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마녀사냥의 시작인가
또 다른 마녀사냥의 시작인가
  • 심재환 기자
  • 승인 2009.11.15
  • 호수 13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주 KBS에서 방영된 「미녀들의 수다」(이하 미수다)에 출연한 한 출연자가 “키는 경쟁력이며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해 많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미수다 루저 발언 이후 인터넷 상에서는 ‘루저의 난’과 ‘루저 원정대’로 이어지는 패러디를 양산한 데 이어 빌언자에 대한 도를 넘은 마녀사냥이 급속도로 번지고 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단순히 발언의 적절성에 대한 견해를 떠나 루저 발언을 한 여대생의 신상정보 는 물론 무차별적인 인신공격까지 가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지난 2PM 재범 군 사건과 유사하다. 심지어 마녀사냥의 대상들과 같은 동명이인들까지도 피해를 보고 있다.

일부 네티즌은 해당 여대생의 학교 측에 제적을 요구하는 청원 운동까지 벌이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학교로 찾아가 해당 학생을 찾아내려고까지 한다.

이들은 사회적인 파장을 일으킬만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해당 여대생을 문제 삼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당 학생을 찾아가자는 이들이 타당성을 얻을 수는 없다.

결국 성숙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인터넷 문화가 또 다시 한 사람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대한민국의 일부 네티즌들은 양면성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루저 사건과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날카로운 비난의 화살을 쏟아 붓다가도 곧 마녀사냥의 문제를 지적하며 반성 또는 공격성 댓글에 대한 비판을 하는 글들이 올라오기 시작하며 스스로 자정의 역할을 내비치기도 한다.

실제로 한 언론사에서는 이 같은 양상을 ‘인터넷 자정의 기능 싹 튼다’라고 평하며 기사를 올렸다. 과연 이것을 자정의 기능이라고 볼 수 있을까. 마녀사냥으로 인한 피해자가 속출하고 이에 대한 뒤늦은 수습을 진정한 의미의 ‘자정 기능’으로 볼 수는 없다.

그저 목표가 된 대상에 대해 비난과 욕설을 하고 난 후 흥미가 떨어지거나 대상이 목숨을 끊어 죄책감에 반성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유니 씨도 최진실 씨도 그랬다. 한참을 비난한 뒤에 후회와 반성 그리고 사과를 해봤자 이미 고인이 돼버린 사람들과 그 유족들의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는 없다.

사회학자 오그번은 사회 변동론에서 사회적 가치관의 변화가 물질적 영역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심각한 사회적 부조화가 야기된다고 주장했다. 곧, 문화지체 현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인터넷 공간에서의 게시판 댓글문화 그 자체가 부정적일 수 없다. 자유롭고 건강한 소통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러나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비난을 위한 비판의 공간으로 전락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회적 ‘위기’다. 이것이야 말로 오그번이 말한 문화 현상의 극치라고 할 수 있겠다.

참으로 식상한 말이지만 인터넷 상의 폭력, 마녀사냥은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정말로 절실한 말이기도 하다.

 미수다의 ‘루저녀’를 루저로 만들기 위한 마녀사냥을 지속한다면 우리는 진정한 이 사회의 ‘루저’가 될지도 모른다.

이젠 위너가 되자. 인터넷 상에서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는 위너가 되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