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재파병은 폭력에 대한 동조다
아프간 재파병은 폭력에 대한 동조다
  • 이시담 기자
  • 승인 2009.11.14
  • 호수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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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가 본 아프간 재파병

나는 어린 시절에 제 2차 세계 대전을 겪었다. 그 시기는 서구 사회의 폭력성이 극단적으로 드러나던 시기였다. 아랍계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무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12살 때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다. 이같은 인종 차별을 겪으면서 나는 서구적 지배에 항거하는 사상들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나는 2001년에 미국 세계무역센터가 공격 당한 사건을 9ㆍ11이라고 부르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9ㆍ11이라는 말은 이 날짜가 마치 따옴표 안에 있는 말인 듯 상기시키고 전례없는 사건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사실 우리가 희생자의 수나 지상에서 일어난 파괴의 양으로 판단한다면 이 공격사건은 대사건처럼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과 유럽이 아닌 나라들(캄보디아, 르완다, 팔레스타인 등)에서는 수적으로 이 사건보다 더 많은 살육이 벌어진다고 해도 미디어와 여론에 그만큼의 파란을 일으키지는 못한다.

9ㆍ11이 대사건의 인상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미디어가 이 공격을 대사건으로 천명했기 때문이다. 사실 세계무역센터는 1993년에 이미 폭탄 테러의 대상이 된 적이 있다. 2001년에 일어난 테러는 세부 사항에 이르기까지 이미 예상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또한 이 사건을 냉전의 연속선상에서 바라본다면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기에 미국이 훈련시켰던 공중 납치범들이 이제 미국으로 방향을 돌린 것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은 냉전기간 동안 미래의 적이 될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전사들에게 무기와 정보를 제공해왔다. 곧 미국에서 훈련된 자들이 자살을 통해 미국에 피해를 입히는 자가-면역적 위기가 벌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사건으로 외상을 입은 것은 미국 국민뿐만이 아니다. 미국이 중심이 돼 유지해왔던 세계에 속한 국가들은 정신적 외상을 입었다. 미국은 국제사회의 신용을 장악하고 있다. 모든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며 안전보장 이사회 및 숱한 국제기구에 참가해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이런 미국에 대한 저항은 같은 편에 있는 모든 나라를 적으로 돌리는 행동이다. 그러나 냉전시대에는 소련이라는 적이 보였던 것과 달리 이제는 보이지 않는 적들과 싸우게 되면서 공포를 가중시켰다.
미국정부는 이러한 공포를 이용해 9ㆍ11과 같은 테러를 근절하기 위해 악의 축을 없애겠다는 명분으로 아프간을 침공했다. 그러나 이는 명분에 불과할 뿐 사실상 자원 약탈에 불과하다. 또한 테러에 대한 반사와 반성이 반복되면서 억압은 악순환된다.

한국정부는 미국을 따라 아프간 재건을 위해 130명의 ‘지방재건팀(PRT)’을 원조 파견하고 이들을 경호하기 위해 300명 규모의 병력을 파병할 예정이라 밝혔다.
한국정부는 파견될 군대가 비전투 임무만 수행하고 자체 방어 이외의 군 전투는 피할 것이라고 했지만 정황상 탈레반과의 전투, 보복은 피할 수 없다. 이번 재파병은 한국이 미국의 정치적 야만주의에 동조하는 셈이다. 한국은 억압의 한 축이 돼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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