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정서를 향가에 담아내다
민족의 정서를 향가에 담아내다
  • 김단비 기자
  • 승인 2009.11.08
  • 호수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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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가로 과거와 현재를 잇는 향가작곡가 김보희<작곡과 74> 동문

사진 이유나 기자
고등학교 언어영역 시간 우리들을 가장 괴롭혔던 문학을 꼽으라면 서슴없이 ‘향가’라고 대답할 것이다. 마치 외국어를 한글로 옮겨 놓은 듯한 문장들로 구성된 향가는 그저 옛 언어로 쓰인 시조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책을 벗어난 향가는 우리민족 고유의 음색을 지닌 아름다운 선율이었다. 그 선율을 재창조해내기 위한 움직임의 중심에 바로 김보희<작곡과 74> 동문이 있다.

나의 철든 음악세계, 향가
우리학교를 졸업하고 심도 있는 작곡가 공부를 위해 미국 하와이로 떠난 그녀는 뜻밖에 그 곳에서 국악과 마주했다. 하와이에서 우리나라 민속 음악가들과 교류하게 되면서 그 후 진정한 작곡은 모방이 아닌 재창조임을 깨우친 것이다.

그녀는 서양음악의 모방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아의 소리, 즉 우리민족의 정체성을 가진 진짜 음악을 작곡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때부터 김 동문의 향가 작곡은 시작됐다. 그녀는 향가 작곡을 본인의 ‘철든 음악세계’라고 표현한다. 이 때 비로소 김 동문 속의 근원을 찾은 성숙한 음악을 시작하게 됐다고.

그녀에게 서양음악 작곡이 텁텁하게 덜 익은 열매라면 국악 작곡은 달게 농익은 열매인 셈이다. 하지만 국악을 작곡하는 음악가들조차 서양음악을 모방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단다.

“많은 국악작곡가들이 국악에서조차 서양음악의 아방가르드를 모방하거나, 가야금을 하프로 여기고서 서양음악의 화성을 차용해 작곡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국악작곡들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죠. 서양음악에서 표현할 수 없는 동양의 정서나 한국의 정서를 우리 악기로 표현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해요.”

김 동문은 우리민족만이 가진 독특한 발성법이나 악기의 투박한 소리 등 자연스러운 소리를 살리지 못한 작곡은 국악작곡의 본질에서 멀어져가는 길이라고 말한다.


서양악기의 옷을 입은 국악작곡
국악을 서양음악으로 변질시키고 있는 현대 국악작곡가들에 반해 서양음악을 국악화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김 동문. 그녀는 국악에 서양악기를 덧입힌 연주를 위해 힘쓰고 있다.

“미국 유학 시절 서양악기로 우리민족의 정서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그 생각을 실행으로 옮겨 첼로로 산조를 작곡해 연주해봤죠. 제 연주에 외국인들은 찬사를 보냈어요. 어떻게 그런 정서, 음색을 표현해낼 수 있냐면서요.”

얼마 전 가진 향가작곡발표회에서도 그녀는 국악ㆍ관현악곡인 「고려인의 아리랑」을 선보였다. 이는 국악기인 소금, 대금, 양금, 해금, 가야금, 거문고, 장구, 북, 징과 관현악기인 첼로가 합주한 곡이다.

“「고려인의 아리랑」을 통해 국악기도 서양악기의 웅장함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어요. 국악기 합주는 관현악기 합주인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에 뒤지지 않아요. 뿐만 아니라 이 곡을 통해 서양악기로도 우리 민족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음을 알게 됐죠.”

김 동문은 국악기로 웅장함을 표현하는 일은 한민족이 아니라면 이뤄낼 수 없다며 국악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국악기 선율의 감동과 환희를 세계에 널리 전하는 일 또한 우리 민족만이 가능하다고.


가족에게도 이어지는 향가의 연
향가와의 연은 그녀에게만 이어진 것이 아니다. 무돌 김선기 선생으로 알려진 그녀의 아버지 또한 향가를 연구하는 저명한 언어학자였다.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향가를 듣고 자라왔어요. 어쩌면 그때부터 저의 향가 작곡 길이 예정돼 있었는지도 모르죠.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후 하루는 제 꿈에 나타나셔서 옛 노래의 뜻을 풀어보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사라지셨어요.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께서도 제가 우리민족의 노래를 전수하길 바라셨던 거라고 생각해요.”

아버지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더듬은 김 동문은 곧 그녀의 오라버니를 떠올렸다. 작곡한 향가 중 본인이 가장 애착을 가지는 곡이라며 꼽은 「제망매가」는 5년 전 오라버니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낸 후의 슬픔을 표현한 곡이다.

“사람들은 「제망매가」처럼 슬픔을 표현한 향가는 지나치게 청승맞기도 하다고 얘기해요. 하지만 저는 그 부분이 향가만이 가진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슬픔을 표현해내는 데 향가만큼 훌륭한 음악은 없죠.”

그녀에게 오라버니에 대한 그리움과 슬픔의 정서를 느끼게 하는 「제망매가」처럼 향가는 현세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의 역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향가는 역사의 저편에 있는 옛 노래를 다시 부르는 일이에요. 보통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그 노래와 연관된 사건이나 추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향가 또한 그 시대의 역사를 기억하게 만들죠. 좋은 역사든 나쁜 역사든 간에 역사를 간직하고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역사가 향가와 함께라면 그 가치는 더욱 커지죠.”


한민족 음악에 대한 세계인과의 정신적 공감
기독교인인 그녀는 불교음악인 향가의 작곡을 망설였다. 하지만 그녀는 종교를 뛰어넘어, 향가에 대한 이해를 위해 직접적인 체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악보로 남아있지 않는 옛 노래를 작곡하기란 쉽지 않아요. 향가의 근원지인 신라의 정신을 그저 상상력 하나로 그려내야 하죠. 이를 위해 불교음악, 무속음악 등을 끊임없이 공부하며 신라의 숨결이 느껴지는 경주 답사를 통해 작곡에 영감을 얻고 있어요.”

그러나 현재 향가는 해외는 물론 국내에서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민족의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한시로 만들어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조차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향가는 어려운 음악이라는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에게 친근함을 주기위해 옛 노래인 향가를 좀 더 현대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에요. 또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향가를 알리는 일에서 더 나아가 세계 여러 민족에게 향가를 전파시키는 것이 저의 목표에요.”

김 동문은 최근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조차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하는 모습에 씁쓸함을 느꼈다. 그녀는 우리의 악기로 우리 음악이 여러 공식 행사에서 연주돼 모두가 이를 향유할 수 있길 바랐다고 말한다.

또 세계의 갖가지 민속 악기로 향가를 연주해 어느 민족이든 우리 국악을 연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앞으로의 계획이라는 그녀는 이를 통해 세계인들과 우리 민족 음악의 정신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단다. 머지않아 김 동문의 국악이 세계 곳곳의 공연장에서 웅장하게 퍼질 날을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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