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었다고 해서 죽은 것이 아니다
죽었다고 해서 죽은 것이 아니다
  • 서정훈 기자
  • 승인 2009.11.08
  • 호수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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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진정한 의미 이해하는 문화 필요
우리나라에서 존엄사가 본격적으로 시행된 이후, 인간답게 죽음을 맞는다는 의미의 ‘웰다잉(Well dying)’ 열풍이 전국을 강타했다. 이는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단순한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잘 마무리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인생을 아름답게 정리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해서 연세 지긋한 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론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10대 청소년, 20대 청년들에게 진정한 죽음의 의미를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교육 효과가 더 확실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림대 생사학연구소장 오진탁<한림대ㆍ철학과> 교수는 “웰다잉은 곧 죽음의 질과 관련되는 문제”라며 “20대들도 죽음에 대해 올바르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림대에서는 ‘죽음에 대한 철학적 이해’라는 교양과목을 개설해 학생들에게 진정한 죽음의 의미를 가르치고 있다.

이를 담당하고 있는 오 교수는 강의 목적에 대해 “심장이 멈추고 육신에서 숨이 끊어진다고 해서 모두 죽음을 맞이한 것은 아니다”며 “학생들이 육체적 죽음뿐만 아니라 사회적, 정신적, 영적 죽음까지 총 4가지 죽음의 측면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 교수는 20대 청년층에서 죽음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해를 거듭할수록 자살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람들은 대개 육체적 죽음을 맞이하면 자신을 얽매고 있던 수많은 장애물들의 연결고리가 끊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는 죽음에 대한 가장 잘못된 인식 중 하나로 하루빨리 교육을 통해 생각을 바꿀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자살을 선택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첫 수업 때 학생들에게 ‘자살에 관한 의식 조사서’를 작성케 한다. 수업이 끝난 후 의식 조사서를 검토해 보면 학생들 대부분은 죽음의 의미를 매우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으며, 죽음과 자살을 동경하는 학생 또는 실제 자살 시도를 한 학생들도 일부 발견된다고 한다.

수업 초기에 대다수의 학생들은 자살을 생각했거나 시도했다는 것을 숨기고 자신의 과거를 드러내는 것에 강한 거부감을 가진다. 하지만 강의를 통해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은 후에는 많은 학생들이 자신들의 과거를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주변의 공감과 위로에 ‘열심히 살아야 겠다’는 용기를 얻어간다. 학생들은 또 과거 자신의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죽음이라는 것이 힘든 상황을 끝내는 마지막 방법이 아님을 비로소 깨닫게 된다.

실제 강의를 수강한 정수연<한림대ㆍ생명공학과 08> 양은 “단순하게만 생각했던 죽음의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게돼 기억에 남는 수업”이라며 “힘든 일이 있을 때 ‘죽고싶다’는 말을 쉽게 내뱉지 못할 정도로 죽음이라는 것이 경건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수업을 듣기 전까지 자살을 수백 번 생각하고, 수십 번 실행에 옮기려 했던 학생이 수업을 들은 후 생각을 바꿨다며 교수실 앞에 편지를 놓고 나갔을 때 가장 보람을 느꼈다”며 “죽음에 대해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삶 자체가 윤택하게 바뀔 수 있다”고 전했다.

또 그는 존엄사에 대해서도 “종교적 이유나 단순한 찬반 논란을 떠나 우리사회에 존엄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됐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살아있을 때 자신의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임종 방법을 마련해놓는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다면 존엄사는 현대판 고려장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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