상황 속에서 법체계가 부실해 처벌이 이뤄지지 않았던 북한과 달리 사소한 일에도 법이 적용돼 처벌이 되는 엄격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지속적 관심과 교육이 필요한 새터민
새터민 A와 B가 남한 사회에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은 민간단체의 교육과 학교의 관심 덕분이었다. 공릉사회복지관 내 새터민 정착을 지원하는 하나센터는 청소년과 대학생에게 꾸준하게 학습지원을 하고 있다. 새터민 청소년에게 △방과 후 공부방 지원 △대학생 멘토 연결을 통한 개별적인 학습지도 △검정고시 지도가 이뤄지고 있다.

또 새터민 대학생을 위해 △대학원서 지원 지도 △동일 학교 남북한 선배 연결 △동일 학과 남한 학생에게 1:1연계 △새터민 대학생 동아리 지원 등 새터민 대학생이 대학생활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도움을 주고 있다. 또 북한인권시민연합에선 탈북 대학생 리더십 교육 등 실질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일정 학점 이상이 돼야 장학금을 지원하는 우리학교와 달리 서강대에선 새터민 대학생에게 교수학습 지원센터를 통해 △수준별 영어 강의제도 △지도 교수제도 △멘토링 제도 지원 △생활비 지원을 위한 교내 아르바이트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새터민 B는 “서강대는 새터민 대학생이 총장과 직접   만나 상담할 수 있는 간담회가 진행되고 있다”며 “교육적 지원 뿐 아니라 새터민 학생들을 세심하게 배려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리<북한인권시민연합ㆍ교육훈련팀> 간사는 “새터민 학생이 익숙하지 않은 곳에서 적응하지 못해 민감하게 반응해 사람들이 새터민 학생을 폭력적이라고 느끼는 경우도 있다”며 “주변에 따뜻한 시선과 심리적인 안정을 느낄 수 있는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일러스트 주소희 기자
자료제공 :  통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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