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청산 ‘친일인명사전’으로 물꼬 터야
친일파 청산 ‘친일인명사전’으로 물꼬 터야
  • 심재환 기자
  • 승인 2009.11.08
  • 호수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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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써 일사봉공의 굳건한 결심입니다”,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일본)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습니다.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 박정희’
위의 글은 다카키 마사오 즉, 박정희가 일제강점기 시절 만주군관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작성한 '진충보국멸사봉공‘ 혈서의 내용이다. 결국 이 혈서는 제국주의자들을 감동시켰고 다카키 마사오는 만주군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이에 박정희의 아들 박지만씨가 법원에 아버지는 일본군이 아닌 만주국 용병이었다며 친일인명사전에 게재하지 말라는 게재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 같은 박지만씨의 행동은 친일청산 재조명이라는 친일인명사전의 의미를 흐리는 처사며 정치 사안으로 변질시켜 본래의 의미를 퇴색하는 처사다.

이는 민족사 정립의 진정성을 훼손시킬 수 있다. 따라서 박지만씨의 가처분 신청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앞서 말했듯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다. 어제 발간대회를 통해 공개된 친일인명사전에는 식민지 시절 일제에 협력한 인물 4,370여 명의 행적이 담겨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서정주와 장지연 그리고 박정희가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 친일파 청산을 광복 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지금까지도 문제가 되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 집권시절 장관 300명 중 친일행위자는 249명이었으며 독립운동가는 41명에 불과했다.

단 한명의 친일인사도 문제가 되는데 무려 250여명의 친일인사가 장관직에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국회 의장단 32명 중 22명이 친일인사였으며 고위급 군·경찰 간부 중에서도 48명 중 6명을 제외한 나머지가 모두 친일인사였다.

심지어 미당 서정주는 일제를 찬양하는 글을 쓰고서도 독재정권을 극을 달린 전두환의 찬양시마저 썼다. 그야말로 권력의 절대적인 추종자였다.

이처럼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한반도 침략을 찬양하고 민족의 독립을 막았으며 각종 수탈행위와 강제동원에 앞장서는 등 일제의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에 협력한 자들이 광복 이후에도 나라의 고위직에 있었다는 것은 암울했던 일제강점기 시절 뼈아픈 기억을 더욱 쓰리게 한다.

스스로 일본의 견마를 청하며 혈서로써 적국 일본을 위해 충성을 맹세했던 다카키 마사오 박정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손가락을 자르고 혈서를 쓰며 조국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를 단죄한 도마 안중근 의사. 이 두 사람은 같은 조선인이었지만 한 사람은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했고 다른 한 사람은 박정희의 조국 일본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대한민국의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룩한 대통령 그리고 일제의 견마를 자청하며 혈서로써 일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던 다카키 마사오의 두 얼굴을 가진 박정희. 앞으로 우리는 이제껏 하지 못한 친일파 청산에 힘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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