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의 호사, 대중화된 명품 ‘매스티지’
일상 속의 호사, 대중화된 명품 ‘매스티지’
  • 이시담 기자
  • 승인 2009.11.14
  • 호수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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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ㆍ실용성으로 소비자 사로잡아

A씨는 빈폴을 즐겨입는다. 다른 브랜드보다 값이 비싸지만 고급스러우면서도 세련된 느낌 때문에 A씨는 다른 브랜드의 옷을 여러 벌 사기보다 빈폴 한 벌을 사는 편이다. 아르마니, 샤넬 같은 명품을 사기 위해서는 큰 결심을 해야하지만 이러한 매스티지 브랜드는 큰 결심을 하지 않고도 고품격이라는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미국의 경영컨설턴트 마이클 실버스타인은 2003년 4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를 통해 명품보다 값이 싸면서도 명품과 비슷한 감성적 만족을 주는 이러한 제품을 ‘매스티지(Masstige)’라 명명했다. 매스티지란 일반 대중제품(mass product)과 명품(prestige)의 합성어로 대중적인 중ㆍ고가 명품을 의미하는 용어다. 사회적ㆍ개인적 부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이러한 매스티지 현상은 점차 확산되고 있다.

매스티지 현상의 확산은 욕망의 확산과 관계가 깊다.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욕구단계설’을 통해 인간의 욕구를 설명했다. 인간의 욕구는 생리적 욕구, 안전에 대한 욕구,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 자기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로 나눌 수 있는데 후자로 갈수록 고차원의 욕구에 해당한다. 호사품을 원하는 대중의 욕구는 애정과 소속에 대한 욕구와 자기존중의 욕구 등 비교적 상위 욕구에 해당한다.

생존과 같은 생리적 욕구와 같은 기본적 욕구가 어느 정도 채워지면 인간은 집단의 단순한 구성원을 넘어 타인으로부터 관심과 인정을 받고 싶어 한다. 인정받을 때 인간은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된다.

호사품을 소지한 경우 집단 내의 사람들이 알아주고 칭찬해 줌으로써 자기존중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다. 이전에는 물건이 희귀할 때, 재료나 원료가 좋은 것일 때, 미세한 부분에 공을 들였을 때 그 물건을 호사품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제 호사품에 대한 인식은 달라졌다. 성별, 연령, 세대,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사람들은 호사품이 꼭 비싼 물건일 이유도 없고, 명품 브랜드여야 할 까닭도 없다는데 동의했다. 다만 호사품은 사치를 누리고 있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소비자로 하여금 품질이 뛰어나다고 느끼게 해야 품질이 좋은 것이다. 소비자들은 느낌에 지갑을 연다.

트렌드 전문가 페이스 팝콘은 「팝콘 리포트」에서 ‘자신이 감당할 만한 몇 가지 품목에서 사치스런 소비를 하는’ 것을 ‘작은 사치’라고 불렀다. 일본에서는 비슷한 경향을 두고 ‘일점 호화 소비’라고 부른다. 또 특정 분야만 집중적으로 소비하는 현상은 ‘로켓팅’이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의자가 있다. 이 의자는 다른 제품에 비해 가격이 훨씬 비싸지만 편안하고 심미적으로 아름답다. 이 의자가 삶의 질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소비자는 이 의자를 구입하기 위해 다른 거실용품을 저가로 구매한다. 일반적인 시각에서는 부정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사치’는 새로운 소비 트렌드의 관점에서 볼 때 합리적인 행동이 되고 있다. 단순히 싼 가격에 물건을 사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기존의 소비개념에서 벗어나 품질이 높은 제품을 납득할 수 있는 가격에 사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소비개념으로 변화한 것이다.

소비자들은 이제 현실의 삶 속에서 만족을 주는 물건을 찾는다. 일상용품 하나를 구매할 때도 감성적 가치를 투영하고 가격보다 자신의 개성과 취향을 중요한 구매기준으로 삼게 됐다. 모든 물건은 단순히 필요에 의해 소비되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나를 표현하는 재료다. 시계, 향수, 의류 등 전통적인 사치품에서 맹위를 떨치던 매스티지는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일상용품으로 확장되고 있다. 

사람들은 예쁜 그릇을 사용하면서, 새로 산 책의 향기를 맡으면서 일상의 호사를 누린다. 우리나라는 영웅과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선진국과 같은 안정된 사회로 진입하고 있다. 「대한민국 욕망의 지도」의 저자 김경훈 씨는 “혁명이나 변혁을 향한 거창한 꿈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소박한 일상과 마주하게 됐다”고 말한다.

소비자들은 일상을 업그레이드하고자 한다. 이러한 호사 시장에서는 소비자가 기꺼이 값을 치르는 최고 가격이 제 값이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지나치게 높은 값을 치르려 하지 않는다. 가격에 비해 가치면에서 조금 더 이익이 있다고 느낄 때, 소비자는 비로소 물건을 구매한다. 또한 이 가치는 품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의류, 가방 등의 분야에서는 매스티지의 선호도가 높지만 보석, 전자제품 등의 분야에서는 상대적으로 선호도가 낮았다.

임경택<서울시ㆍ성동구 28> 씨는 “컴퓨터와 같은 전자기기를 살 때는 유명 브랜드의 제품보다 성능은 비슷하면서 가격이 낮은 제품을 사는 편”이라며 “하지만 가방과 구두를 살 때는 인지도가 있는 브랜드 편이 품질에 신뢰가 간다”고 말했다.

매스티지의 소비자는 개인 스타일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다. 이러한 경향은 남성에게서 더욱 두드러진다. 유우종<동국대ㆍ가정교육과> 교수의 논문 「경주시 대학생의 매스티지 의류추구혜택과 상표충성도의 관계」에 따르면 여학생은 인지도가 높고 내구성이 높기 때문에 매스티지 의류를 선호하는 반면 남학생들은 독특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인이거나 본인의 개성을 잘 살려줄 때 매스티지 의류 제품을 선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스티지를 소비하는 주 연령층은 20대와 30대다. 이 중에서도 여성이 매스티지 소비를 주도한다. 대부분의 여성이 직장을 갖게 되고 소득이 증가하면서 여성은 높은 구매력을 갖게 됐다. 특히 젊은 미혼 여성은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는 일부 경우를 제외하면 경제적 압박을 거의 받지 않는다. 아직 노후 자금을 걱정할 필요도 없고 가족을 위한 물건을 사거나 자녀의 교육비를 마련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 일본 등에서 젊은 미혼여성은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독신 여성의 수가 증가하고, 초혼의 연령이 늦어지면서 이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들은 자기존중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경향이 크다.

매스티지 란제리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의 바디 바이 빅토리아가 출시 6주만에 거의 품절될 정도로 돌풍을 일으킨 것도 이러한 여성 고객의 파워를 보여준 사례로 볼 수 있다. 바디 바이 빅토리아의 가격은 동종의 일반 백화점 제품보다 2배 이상 비쌌지만 불티난 듯이 팔렸다. 기술적인 면에서 타 제품보다 뛰어났지만 감정적으로 여성에게 자신감과 함께 스스로를 잘 가꾸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선사했기 때문이다.

박진영<경성대ㆍ생활경영학과> 교수는 논문 「대학생의 매스티지 구매경험과 재구매의도의 영향요인 분석」에서 30만원 이상의 용돈을 받거나 가계수입이 300만원 이상인 대학생의 경우 매스티지를 구매할 확률이 높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매스티지는 일반 상품보다 가격이 좀 더 비싸기 때문에 용돈을 30만원 이상 받는 대학생의 경우 구매경험이 더 많이 나타난 것으로 해석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구매력이 높아 매스티지를 더 많이 구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가계소득이 200만원에서 400만원 미만일 때 매스티지 상품에 대한 만족도가 가장 높았다. 즉 중간소득계층 대학생의 매스티지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는 중간소득계층의 매스티지에 대한 욕구가 큰 것으로도 확대 해석할 수 있다.

홍성태<경영대ㆍ경영학부> 교수는 “제품의 고급화 경향은 앞으로도 계속될 흐름”이라며 “하지만 매스티지 마케팅을 구사하면서 브랜드 가치를 계속해 지켜나가기는 어려울 것”이라 지적했다. 매스티지는 대중 제품과 명품의 중간에 위치한다. 매스티지가 명품에 근접하는 가치를 제공한다면 명품보다 넓은 시장을 가질 수 있으며 일반 제품보다 높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할 수 있어 수익성이 높다. 그러나 소비자를 충족시키지 못하면 매스티지의 가격은 오히려 양날의 검으로 작용한다. 즉 일반 제품보다 가치가 없으면서 비싸기 때문에 아무도 사지 않게 된다.

프라다의 미우미우, 아르마니의 아르마니 진처럼 시장을 넓히기 위해 명품이 세컨드 브랜드를 출시하는 경우, 고객층을 확장하기 위해 지나치게 가격 폭을 넓히면 브랜드 가치를 오히려 손상시킬 수 있다.
일러스트 주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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